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유령 제방도로'의 비밀

[광양제철소의 환경오염 논란 - 르포⑤] "동호안 제방, 치명적 결함 'E'등급"

등록 2009.10.30 11:56수정 2009.10.3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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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조강 생산 능력을 보유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그러나 광양만은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60일 전 발생한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는 인재였다. 쪽빛 바다를 흑빛으로 만든 폐기물 침출수는 환경 대재앙의 서곡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사고로 광양제철소 동호안에 대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사고 원인과 대책을 몇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말]
a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도로 붕괴 사고 지점에서는 침출수를 퍼올리는 등 응급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2005년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광양제철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동호안 제방 상단에 LNG터미널 진입 도로를 만들었지만, 광양시로부터 인허가를 받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도로 붕괴 사고 지점에서는 침출수를 퍼올리는 등 응급 복구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2005년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광양제철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동호안 제방 상단에 LNG터미널 진입 도로를 만들었지만, 광양시로부터 인허가를 받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 최경준


"이번 붕괴 사고의 본질은 광양만이 환경 대재앙의 위험 앞에 어떤 안전판도 없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23일 발생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도로 붕괴 사고에 대한 한 환경단체 간부의 말이다. 광양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들은 사고 발생 훨씬 이전부터 동호안의 환경오염 문제와 함께 제방도로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해왔다. 동호안에서 흘러나온 백탁수가 제방도로를 통해 광양만으로 유출되는가 하면, 최근에는 도로를 따라 곳곳에서 밀림 및 균열 현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포스코측은 "제방도로는 안전하다"며 이러한 문제제기를 외면했다. 반면 광양어민회 측은 "제방이 워낙 연약지반인데다가 제방 위에 있는 도로를 이용해 (동호안 남단에 위치한) LNG터미널로 가는 중장비 차량으로 인해 제방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실제 <오마이뉴스> 취재 결과 제방 상부에 있는 도로는 관계기관으로부터 정식 인허가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제방 붕괴 사고가 발생하자, 포스코측은 "제방도로가 무너져도 큰 문제가 없다"며 말을 바꿨다. (관련 기사 : 포스코 광양제철소 책임 회피 '말 바꾸기') 도대체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도로에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는 것일까?

포스코, 제방 위에 '유령 도로' 만들어 LNG터미널 진입로 이용

"이 제방은 단순 물막이 둑이다."

사고가 발행한 뒤, 포스코측은 제방도로가 '단순 물막이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별로 견고하지 않다"고도 했다. 사고가 발생한 제방도로와 맞닿아 있는 인선ENT의 폐기물매립장이 제방 붕괴 사고의 원인임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심지어 "설사 제방을 종이로 만들었더라도 인선ENT는 그것을 감안해서 폐기물매립장을 만들었어야 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특히 포스코측은 "붕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과하라"는 광양어민회 등 시민단체의 요구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도로 파손에 따른 피해 보상과 복구비용을 우리가 요구해야 할 판"이라며 "제방도로 붕괴 때문에 LNG터미널로 가는 통로가 막혀서 못 다니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 (자료사진)

정준양 포스코 회장. (자료사진)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남소연

포스코는 일관제철사업의 특성상 24시간 연속조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포스코는 제철소 사용 LNG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지난 2005년 4월 자가용 LNG터미널을 지었다. 광양 LNG터미널에서 처리된 일부 물량은 가스공사의 전국배관망을 이용해 포항제철소에까지 공급된다.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친환경 청정에너지 공급확대로 국가경제를 주도하는 철강산업의 '지속가능 경영'을 구현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ENG터미널은 동호안 남측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번 붕괴 사고가 발생한 제방도로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 본격적인 터미널 부지조성 공사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98년부터다. 터미널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출퇴근 차량은 물론 각종 중장비를 실은 대형트럭이 10여년 가까이 제방도로를 통해 오고 간 셈이다.

그나마 이전까지는 비포장 도로였다가 2005년 준공과 함께 약 4.9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아스팔트로 포장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광양제철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제는 이 제방도로가 광양시로부터 인허가를 받지 않은 '유령 도로'라는 것이다. 광양시의 한 관계자는 2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것은 도로가 아니고 그냥 제방"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토지대장 어디에도 그곳이 도로로 인허가된 기록이 없다"며 "포스코에서 LNG터미널 진입로로 이용하기 위해 포장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포스코측에서는 제방도로에 대해 정식 인허가 요청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호안 슬래그처리장 조성 당시 매립 공사가 모두 완료된 뒤에 도로로 승인받기로 했다"는 게 광양시측의 설명이다.

슬래그처리장 매립 사업은 2076년까지 시행될 예정이다. 따라서 그 전에는 제방을 도로로 인허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슬래그처리장에 매립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제방을 도로로 사용해선 안된다. 이는 동호안 제방의 안정성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LNG터미널을 지을 욕심에 도로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제방을 인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도로로 사용해 온 것이다.

제방도로에 대한 인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도로로서 법적 기준에 맞는 기본적 설계나 시공도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제방 상부에 도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토해양부장관이 제정한 '도로공사표준시방서'에 따라 연약지반 개량 공사, 층 다짐 공사 등을 해야 한다.

하지만 포스코측은 제방에 대해 "단순 물막이용"이라고 밝혔다. 제방 시공 당시 도로 사용을 전제로 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또한 제방 붕괴 사고 발생 이전부터 제방도로 곳곳에서 도로 방향을 따라 밀림이나 균열 현상이 발생해 왔다.

"슬래그 대신 모래 쓰면 제방 강도는?"... "상식적으로 낮아져"

a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도로 붕괴 사고 이전부터 도로 곳곳에 균열 현상이 발생해, 광양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제방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사진은 제방 붕괴 사고와 관계없는 지점에서 발견된 도로 균열 흔적.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도로 붕괴 사고 이전부터 도로 곳곳에 균열 현상이 발생해, 광양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제방의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사진은 제방 붕괴 사고와 관계없는 지점에서 발견된 도로 균열 흔적. ⓒ 최경준

동호안 제방도로의 안전성 문제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쟁점이 됐다. 포스코측이 제방의 원 설계도면이 아닌 공사 도중 임의로 변경된 도면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설계도면 진위 논란이 벌어진 것.

특히 원 도면에서는 철강 찌꺼기인 슬래그시멘트로만을 이용해 제방을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포스코가 국회에 제출한 변경도면에 따르면 제방에는 슬래그와 함께 상당 부분의 모래가 사용됐다. 이에 대해 포스코측은 "슬래그가 부족해 모래를 사용했으며, 공사 도중 자재가 바뀌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 19일 국감 당시 추미애 환노위원장은 조뇌하 광양제철소장을 상대로 슬래그 대신 모래를 사용된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집중 추궁했다. 추 위원장은 "원래 사토와 슬래그로 만들기로 했는데, 슬래그 대신 한 가운데 모래가 들어가면 제방의 강도가 어떻게 되느냐"고 따졌고, 조 소장은 "상식적으로는 (강도나) 낮아진다"고 인정했다.

추 위원장은 "애초 물막이용 호안(침식 방지를 위한 구조물)이었지만, (포스코가) 호안 안쪽에서 계속 준설을 해왔기 때문에 저절로 제방 둑이 됐다"며 "그렇다면 호안 안쪽 수압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합당한 제방 보강이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고 질책했다.

포스코는 국회에 제출한 변경 도면에 대한 관계기관의 인허가 서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인허가를 내준 전남도청과 모든 문서를 인계받은 광양시청에도 인허가 서류는 물론 변경된 도면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제방 공사 도중 임의로 재료를 바꿔놓고 이를 정식으로 승인받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게다가 포스코가 국회에 제출한 제방 안전성 검토 결과는 변경 도면이 아닌, 원 도면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조뇌하 소장은 "17년 전에 설계 변경된 사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며 "그러나 제방의 안전률은 1.5이상 확보돼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 소장이 밝힌 변경 도면의 제방 안전률 역시 17년 전의 것으로, 이후에는 제방에 대한 안전성 조사를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치명적 결함... 돌발 붕괴 가능성 높아"

특히 최근 제방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뒷받침할 만한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주)한국구조물진단연구원(원장 윤재진)은 인선ENT의 의뢰를 받고, 사고 발행 이후 9월 한 달간 제방에 대한 안전성 조사를 실시해 지난 15일 발표했다. '안전진단 및 붕괴제방 영향성 평가진단'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동호안 제방의 돌발 붕괴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a  지난 8월 23일 발생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도로 붕괴 사고의 흔적.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도로가 흉측하게 뒤틀리고 융기, 균열 돼 있다. 이 제방이 무너지면 동호안에 있는 오폐수 3천만 톤 이상과 인선ENT 및 포스코의 매립 폐기물 수백만 톤이 순식간에 광양만으로 쏟아지는 환경 대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 8월 23일 발생한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도로 붕괴 사고의 흔적.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도로가 흉측하게 뒤틀리고 융기, 균열 돼 있다. 이 제방이 무너지면 동호안에 있는 오폐수 3천만 톤 이상과 인선ENT 및 포스코의 매립 폐기물 수백만 톤이 순식간에 광양만으로 쏟아지는 환경 대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 최경준

"해안 제방의 안전성 확보에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차수성(물의 흐름을 차단하는 기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축조되어, 해안 조수간만의 차와 담수호 수위 상승 등에 노출되어 있고, 이에 따라 미세입자가 유출돼 결과적으로는 유로(물길)가 형성되고 제방 구조체에 다수의 공극(구멍)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제방도로의 안전등급평가 결과 붕괴 및 비 붕괴 구간 제방 안전상의 평가등급은 사용정지를 해야 하는 D등급으로 평가 되며 전체적으로 붕괴의 위험이 상존해 조기의 대규모 보강조치가 요구된다.… 대상 제방은 치명적 결함으로 돌발 붕괴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재난관리차원에서는 전체적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철거 후 재축조가 요구되는 E등급으로 평가 된다."

현재 동호안 제방은 언제 붕괴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용정지' 또는 '철거 후 재축조'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만약 제방이 터져 동호안에 있는 오폐수 3천만 톤 이상과 인선ENT 및 포스코의 매립 폐기물 수백만 톤이 순식간에 광양만으로 쏟아져 나온다면 국가적인 환경 대재난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조뇌하 광양제철소 소장은 이 보고서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조사했는지 모르겠지만, 신뢰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포스코측의 한 관계자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연락이나 자료 요청도 없었다. 객관적이지 않기 때문에 (보고서는)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포스코측은 여전히 제방에 대한 자체 안전성 검사 계획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포스코가 감추고 싶은 '유령 제방도로의 비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동호안 제방 붕괴 사고 #동호안 제방의 비밀 #정준양 포스코 회장 #LNG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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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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