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한 지리산, 책 덮고 반야봉 시위 택한 학승

연관스님 케이블카 반대 1인 시위... 환경보호 대신 파괴 앞장서는 환경부

등록 2009.11.12 18:14수정 2009.11.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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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리산 3대 주봉인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과 정상 표지석

지리산 3대 주봉인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과 정상 표지석 ⓒ 성하훈


"샛길까지 못 다니게 막아 놓으면서 케이블카를 놔 사람들 많이 올려놓겠다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 환경을 지켜야 하는 부서가 그럴 생각은 안 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니 이름을 바꾸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어."

지난 7일 오전 지리산 주능선 길. 이른 아침 산을 오르기 위해 나왔다는 스님은 노고단에서 주능선으로 들어서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태환경보전을 이유로 접근을 막아놓은 곳이 수두룩한데, 자연을 심하게 훼손할 수 있는 케이블카가 추진된다니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 길 곳곳으로 자연을 아끼고 보호하기 위해 사람의 발길이 줄여야 한다는 홍보물이 시선을 끌고 있었다. 황폐화된 자연을 사람의 발길로부터 보호하는 것에 양해를 구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사람의 발길을 제한하는 기간도 꽤 길게 설정돼 있었다.

그만큼 생태 환경 보전을 위해서는 인위적 제한조처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이었는데, 선방에서 학문에 정진하던 스님은 그게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자연보호를 위해 여러 곳을 막아 놓으면서 거기에 반하는 케이블카를 밀어붙이고 있는 환경부의 태도가 모순되게 보인다는 그는 '뭔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라도 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승이 반야봉에 올라야 했던 이유

실상사의 연관 스님이 이날 아침 일찍 지리산에 오른 것은 산행이 아닌 1인 시위가 목적이다. 지리산권 5개 사찰(화엄사, 쌍계사, 벽송사, 실상사, 대원사)이 중심이 된 '민족성지 지리산을 지키는 불교연대'의 스님과 불자들이 돌아가면서 반야봉에서 시위를 펼치고 있는 데, 그 역시 하루를 맡아 오르는 것이었다.

연관스님. 그는 학승이다. 사회활동보다는 불경 연구가 주된 관심사고 금강경과 반야심경 등의 불교경전해석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을 역임한 그는 도법(전 실상사 주지) 수경(서울 화계사 주지) 스님 등과 함께 실상사의 3두마차로 불려왔다.


앞에 나서는 일보다는 뒷전에서 후학 양성과 경전 해석에 몰두하는 것이 관심사지만 그는 이날 망설임 없이 산에 올랐다. 사회 분위기가 자꾸만 그를 경전에 대한 연구보다는 밖으로 나가게끔 만들고 있어서다. 올해만 해도 케이블카 반대 행사 등에 참여하느라 수 차례나 지리산에 올라야 했다. 가만히 앉아서 경전만 읽고 있기에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노고단 산장에서 잠시 한 숨을 돌리고 노고단 고개에 오르니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반야봉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 옆으로 멀리 보이는 천왕봉이 구름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운해가 가득한 노고단의 모습은 또 다른 장관이었다. 스님은 감탄을 쏟아냈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보는 반야봉과 천왕봉. 영산의 영봉으로 이름난 곳이지만 구름 낀 흐린 하늘은 마치 이들 3대 영봉이 흐린 운명에 처해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개발과 훼손의 위협이 '노고 반야 천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구례군이 노고단 케이블카를 벼르고 있고, 남원시가 반야봉 케이블카를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산청군도 이에 질세라 천왕봉 바로 아래 제석봉에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있다. 일부 지방의회에서는 결의안까지 채택해 케이블카 밀어붙이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모습이다. 스님의 발걸음이 지리산을 향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앞에 나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그였지만, 자연이 처한 위기 상황을 무심히 넘기기 어려웠기에 작은 몸짓이나마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그는 반야봉으로의 발길을 재촉했다.

'이명박 정부는 지리산을 파괴하지 말라!'

a 1인 시위 지난 7일 지리산 반야봉에서 실상사 연관 스님이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1인 시위 지난 7일 지리산 반야봉에서 실상사 연관 스님이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 성하훈


"반야는 부처님의 부모인데, 그런 곳을 훼손하겠다니 어떻게든 못하게 해야지…."

산길을 걸으며 선승은 반야봉의 상징성을 이야기했다. 노고단과 천왕봉에 이어 반야봉까지 케이블카 위협에 직면해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낸 연관 스님은 '4대강이니 케이블카니 개발을 능사로 아는 정부가 이러다가 주능선에 도로를 내자고 할지도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운하를 반대하는 걷기 순례에 동참하기도 했던 스님으로서는 4대강을 추진하고 민족의 영산에 케이블카를 만들려는 정부의 태도가 답답하게 여겨지는 듯했다. 그랬기에 시위 참여를 자원한 것이었지만, 학승으로서 수행 정진을 잠시 내려놓게 만든 현실에 맞서려는 그의 마음은 결연해 보였다.

점심 무렵 도착한 반야봉. 세찬 바람이 부는 와중에 그는 1인 시위를 시작하며 펼침막을 펴 들었다.

'이명박 정부는 더 이상 지리산을 파괴하지 마시오!'

여러 개의 구호 중 그간 선택한 것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가장 싫어한다는 문구였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유독 이 구호에 대해 관리공단 측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한다. 노고단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위에도 이 구호만 등장하면 당장 시위를 중단하라는 종용이 들어올 만큼 예민한 반응이 나온다는 것. 아마도 대선 승리에 따른 논공행상 차원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앉은 공단 이사장이 연임을 생각해 윗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분석이었다.

반야봉에서 1인 시위를 펼치며 연관 스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하기보다는 묵묵히 바람을 맞으며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세찬 풍파가 있을지라도 끝내 지리산을 지켜내겠다는 각오이면서 한편으로 제발 파괴행위를 멈춰달라는 담긴 학승의 애타는 호소였다.

조계종, 노고단 정상서 산상 법회 추진 중

a  천왕봉에서 케이블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환경단체 회원들

천왕봉에서 케이블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환경단체 회원들 ⓒ 성하훈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의 시위가 지난 10월 12일부터 지리산과 설악산, 북한산 등지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케이블카 허용에 대한 정부의 조처가 가까워 오면서 환경단체들이 적극적인 대응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 문제는 환경부 장관이 직접 나서 케이블카를 부추기고 있는데다, 자연공원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만 통과되면 되는 사안이라,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 환경단체들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특히 케이블카가 추진되고 있는 곳이 4곳이나 되는 지리산은 주요 봉우리 모두에서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천왕봉에서는 전 연하천산장지기 김병관씨와 산악인들이, 반야봉에서는 지리산권 사찰의 스님들이, 노고단에서는 주요 환경단체들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가운데 종교단체, 특히 불교계의 움직임이 가장 적극적이다. 스님들이 반야봉으로 출퇴근시위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조계종은 노고단 정상에서 산상 법회를 추진 중에 있다. 자연을 훼손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자세다.

환경단체들은 산불방지기간이 시작돼 주요 등산로가 통제되는 15일 이후에도 계속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단체의 한 관계자는 11일 "향후 일정에 대한 단체들의 논의가 있었다"면서 "입산이 금지되는 구역을 제외한 다른 장소에서 환경부의 행태를 규탄하고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시위를 계속 벌여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케이블카 논란의 주범은 환경부 장관

현재 케이블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핵심 주범은 환경부다. 그중에서도 환경부 장관이다. 이만의 장관은 틈만 나면 케이블카가 놓여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환경부가 청와대의 시녀로 전락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고는 환경파괴에 앞장서려는 환경부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들은 환경부 장관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장관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기 위함이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 같은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환경부의 입장이 변한 것이 없기에 특별하게 장관이 따로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

녹색연합 고이지선 국장은 10일 전화통화에서 "지난 5일 환경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대신 실무책임자만 면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고이지선 국장은 "실무 책임자와의 면담에서 케이블카 문제에 대해 환경부가 의견수렴을 할 것이라고 말만 해 놓고 안 하고 있는 부분과 케이블카 가이드라인이 후퇴한 부분을 항의했으나 변화된 태도를 느낄 수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시행령이 전보다 후퇴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연공원법과 환경영향평가나 공원 환경위원회 등을 통해 걸러질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더라"며 "구체적 기준이 마련 안 된 상태에서 과도하게 추진되고 있는 부분을 항의했지만 담당자는 이후 과정에서 보완될 수 있다는 형식적인 답변만을 내놨다"고 덧붙였다.

a  지난 6월 환경부가 있는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진행된 환경단체들의 케이블카 반대 퍼포먼스

지난 6월 환경부가 있는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진행된 환경단체들의 케이블카 반대 퍼포먼스 ⓒ 성하훈


환경영향평가, 공원위원회 등은 추인 위한 요식행위

그렇지만 환경부 쪽 입장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케이블카가 추진되더라도 이후 거쳐야 되는 과정인 환경영향평가나 공원위원회 등을 통해 문제가 걸러질 수 있다'는 논리는 공무원들의 책임을 위원회로 떠넘기려는 행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인 부산대 이병인 교수는 "공원위원회 구성이라는 것이 민간위원보다는 관에서 선정된 사람이 많아 정부에서 추진하는 쪽으로 간다"며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는 상황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1월의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 의결 과정을 예로 들며 "학교 추천으로 도립공원위원회에 참여했으나 기관이 추천하는 인사들과 경남도청의 국장이 당연직으로 있는 상태에서 다른 의견이 개진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공원위원 15명 중 민간위원은 7명 정도였고, 결국 표결에 붙여져 10명이 참여해 8명이 찬성함으로써 케이블카 건이 통과됐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었다. 환경 훼손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근 4대강 환경영향평가에서 볼 수 있듯 절차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위원회 운영에 대한 합리적인 방향과 검증을 위한 절차적 과정이 필요하지만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사업추진방향을 추인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덧붙였다.

개발의 광풍 앞에 자연과 생태 환경에 대한 고민은 철저히 무시당하거나 들러리 역할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a  자연을 위해 정상 주변의 출입을 금지시킨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안내문. 하지만 환경부는 이들 지역에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하려 하고 있다

자연을 위해 정상 주변의 출입을 금지시킨다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안내문. 하지만 환경부는 이들 지역에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하려 하고 있다 ⓒ 성하훈


지난 2002년 노고단 정상은 10년만에 개방됐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 막혔던 정상부가 열린 것이다. 1980년대 등산객들의 무분별한 야영과 취사, 군사시설 등으로 황폐화된 노고단은 사람의 발길을 억지로 끊어놓은 결과 되살아날 수 있었다. 훼손은 간단하지만 복원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 알려준 사례였다.

지리산 반야봉 정상 뒤편으로는 출입을 금지하는 울타리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자연도 쉬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에는 사람이 많이 오면 주위가 오염되고 흙이 단단해져 식물이 살기 어렵고, 새와 짐승이 다른 데로 옮겨가는 등 생태계가 파괴된다고 적혀 있다.

지리산 천왕봉 바로 아래 있는 제석봉 주변은 등산로만 제외하고 모든 곳이 울타리가 쳐져 통제된 상태다. 환경복원을 위해서다. 탐방로를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이탈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산을 아낀다면 복원 작업을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렇듯 환경 훼손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고, 생태 복원의 어려움을 일깨워주고 있는 세 곳은 모두 케이블카 예정지다. 환경부의 관리 감독을 받고 있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사람의 발길을 10년 넘게 막아 생태가 복원되고 있음을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생태 복원지역을 크게 파헤칠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은 10일 성명서를 통해  환경부를 매섭게 질타했다.

우선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청사 개소를 환영한다'고 밝힌 국시모는 '반달가슴곰 복원, 숲 생태 개선, 상록활엽수 복원 등에 매년 수십억 원의 예산을 배정하는 환경부가 복원과 보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관광용 케이블카 건설을 위해 자연공원법을 개정하려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라고 지적하고,  '환경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이 케이블카 건설로 들썩이는 현실은 국립공원이 보호지역이 아니라 개발지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부끄러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지리산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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