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된 지 16년, 빨래 하나도 못 하냐?

열 받아서 108배를 못할 정도로 꼬라지 못된 나를 보다

등록 2009.10.27 16:37수정 2009.10.2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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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혼한 지 16년 된 주부입니다. 직장과 제 일을 가진 지도 16년이구요.


제 손으로 아침밥을 해먹고 산 지는 10년 됐습니다. 반찬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을 하기 시작한 것은 6년쯤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집안 일 못 하는? 안 하는? 속 터지는 며느리

그럼 그전에는 어떻게 살았냐? 훌륭하신 시어머님께서 저를 워낙 예뻐하셔서(?) 밥과 빨래, 집안 일을 몽땅 해주셨습니다. 제 입장에서야 예쁨을 받아서 그렇게 해주셨다고 생각하지만 시어머님 입장에서는 억수로 속터지는 며느리를 얻으신 것이지요^^ 

어쨌든 지금은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반찬을 제가 하고 삽니다. 물론 그 반찬이라는 것은 콩나물 무침이라던가, 콩나물 국이라던가, 미역국, 된장국이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장조림이나 불고기나, 멸치볶음, 이런 것은 망치면 안되는 중요한 밑반찬이기에 친정 엄마가 해주십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너무나 잘 압니다. 무척 재수없는 여자다 싶으시죠? 저도 이렇게 말하는 여자. 진짜 밥맛없고, 재수없게 생각합니다. 


결혼한 지 16년 주부의 팔푼이 행동

그런데 죄송하게도 이 밥맛없는 여자가 어제 팔푼이 같은 짓을 했습니다.


모처럼 엄마와 언니 손을 빌리지 않고 겨울 옷을 정리 하다 제가 아끼는 겨울바지를 발견했습니다. 당장이라도 입을 마음을 가지니 구겨진 바지가 맘에 안들었습니다. 다림질을 하려고 보니 양쪽 엉덩이 부분에 약간의 기름기가 묻은 것이 눈에 띕니다. 

그냥 입어도 별 티가 안나는데 약간의 결벽증이 발동한 제가 밤 11시에 빨았습니다. 이미 빨아놓은 바지였기에 기름기 묻은 그 엉덩이부분만 빨면 된다 생각해서 솔에 비누를 잔뜩 묻혀 그 부분만  박박 문댔습니다.

박박 문대면서 생각했지요. '혹시... 여기만 물이 빠지지 않을까?'

a  화끈하게 솔로 문댄 바지

화끈하게 솔로 문댄 바지 ⓒ 권영숙


저... 결혼한 지 16년 된 주부입니다.

이번 여름, 시원하게 잘 입고 다니던 숯염색 생활한복에 김치국물이 튀었습니다. 세탁기에 돌렸는데 잘 안빠졌기에 그때도 솔로 그 부분만 열심히 문대서 빨았습니다. 그 옷 어떻게 됐을까요? 저 그 옷 볼 때마다 한숨과 짜증이 올라오면서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니 나이가 몇인데 옷을 그 따위로 빨아? 너 바보냐? 어디가서 말도 꺼내지마. 진짜 쪽팔려' 라고요.

그런데 어제 또 똑같은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습니다. 치매일까요?

엉덩이 한쪽 부분만 하얗게 된 바지를 보며 아침내 속이 끓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올라오는 화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그 바지를 앞에 두고 108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내가 화가 날까, 저 바지는 이미 내가 잘못 빨아서 돌이킬 수도 없는데 왜 자꾸 화가 날까.

부처님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도 청정한 수행자로 사셨는데 색이 좀 바랬다고 그것에 끄달려서 계속 화를 내는 나는 도대체 부처님의 제자가 맞기는 한건가? 아니 제자는 고사하고라도 부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기는 하는건가? 지금 이 일이 화 낼 일인가? 이 일이 나 자신을 그토록 못살게 굴 일인가?

108배를 하는데 무릎이 꿇어지지가 않습니다. 제 자신한테 화가 나서요.

집에 놀러온 엄마들한테 바지로 인한 내 마음이 이러했다고 이야기를 하니, 한 엄마가 제게 그럽니다.

"저기요. 저 다음달에 정토회 '깨달음의 장' 신청했는데 취소할까봐요. 언니는 깨장을 다녀왔는데도 그 수준인데 안 가도 되지 않을까요?"
"야! 너 죽을래? 불난 집에 부채질하냐? 나 성격 많이 좋아진거야"
"그럼, 지금이 좋아진거면 그 전에는 어느 정도였다는 거예요?" 

그 엄마가 열난 제 머리에 기름까지 붓는데 다른 엄마들은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자기네들 일이 아니라고 다들 저럽니다.

그 바지를 안 입으려다 용기내서 입고 보는 사람마다 물었습니다.

"내 엉덩이에 이상한 점 없어요?"
"있어. 왜 한쪽만 하얀거야?"
"티 나요?"
"그럼 티나지 않나냐?"
"많이 나요?"
"어, 많이 나. 뭔 짓을 한거야? 설마 그쪽만 솔로 문댄 건 아니지?" 

휴........

나이든 동네 아줌마들이 절 무척이나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그 눈빛에는 '저런 며느리 얻을까봐 심히 걱정된다'는 에너지를 가득 담고 말이죠.

아주 사소한 바지 사건이지만 전 제 꼬라지를 보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많이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해, '자녀교육'에 대해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줬던 제가 바지의 부분탈색에 열이 나서 108배를 못할 정도라니, 부끄럽지만 지금의 제 모습임을 인정합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알지만 한발 한발 갑니다. 갈 길이 멀었다고 멈춰 있는다면 영원히 제 '습'으로 인해 괴로워해야겠지만 못하는 현재를 인정하고 한걸음 앞으로 나간다면 반드시 괴로움이 없는 세상에 도착하겠지요.

이 길을 가는데 먼저 가고 계신 분에게 궁금한 걸 묻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법륜스님께서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한다고 하는데 가서 여쭤볼까요?
제 꼬라지를 어떻게 바꾸면 되는지 말이죠.

여러분도 한번 시간되시면 가서 들어보시면 어떨까요? 혹시 가까운 곳에서 하면 시간 내 보세요. 종교와 관계없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그나마 스님 법문 듣고 제가 이 정도로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훨씬 더 심했거든요.

법륜스님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적어도 지금보다 행복한 시간이 되실 겁니다.

a  법륜스님 전국 강연 일정

법륜스님 전국 강연 일정 ⓒ 권영숙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법륜스님 #날마다 웃는집 #김영사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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