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전두환 정권과 오늘이 다르지 않습니다"

10.28 건대항쟁 23주년 기념식

등록 2009.10.31 20:12수정 2009.10.3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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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8 건대항쟁 기념식에서 민중의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10.28 건대항쟁 기념식에서 민중의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금준경

10월 31일 오후 4시 건국대학교 중강당에서 10.28 건대항쟁 23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10.28 건대항쟁 계승사업회>가 주최한 이 행사는 10.28 건대항쟁의 주역들과 건국대 민주동문회, 건국대학교 학생들이 참가했다.

기념식은 사회자의 개회선언과 민중의례로 시작되었다. 1986년 10월 28일 건국대학교에서 '자주', '민주', '통일'의 기치로 반독재 반외세를 외치던 대학생들은 어느덧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만 6월 민주항쟁 이후에 태어나 2000년대 대학에 입학하여 촛불집회를 경험한 현재의 대학생들도 그곳에 있었다. 다른 시기를 살아간 각자의 세대가 건대항쟁을 계기로 만난 것이다.

현재 건국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석(10.28 건대항쟁계승사업회 회장)씨의 기념사가 이어졌다. 김석 회장은 10.28 건대항쟁 당시 건국대학교 철학과 학생으로서 건대항쟁에 참가했었다.

"사건은 기억되지 않으면 묻히고 잊히는 법입니다. 노근리 학살사건은 전쟁 중의 한 사건으로 취급될 수 있었지만 기억하고 진실을 되찾으려는 노력 끝에 미국의 사과까지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노근리 학살에서 보이듯 역사는 뿌리내리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순한 과거의 회고가 아니라 과거를 통해 양분을 얻어 뿌리내리는 것입니다. 10.28 건대항쟁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국대학교 내 10.28 공원의 동상의 의미를 현재의 대학생들은 알지 못합니다. 잊혀가는 10.28 건대항쟁을 뿌리내리려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차분한 어조로 김석 회장은 10.28사업의 재기를 바라며 기념사를 끝맺었다.

인서점 심범섭 대표의 축사 심법섭씨는 최초의 사회과학서점 인서점 대표이자, 한겨례 칼럼기고, 광진 통일한마당 대표 등의 많은 활동을 해오셨다.
인서점 심범섭 대표의 축사심법섭씨는 최초의 사회과학서점 인서점 대표이자, 한겨례 칼럼기고, 광진 통일한마당 대표 등의 많은 활동을 해오셨다. 금준경

이어 건국대 앞 인서점 대표이자 1980년대 대학생들을 도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심범섭 대표의 축사가 시작되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 거의 모든 정책은 장기집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노동운동, 학생운동, 나아가 많은 국민들이 군사독재의 음모를 읽어냈습니다. 2009년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에 언론마저 정권에게 넘어가버렸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개개인은 모두 자기의 길만을 걷고 있습니다."

인서점 심범섭 대표는 건대항쟁의 그때와 현재의 상황이 다르지 않다고 표현했다. 군부의 서릿발 아래에서 학생들에게 금서를 복사해주고, 학생들이 숨을 곳을 마련해주며 학생운동을 도왔던 그에게서 20여 년이 지난 현재의 학생들 모습은 낯설고 당혹스러운 듯했다. 심 대표는 10.28 건대항쟁의 정신을 거듭 강조하며 "건대항쟁은 6월항쟁의 성공을 이끌어낸 씨앗이었습니다"라는 말로 축사를 마무리했다.


이어서 10.28 건대항쟁 23주년 기념영상이 상영되었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건대항쟁 당시 연세대학교 학생으로 건대항쟁에 참여했던 이상근씨가 10.28 건대항쟁에 대한 회고발언을 이어갔다.

 농성 학생으로 돌아가 건대항쟁을 회고하는 이상근씨
농성 학생으로 돌아가 건대항쟁을 회고하는 이상근씨금준경

"당시 건국대학교에 올 때 별 위협을 못 느끼고 들어왔습니다. 경찰의 제지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집회를 끝내고 함께 참여했던 현재의 아내와 데이트 약속을 잡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력이 투입되면서 저는 도서관에 아내는 본관에 갇혔습니다."

20여 년이 흘렀지만 마치 얼마 전의 일처럼 상세하게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였다.

"1500명의 학생들은 아무런 농성 준비도 못한 채 건물 안에 갇혔고 전경들은 창문을 모조리 깼습니다. 그날은 상당히 추웠고 새벽에 첫눈도 내렸습니다. 춥고 배고픈 상황 속에서 단전단수가 되었고 찬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인지 상황을 떠올리며 역사 속 개인의 허망함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외부적 고통들 속에서 견뎌내야 했지만 마음 내부에서 오는 고통이 더욱 자신을 흔들리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자 더욱 고통스러워졌다고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모두 어떻게든 음식을 발견하면 나눠먹고 8명이서 담배 한 개비를 함께 피기도 했습니다. 사실 서양과 달리 한국의 학생운동이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념보다는 양심과 동지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우리나라 학생운동과 사회변혁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학생운동의 원동력은 사람이 중심에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회고사를 정리하며 그는 '추억'을 남기자는 말로 끝마쳤다.

"건대항쟁이 30, 40주년이 되더라도 자랑스럽게 친구와 자녀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쁨과 행복으로 추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이광석씨의 공연
우리나라 이광석씨의 공연금준경


 우리나라 이광석씨의 공연.
우리나라 이광석씨의 공연. 금준경

건대학생들의 문예공연, 총학생회장의 정치발언이 이어졌고 행사는 막바지에 다다랐다. 축하공연으로 건국대학교 출신인 민중가요패 '우리나라'의 이광석씨가 무대에 올랐다. 이씨는 '상록수', '흔들리지 않게', '다시 광화문에서'를 부르며 1980년대와 21세기의 저항역사를 노래로 읊었다. 세 곡을 열창한 이광석씨는 "23년 전과 오늘이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공연을 끝맺었다.

10.28 건대항쟁, 그리고 6월항쟁의 386세대, 그리고 현재의 촛불세대로 이어졌지만 그때와 지금에 처한 위기는 다르지 않다. 저항정신의 본질도 다르지 않다. 건대항쟁 23주년 기념식에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은 두 세대가 참여했지만 상대방의 민주화운동과 촛불집회를 바라보며 동질감을 느끼는 장이 되었다.

 아버지와 함께 민족해방가를 부르며 팔뚝질하는 아이들
아버지와 함께 민족해방가를 부르며 팔뚝질하는 아이들금준경

이날 행사는 '민족해방가'를 열창하며 끝이 났다. 이날 건대항쟁을 경험했던 아버지를 따라온 두 아이의 모습도 보였다. 386세대, 그리고 촛불세대가 끌어안아야 했던 많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들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팔뚝질을 해댔다. 부디 저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땐 전두환 정권의 광주학살도, 이명박 정권의 용산참사도 재현되지 않길 바란다.
#10.28건대항쟁 #건대항쟁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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