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보자기 하나가 전 재산

모친상을 치르고

등록 2009.11.15 18:08수정 2009.11.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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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머니 영정

어머니 영정 ⓒ 오문수


"형! 어머니가 위독하다는데."
"음 알았어! 곧 갈게."


소식을 듣고 시골에 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10분도 안 돼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고향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이미 영안실에 안치시켜 놨다. 어머니는 올해 87세라 호상이다. 6개월 정도 노인요양병원에 계시다 가셨으니 심하게 고통 받고 가신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자식들에게는 아쉽다.

그래도 제일 예뻐하시는 손자 품에 안겨서 임종하셔서 다행이다. "숨이 가쁘다. 나 좀 안아줄래!"하고 부탁해 조카가 안아주자 조카 품안에서 돌아가셨다. 맞벌이 부부인 동생네를 대신해 키웠던 조카는 이제 대학생이 돼 할머니 곁에서 간병을 하고 있었다.

일제의 위안부 차출이 무서워 15세에 빈털터리 노총각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밥그릇 두 개와 수저 두벌 밥솥 하나가 재산의 전부였다. 7남매를 키우며 지은 배추와 참외를 꼭두새벽에 팔러가 늦은 오후까지 시장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번기에는 서너살만 되어도 농사를 거들어야 할 정도로 바쁜 게 농촌이다. 새벽부터 벼를 거둬 어두컴컴한 밤까지 리어커에 볏단을 싣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리어커에 볏단을 싣고 섬진강 지류를 건너려면 멀리서부터 달려와 그 탄력으로 개울을 건너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속도가 안 나면 모래 속에 바퀴가 빠져 여러 명이 밀어야 빠져 나올 수밖에 없는 난코스였다. 아버지는 앞에서 끌고 두 살 위의 형과 나는 땅바닥을 쳐다보며  죽어라 밀고 개울을 건너는 데 물 속에서 금붕어 같은 게 보였다.


간신히 개울을 건넌 후 신발 속에 들어간 모래를 털며 개울 속에서 금붕어를 봤다고 했더니 "개울에 무슨 금붕어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형의 말에 "어쨌든 가보고 올게"하며 주은 건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계였다.

짐을 정리하고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동네에서 제일 부자 집 주인이 금시계를 잃어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족들은 회의를 한 후 돌려주기로 했다. 시계를 들고 부자집에 가니 십여미터쯤 올라간 낟가리에서는 머슴 다섯 명이 볏단을 털며 해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하던 주인아저씨는 논 다섯 마지기 값이라고 말해줬다. 논 다섯 마지기는 우리 전 재산이었다.


며칠 후 우리 집에는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다. 그분이 부담해서 전기를 달아준 것이다. 호롱불만 켜고 살던 집에 전기가 들어오니 너무나 좋았고 라디오가 없던 당시에 스피커를 달 수 있어 밤 9시까지라도 소식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또한 설날과 추석에는 돼지고기를 보내 주셨다.

그 일이 있던 2년 후 원두막에서 혼자 지내던 아버지가 피를 쏟고 쓰러졌다는 이웃 어른의 전갈이 왔다. 리어커에 아버지를 싣고 집에 오던 길에 부자 집 앞을 지나가다 그분을 만났다. "무슨 일이냐?"고 깜짝 놀라던 그 분은 의사 선생님을 집으로 보내주셨다.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는 따뜻한 아랫목에 눕혀놓고 따뜻한 물만 먹이고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요. 급체입니다." 그 후로 30년은 더 사신 것 같다. 시계 하나가 아버지 목숨을 살렸다.

재주 부릴 줄도 모르고 몸뚱이 하나만 의지해 착하게만 살았던 촌부의 삶은 자식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져 거짓말 못하고, 남에게 욕 안 먹으며 사는 게 옳다는 걸 체득케 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에게 욕 한번 안하고 매 한번 안 때리셨으니 7남매가 보고 자란 것은 형제간 우애다. 

어머니가 지니신 소지품을 태우려고 살펴본 전재산은 속옷 두 벌과 옷 한 벌에 머풀러 두 장이 전부다. 머풀러 두 장은 혹시 외출할 때 추울까봐 남겨뒀단다. 재산을 가지고 아웅다웅 다투다 죽기까지 했다는 소식들이 우습다. 공수래 공수거인데.

다음날 식구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장의사의 염이 시작됐다. 하얀 분을 바르고 빨간 입술을 칠했다. 화장을 거의 못해 본 어머니로서는 가장 진하고 예쁜 얼굴이다. 빨간 루즈. 이승을 떠나면서 처음 입술 화장이다. 누나와 여동생은 가시는 마지막 길에 꽃버선을 신겨 드려 가시는 길 평안히 가시도록 했다.

전통습관에 따라 7번 매듭을 지은 칠성매를 한 후 궁중염에 따라 12개의 맷베(매듭 짓는 베)를 묶고 한지 12장을 연꽃 모양으로 만들어 묶는다. 연꽃 12개는 일년을 상징하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실 때 천국에 가시라는 의미다. 장의사에게 물었다.

"왜 예쁘게 화장하죠?"
"귀신에도 서열이 있다고 합니다. 염라대왕 앞에서 심사받을 때 잘 보이게 하려고요.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좋은 일 하셨는가 봅니다."
"왜요?"
"임종 때 얼굴 표정을 보면 전생의 업이 나타나요. 세상을 험하게 산 사람은 그대로 나타나죠. 어차피 인생은 인과응보 아니겠어요?"

화장해 달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아침 일찍 화장장에 도착해 대기실에서 모든 가족이 앉아 유골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보다 먼저 와 있던 다른 가족 사이에서 분란이 일었다.

"큰 아들이 꼭 모셔야 한다는 법이 있습니까?"
"아주버님 저는 못 모십니다."

알고 보니 돌아가신 망자의 부인인 어머니를 서로 못 모시겠다고 거기까지 와서 싸운다. 자식들이 뭘 배울까? 늙으면 천덕꾸러기에 불과할까? 나는 자식들한테 저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 반대쪽에 앉아 있던 친척들 두 분이 속삭인다.

"저건 부모가 잘못한 거야."

어제까지 심하게 바람 불고 비 오던 하늘이 맑게 갰다. 소각로를 바라보니 한 줄기 하얀 연기? 아니 안개만 피어오른다. 단풍이 노랗게 물든 산 속 안개 속으로…. 어머니는 11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와 합장했다.

a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를 까치가 파먹고 난 후, 벌 한마리가 날아와  마지막 단물을 빨아 먹고 있다. 우리네 인생도 다 주고 가는 걸까?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를 까치가 파먹고 난 후, 벌 한마리가 날아와 마지막 단물을 빨아 먹고 있다. 우리네 인생도 다 주고 가는 걸까? ⓒ 오문수


묘소 위에는 아버지가 심은 단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둔 홍시가 몇 개 남아 있었다. 사람들에게 주고 몇 개 남은 홍시는 까치가 파먹었다. 빨갛게 살이 남아 있는 홍시에는 벌들이 찾아와 남은 모든 것을 가져간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이뤘던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주고, 보자기 하나에 싸인 옷 두 벌은 태워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모든 동물은 일단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마련이며 숙명이다. 미혹한 중생들은 자신의 업에 따라 육도의 윤회를 계속한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모두 잊고 좋은 곳으로 가시길 빈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희망제작소와 여수신문에도 송고합니다
#모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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