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의 참회 "얼굴 못 들겠다"

[저자와의 대화]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펴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록 2009.10.28 09:47수정 2009.10.2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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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7일 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저자와의 대화 : 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열리고 있다.

27일 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저자와의 대화 : 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내가 잘못 살았다는 뉘우침을 하고 있습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젊은이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혔다. 27일 저녁 7시 30분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저자와의 대화' 자리에서였다. '한겨레 출판'과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함께 주최한 이번 행사에서 백 소장은 "얼굴을 못 들겠다", "괴롭다"면서 여러 차례 사과를 반복했다. 뭐가 그렇게 죄송했을까?


발단은 한 독자의 질문. 그는 "4·19를 대혁명으로 치지만 그 다음 암흑시대를 불러왔고, 6·10항쟁에서 잠시 승리한 것 같았지만 훨씬 긴 시련의 시기를 맞이했다, 남북화해도 조금 하다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면서 "선생님이 목숨을 다 바쳐 일하신 것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백기완 소장의 답변은 "제가 일을 잘 못해서 젊은 여러분들을 실망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괴로운 심경을 드러냈다.

"4·19 때 동무가 '넌 왜 안 죽었니' 그러더라구. 내가 앞장 못선 모양이지 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지금도 괴롭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통일을 위해 싸웠는데 더 나빠지지 않아요? 이수호(민주노동당 최고위원)라고 나랑 친한 노동자가 어제 용산 유가족을 위해 밥 안 먹겠다고 기자회견 하는데 잡아가뒀잖아요. 이것도 나라인가. 이걸 위해 50년 피눈물 흘렸나…. 내가 잘못 살아서 그렇다는 뉘우침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생애도 두려움 없이 못된 놈 까부시자고 할 말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선의 추억 "너도 나도 대통령 하겠다고, 재수 없다"

늙은 투사의 이같은 참회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질문을 던진 독자는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백 소장은 또한 대선 후보로 나섰던 지난 시절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 자리에 가면 뭘 해야 하나 심어주려고 나갔다"면서 "나가보니까 너도나도 대통령 하겠다고 하더라, 재수 없어서 회상하기도 싫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역시 '대통령 해먹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존립한다는 것이다.

a  27일 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저자와의 대화 : 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열리고 있다.

27일 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저자와의 대화 : 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그가 자신의 한살매(일생)을 책으로 펴내면서 알리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 용꿈을 버리고 지렁이를 닮자는 것이다. 용은 노동도 않고 수채구멍에서 자다가 여의주 생기면 하늘로 올라가려는 짐승이지만 지렁이는 흙을 먹고 흙똥을 싸서 흙을 기름지게 하는 짐승이기 때문이다. 좋은 유치원부터 다녀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회사 가려는 젊은이들도 '용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두 번째, '달걷이'를 하자는 것이다. 그는 옛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시골의 못된 원님에게 화가 난 동네 사람들이 그를 바다에 던지고 달을 건져오라고 했는데 욕심만 붙잡으려다가 결국 못 건지고 죽었다는 내용이다. 그는 "거짓말 하는 사람들 권력만 지키려는 사람들 다 물 속에 넣고 달을 건져오는 사람만 배 위에 올라오게 하자"고 말했다.

세 번째, 우리 겨레 기상대로 이 땅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깃발을 꽂자는 게 아니라 사랑의 상징인 진달래와 밤나무, 은행나무를 심자는 것이다.

백기완 소장은 이날 "내 말이 맞으면 박수 좀 쳐봐" 등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나무심기 노래도 불러가면서 이야기의 흥을 돋궜다. 그러나 강연 도중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어지럽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진행자의 부축으로 의자에 앉은 뒤에야 그는 다시 강연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강연은 무리없이 이어졌고, "건강은 괜찮냐"는 독자 질문을 받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다"는 패기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편 이번 자서전을 한자어나 영어 없이 우리말로만 펴낸 백 소장은 이번에도 '날노래(유행가)', '넓막(넓은 마당, 즉 대륙)', '말등(화두)' 등 여러 순우리말을 사용했다. 이번 강의 도중 <오마이뉴스>라는 제호를 '우리들의 새뜸'으로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새뜸'은 '새로 뜬 소식', 즉 뉴스를 뜻한다. 그는 '동아리', '모꼬지' '달동네' 등 수많은 순우리말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a  27일 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저자와의 대화 : 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열리고 있다.

27일 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저자와의 대화 : 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나의 한살매

백기완 지음,
한겨레출판, 2009


#백기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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