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사관으로 복무하던 친구가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다. 기존에 있던 파병 요원과 교대하기 위해서란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더 높은 근무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용병을 희망하는 많은 지원자 중에서 선발되었기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군기 빠진 어린 병사들과 지내는 한심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들떠 있었다.
가족과 자신을 위해 새로운 모험을 감행한 그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 직면해야 하는 위험과 두려움을 얘기해봐야 소용없을 터, 우리는 그것을 그의 선택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주는 그 무엇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가 떠나고 2주의 시간이 흘렀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본격적으로 들려온다.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총사령관은 지금 상태로는 승산이 없다고, 그나마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대규모 증파가 필요하다고 실토했다. 본국을 향해 배 째고 누운 형국이다.
미국에서는 논쟁이 벌어졌다. 이제 슬슬 손을 떼자고 하는 사람들과 군대를 더 보내야 한다는 사람들, 이참에 대규모로 보내 깔끔하게 정리하자는 사람들과 일단 조금만 더 보내고 추이를 지켜보자고 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고심 중이다.
이런 고민을 전해들은 대한민국 정부는 즉각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추가파병하기로, 그것도 전투 병력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결정의 내막은 모르지만, 목돈과 점수와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군인들은 경쟁을 벌일 것이고 그 덕에 한미 정상회담 분위기는 더 부드러워 질것이다.
궁금했다. 모든 것이 부드럽게 돌아가니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도대체 친구는 어떤 나라로 떠난 것일까?
기자의 눈으로 본 아프가니스탄의 일상
미지의 나라로 떠나기 전에 항상 고민스러운 점은 누구의 눈을 통해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아프가니스탄은 1919년 건국 이래 지금까지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나라이므로 더욱 고민스러웠다. 그곳의 실상을 제대로 알게 해 줄 안내자가 필요했다.
'오스네 사이에르스타트'의 <카불의 책장수>를 골랐다. 저자는 체첸·세르비아·코소보·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지를 취재한 노르웨이 출신의 여성 종군기자다. 그녀는 2001년 11월, 미국의 탈레반 소탕작전을 취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서 북부동맹군을 동행취재했고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후에는 수도 카불에 머물렀다.
작가는 카불에 머무는 동안 '술탄 칸'이 운영하는 서점의 단골손님이 되었으며, 그의 집을 방문한 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술탄은 책을 사랑하는 개방적인 이슬람교도답게 이 서양 여성 기자를 집 안에 받아들였다. 저자는 3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하며 가족들 한명 한명의 인생과 일상을 기록했다.
술탄의 집이 먹고 살만한 중산층 가정이기에 가능했고, 가족 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저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술탄과 장남 '만수르'와 여자아이인 '레일라'의 통역으로 그들의 인생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을 수 있었다). 서양인이기에 남자들과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었고, 여성이기에 '부르카(얼굴 가리개)' 속에 감춰진 이슬람 여성의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저자는 그 기록을 3인칭 소설의 형식으로 써냈다.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그들의 생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말하자면 이 책은 소설이자 다큐이고, 취재수첩이자 여행기이다. 가족들 각자의 열망과 애증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고, 그 가족사 속에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문화가 소상히 녹아있다. 국경지대의 지뢰밭을 걸어가듯 예상치 못했던 지식과 감동이 곳곳에서 폭발하는 책이다.
아프가니스탄, 그 전쟁의 역사
이 책의 매력은 가족사 속에 전쟁의 역사를 담아서 문화와 종교, 전쟁과 일상을 입체적으로 전달하는데 있다. 가장 '술탄'의 어머니이자 최고령자 '비비굴'은 세 번의 전쟁과 다섯 번의 쿠데타를 겪었다.
비비굴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실크로드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세계무역과 문화교류의 장으로서의 가장 위대한 증거는 간다라 양식의 거대한 석불인 '바미안 석불'이다. 탈레반 정권기에 흔적도 없이 폭파된 이 석불은 커다란 검은 구멍인 채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번영은 짧고 수난은 길었다.
알렉산드로스와 몽고의 침략이 있었고, 19세기와 20세기에는 영국과 러시아의 간섭이 극심했다. 1919년 드디어 영국을 몰아내고 완전독립을 이루어 왕정을 수립하지만, 그 이후에도 수많은 전쟁이 반복되었다. 아름다운 도시와 번성했던 시장은 모두 폐허로 변해버렸다.
왕정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비비굴의 인생사와 겹쳐지고, 책장수 술탄 칸의 자수성가 과정과도 맞물린다. 종족, 이념, 종교의 복잡한 조합이 끝없는 전쟁을 불러 일으켰다.
왕정의 붕괴와 사회주의 정권의 출현, 사회주의와 이슬람 문화의 충돌, 소련의 붕괴를 불러 온 10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지하드(이교도에 대한 성전)'를 통해 소련을 몰아내고 집권한 '무자헤딘(성스러운 이슬람 전사)', 무자헤딘(파슈툰 족)의 종족차별로 결성된 탈레반(타지크 족)의 출현과 집권, 2001년의 9.11테러, 테러범 색출을 위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과 탈레반 축출, '오사마 빈 라덴' 체포 실패와 탈레반의 부활...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권력은 크게 세 축으로 나뉘어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 관료출신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정부, 카불을 제외한 국토의 대부분을 다시 점령해나가고 있는 탈레반, 각 세력과 전략적으로 제휴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지역 군벌이 그것이다.
누가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전쟁을 종결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친미적 성향의 현 정부가 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게릴라전으로 단련된 탈레반을 뿌리 뽑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테러범 색출을 명분으로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으나 탈레반 자체를 적으로 삼기에는 명분이 약하다. 명분을 무시하고 대규모 증파를 하더라도 탈레반을 섬멸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한편 탈레반이 권력을 잡으면 과거의 끔찍했던 엄격한 통제와 강요가 재현될 것이다. 또 미국은 과격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역 군벌은 그 사이에서 경우에 따라 협력하며 사리사욕만 채울 것이다. 북동부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군벌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전쟁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진행되어 왔는지 알 수 있다.
"미국 첩보기관은 (지역 군벌인) 파드샤 칸을 중요하게 여겼다. 미군은 지상 작전에 협력을 필요로 했고, 그들에게 군벌이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파드샤 칸이 맡은 임무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병사들을 찾아내어 미군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군은 파드샤 칸에게 위성전화를 제공했고, 파드샤 칸은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 근방의 알카에다 동향을 보고했다. 그러면 미군은 이 말에 근거해서 화력을 퍼부었다. 이 마을 저 마을에... 이 중 알카에다와 관련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모두들 파드샤 칸의 적이라는 점이다."
결국 카르자이 대통령은 그를 제거하기로 결정했고, 파드샤 칸은 홀로 작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카불을 제외한 국토 전역이 이러한 상태라고 한다. 정부의 치안은 도로 반경 200미터까지 밖에 미치지 못하며, 도로를 벗어난 대부분의 지역은 탈레반이나 지역 군벌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수라장이다. 지금, 그 아수라장으로 나의 친구는 떠났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그곳에 전투를 불사하는 무장 병력을 증파하기로 결정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이 전쟁의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걸까.
희망이 곧 악몽인 사람들
이 책을 읽는 동안 정치적인 내용에 신경이 쏠린 것은 친구와 파병문제가 눈앞에 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 책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술탄의 가족으로 대표되는 현지 주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쟁의 역사를 산발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그들의 생활을 통해 전쟁과 인간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다.
정치상황이 변할 때마다 생업을 지키기 위한 술탄의 여정은 길고 험난했다. 저자는 책의 초입에서 전쟁의 역사와 술탄의 자수성가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십대 때부터 책을 팔기 시작한 술탄은 전쟁 속에서도 악착같이 서점을 일궜다. 목숨을 걸고 소련·이란·파키스탄 등지를 오가며 새 책을 수집했다.
탈레반 정권 하에서는 책을 소각당하기도 하고, 불온서적을 소장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캐나다로 떠나는 여권을 받아 놓고도 주문해 놓은 책을 받기 위해 탈출을 포기했고, 파키스탄으로 피신하면서도 서점의 비밀 서고에 책을 숨겼다. 그리하여 현재 그는 카불에서 가장 많은 책을 보유한 서점의 주인이자, 출판업자가 되었다.
술탄은 사회주의 서적에서 과격 이슬람 서적까지 책이라는 책은 가리지 않고 취급한다. 지금도 그는 새 책을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의 페샤와르나 이란의 테헤란을 오간다. 그는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시간보다 아들들이 서점의 영업시간을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렵게 번 돈을 메카 순례에 쓰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여기는 현실적인 무슬림이다.
술탄의 가족은 대가족이다. 할머니 '비비굴', 첫째 부인 '샤리파', 어린 둘째 부인 '소냐', 큰 아들 '만수르', 둘째 아들 '에크발', 셋째 아들 '아이말', 더부살이 여동생 '샤킬라', '불불라', 샤킬라의 자식들인 '유누스'와 '레일라', 그리고 소냐가 낳은 간난 아기들.
이야기는 술탄이 둘째 부인인 소냐와 결혼하는 과정으로 시작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사와 생활을 따라가며 진행된다. 모든 이야기가 가슴 아프고 감동적이다. 그녀가 취재 경위를 밝힌 서문을 통해 그 대표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자.
" 나는 그(만수르)의 허락을 구한 후 마자르까지 순례 여행에 보이지 않는 네 번째 동행인으로 따라갔다. 이 외에도 나는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와 라호르까지의 (술탄의) 출장길, 알카에다 추적, 저잣거리에서 장보기, 대중탕, 결혼식과 결혼식 준비, 학교, 교육부, 경찰서와 감옥까지 모두 동행했다. "
인용을 읽는 동안에도 그 슬픈 에피소드들이 다시금 선명하게 떠오른다. 만수르는 25살 청년이다. 그의 사랑과 욕정, 자유에의 갈망은 출구가 없다. 이슬람의 규율과 술탄의 절대적 권위에 의해 억압당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만수르는 옆 가게 친구가 빈민 소녀들과 벌이는 음성적인 매춘의 현장을 목격하고는 거기서 도망쳐 나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흥정의 과정을 구경한 죄책감이고, 그 친구를 질책하지 않은 죄책감이다. 그는 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 성지순례를 떠난다. 성지순례는 그런 만수르에게 열려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신비하게만 여기던 이슬람 순례여행이 생동감있게 펼쳐진다.
중산층 가정의 장남의 삶이 이럴 진데 이슬람 여성들의 삶은 어떨까? 갖가지 관습의 굴래를 이토록 상세히 그려낸 작가의 집념이 놀랍기도 하고, 그 묘사가 상세할수록 그들의 삶이 눈물겹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은 '부르카'. 탈레반 정권 이후 부르카는 또 다시 여성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부르카는 여성의 얼굴을 가림으로써 돌발적인 남녀 간의 정분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잔혹한 것은 부르카에 뚫린 구멍이 경마장의 말에게 씌운 눈가리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부르카를 쓴 여인들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는 옆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여자들의 얼굴 방향만 보아도 그 여성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교묘한 신체구속의 매카니즘이다.
또한 여성은 부르카를 쓰고도 혼자서 밖에 나갈 수 없다. 여자가 혼자 밖에 나간다면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험담의 도마에 오르고, 소문은 여자들끼리 모인 뒷방에서 뒷방으로 퍼져나간다. 이슬람 사회에서 소문은 사람을 가두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결국 여성은 가장이나 남편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하여 첫째부인 '샤리파'는 술탄이 열여섯 살의 '소냐'를 둘째부인으로 들이는 꼴을 견뎌내야 하고, 열여섯 살에 오십이 다 된 술탄에게 시집을 온 소냐는 늙은 남편의 그늘과 사랑에 기대어 자신의 자리를 지켜가야 한다. 시집을 갔다가 상처하고 돌아온 술탄의 여동생 '샤킬라'나 노처녀 여동생 '불불라'는 그저 가족에 달린 혹보다도 못한 존재이며, 그런 샤킬라의 딸 '레일라'는 그 관습이 만들어 놓은 먹이 사슬의 끝이 된다.
" 레일라는 하녀로 키워져 하녀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하녀처럼 부린다. 새로운 명령을 받을 때마다 그녀에 대한 존경심은 더욱 줄어든다. 만약 누군가 기분이 안 좋으면 레일라가 고생한다. 스웨터에 남아 있는 얼룩 한 점, 맛없게 요리된 고기,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할 때 생각해낼 수 있는 불평거리는 무궁무진하다. "
새벽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것도 레일라이고, 가장 늦게 자는 것도 레일라이다. 그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햇빛이 강한 도시에서 햇빛 결핍에 의한 비타민D 부족에 시달린다. 언제나 집 안에서 일을 하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더라도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를 써야 하기 때문에 햇빛을 제대로 쪼일 수가 없다.
그녀는 다행히 영어를 한다. 파키스탄에서 난민생활을 할 때 학교에서 배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학교교사가 되어 이 지옥을 빠져나가려 한다. 가족들은 아무도 하녀가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여자 혼자 집 밖에 나가서도 안 되는 상황에서 그녀는 방법을 짜내어 학교와 교육부를 찾아다니지만 그녀의 도전은 실패로 끝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좌절에 익숙하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이라면 희망은 곧 악몽임을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중산층 가장인 술탄과 만수르의 갈등은 서점의 '엽서 도난 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술탄이 여기저기서 구한 사진과 그림을 인쇄한 엽서는 서점의 주요 수입원 중에 하나이다. 가난한 목수가 책 선반 공사 중에 이 엽서를 훔쳐서 나가다가 들킨 이 사건의 진행과정은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세대갈등과 계층갈등의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도기의 중국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 영화 <귀주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부서진 11월
이제 우리의 군대가 무엇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왔다. 버거운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소소한 개인사를 살펴 보건데, 그들의 소박하고도 절실한 열망들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분명 이슬람 문화에 내재된 봉건적 질서이다. '이스마엘 카다레'가 소설 <부서진 사월>에서 두 집안의 보복 살인사를 통해 보여준 바와 같이,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인간적인 규율인 한편 그들의 조직과 문화를 구성하는, 현재로서는 대체 불가능한 견고한 규율이기도 하다. 봉건적 질서는 가정의 구조이고, 종교의 구조이며, 권력의 구조이다.
그렇다면 이 봉건적 질서가 외국군대의 타도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슬프고 아프더라도 그들이 해결해야할 문제일 것이다. 만에 하나 탈레반이 정권을 탈환하여 억압과 탄압이 재현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외세에 의해 개선된다면 또 다른 균열을 불러올 따름이지 않을까? 이런 외세의 개입이 오히려 탈레반과 군벌이 전쟁을 벌여야하는 명분을 제공하여 전쟁을 연장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찾을 때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빼지 않을 것 같다. 지금 남은 유일한 명분은 오사마이므로. 9.11 테러를 쉽게 용서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그렇다면 미국은 그렇다치고 우리는 왜 그 전쟁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가?
세계 최극빈국, 최고의 유아사망률과 문맹률, 최대 아편 수출국 아프가니스탄에 우리가 보내야 할 것은 병력이나 성경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갈등을 지속시킬 뿐이다. 조건 없는 인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것도 그들이 원한다는 조건 하에서.
그렇다면 나의 친구는 지금 목숨 걸고 허공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의 11월은 부서지고 있다.
카불의 책장수
오스네 사이에르스타드 지음, 권민정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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