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 그래도 함께 살자

김훈 장편소설 <공무도하>

등록 2009.10.12 11:14수정 2009.10.1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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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무도하>겉표지

<공무도하>겉표지 ⓒ 문학동네

김훈은 <공무도하>를 연재하기에 앞서 "나는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라고 했다. 5개월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김훈의 말처럼 소설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를 그렸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더러움과 비열함을 그렸다. 단지 그렸는가. 뼈아프게 그렸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으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하던 김훈, 그가 현재에서 현재를 이야기하는 건 그리도 아픈 것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문정수는 사회부 기자다. 소설 속의 기자라면 뭔가 좀 폼이 날 법도 하지만, 혹은 정의감에 불탈 법도 하지만 문정수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없다. 문정수에게는 취재해야 할 것이 많다. 개에게 물려 죽은 아들을 놔두고 어디론가 사라진 엄마를 찾아 취재해야 하고 해망에서 벌어진 불법적인 일들과 비루하고도 더러운 일들을 취재해야 한다.


문정수는 누구보다 뛰어나게 그것들을 취재한다. 그의 취재 앞에서 인간의 더러움과 비열함은 낱낱이 드러나고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 또한 그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문정수는 그것을 쓰지 않는다. 어떤 사실들을 쓰지만, 사실에 가려진 진실들은 쓰지 않는다. 왜 그랬던 것일까. 문정수와 소설가 김훈은 답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치사하고 비루한 사람들이 보일 뿐이다.

박옥출은 서울의 소방서에서 제법 잘 나가던 소방관이었다. 캐피털백화점에 불이 났을 때도 그는 열심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는 귀금속 매장의 보석을 빼돌린다.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는 육 개월 뒤 소방서를 퇴직한다. 문정수는 박옥출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기사로 쓰지 않는다. 박옥출과 특별한 인연이기에 그런가. 아니다. 문정수는 편집자인 노목희를 찾아가 그의 행위를 중얼거릴 뿐, 쓰지 않는다.

오금자는 치매 증세를 보이는 어머니에게 아들을 맡기고 식당에서 돈을 번다. 그러던 중에 아들이 기르던 개에게 물려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금자는 그때 무슨 심정이었을까? 오금자는 아들을 찾지 않는다.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금자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간다. 어쩌자고 그러는 것인가. 문정수는 그 또한 쓰지 않는다.

노목희의 선배 장철수는 운동을 하던 시절 경찰에 연행된 뒤 일급 수배자들의 은신처를 불었다. 배신자가 된 장철수는 해망으로 떠난다. 그는 그곳에서 미군 폭격기와 전투기가 쏟아낸 포탄 껍질을 건져 올려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곧 그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국제결혼이라는 명목으로 베트남에서 팔려온 후에가 위험하다. 그래서 장철수는 장기를 팔기로 한다. 불법이다. 불법인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장기를 박옥출이 산다. 문정수는 이것 또한 알고 있지만 쓰지 않는다.

문정수가 알고 있는 것은 이외에도 아주 많다. 뱀섬을 공격대상으로 삼은 미군폭격기와 깔려죽은 어느 소녀의 비명과 그 죽음을 대가로 보상금을 받아버리고 도망간 어떤 남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하지만 쓰지 않는다. 그가 알고 있는 것들이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가. 사람들의 비열하고 치사한 모습은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을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는 어떤가. 그 또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문정수는 기사를 쓰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문정수는 포기하는 것인가? 문정수를 통해 말을 건네는 김훈 또한 포기하고 있는 것인가? 김훈의 말마따나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이 생생하게 담긴 <공무도하>를 마주하면 뭔가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소설은 그렇게 허무하지 않다. "희망" 또한 있기 때문이다.

이 지리멸렬한 삶들 속에서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약육강식에 짓밟혀도, 백번 천 번 배신당해도 무너지지 않는 모습이 희망이다. 느리지만, 조금씩 앞으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희망이다. 김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공무도하>는 아프지만, 희망찬 소설이 된다.


그 옛날 나루터에 빠진 백수광부를 두고 아내인 여옥은 통곡했다. 그리고 사별의 아픔을 담은 노래, '공무도하가'는 그렇게 마음을 파고들었는데 오늘날 김훈이 던지는 노래 또한 마찬가지다. 강 건너 피안의 세계가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그 말들이 가슴을 파고든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이 땅에서 살겠다고 아등바등 거리는 사람들을 담은 <공무도하>, 소설이 만들어내는 짙은 여운이 쓰리기 이를 데 없지만 내심 소중하다.

공무도하

김훈 지음,
문학동네, 2009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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