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인간을 갉아먹는다, 껍데기만 남을 때까지

[리뷰] 데니스 루헤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등록 2009.12.02 13:34수정 2009.12.0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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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겉표지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겉표지황금가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범죄소설 속의 탐정은 기본적으로 폭력을 접하며 살아간다. 이혼문제 같은 가벼운 일을 주로 다루는 탐정은 그 정도가 가벼울 테고, 강력범죄를 의뢰받는 탐정은 더 심할 것이다.

지속적으로 폭력을 접하다보면 그 폭력이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는 자신이 직접 당하는 육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폭력의 현장 또는 그 흔적을 보는 것도 포함된다.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온통 난도질당한 시신들을 계속 보면서도 우울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내면은 점점 피폐해지고 공허해져 갈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폭력에 감염될 수도 있다.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져있던, 또는 그동안 자제해왔던 폭력성이 지속적인 외부의 자극으로 인해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립탐정도 마찬가지다. 직업의 특성상 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사이코와 얼간이, 인간쓰레기 등을 다룬다. 그러다보면 주먹과 권총을 휘두르기도 하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한 협박을 받기도 한다. 두려움은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증오를 키워간다. 그 증오를 해소하기 위해서 폭력성이 튀어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폭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데니스 루헤인의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황금가지 펴냄)에는 남녀탐정커플 켄지와 제나로가 등장한다. 젊은 남녀커플이라니까 왠지 낭만적이고 유쾌한 장면이 상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들도 폭력에 대해서 심각하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폭력보다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폭력에 감염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에서는 그만큼 잔인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진다. 작품의 무대는 뉴잉글랜드, 10월 중순인데도 오후에는 기온이 25도까지 올라가며 축축한 열기가 느껴지는 날씨다.

켄지는 고장난 에어컨과 씨름하다가 의뢰인을 소개해 주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의뢰인은 정신과의사인 중년여성으로 얼마전에 협박전화와 함께 아들의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을 우편으로 받았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체모를 사람이 자신과 아들의 신변을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켄지와 제나로는 의뢰를 받아들이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의사의 아들인 제이슨은 대학생으로 학교와 그 주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켄지와 제나로는 혹시 제이슨 주변에 수상한 인물이 있나 생각해서 그의 뒤를 감시하지만 일주일이 넘어도 그런 사람은 발견하지 못한다.

이때부터 살인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연쇄살인범은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 사건을 추적하는 켄지에게도 경고성 편지를 보낸다. 경찰과 함께 사건을 조사하던 켄지는 일련의 살인들이 20여년 전에 이 지역에서 있었던 살인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동시에 아일랜드계 마피아로부터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경고를 받는데….

연쇄살인의 진상은 무엇일까

작품에서는 잔인한 범죄와 끈질긴 추적이 펼쳐지지만, 그보다는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살인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다.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책일 수도 있고 술 또는 맛있는 음식일 수도 있다.

만일 음주가 불법으로 규정된다면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법을 어겨서라도 술을 마시려고 할 것이다. 살인도 마찬가지다. 어떤 연쇄살인범들은 살인이 없으면 살 수 없을 만큼 살인에 중독되어 있다. 심각한 범죄라는 것도 알고 잡히면 감방에서 썩을 것도 알지만 살인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죽어도 죽여야 하는 것이다.

폭력도 마찬가지다. 살인에 이유가 없듯이 폭력도 그렇다. 폭력으로 누군가를 제압하면 그에 대해서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단지 그래서 폭력을 휘두른다. 그리고 살인은 극단적인 우월감을 제공해준다. 누군가의 생명이 자기 손에 있다면 그런 감정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제나로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권총으로 범인을 쏘아 죽이며 그자의 목숨을 빼앗을때, 마치 신처럼 위대해진 그런 기분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런 감정에 중독되면 사람이 어떻게 변할까. 폭력은 인간을 갉아먹는다. 껍데기만 남을 때까지.

덧붙이는 글 |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데니스 루헤인 지음 /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펴냄.


덧붙이는 글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데니스 루헤인 지음 /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펴냄.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 2009


#데니스 루헤인 #어둠이여 내 손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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