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창진 통합, 일본 보니 도청 폐지가 보인다

[주장] 어느 분권론자의 시름

등록 2009.12.13 18:54수정 2009.12.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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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시의회와 진해시의회에 이어 창원시의회가 지난 12월 11일 열린 본회의에서 '창원·마산·진해시 통합안에 대해 찬성의견을 내기로 함에 따라 통합시 출범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만일 경남 마산·창원·진해시가 예정대로 합쳐져 하나의 통합시가 된다면 내년 7월 인구 108만 명의 거대 도시로 새롭게 태어난다.

더불어 경남도는 부산광역시·울산광역시·마창진 통합시라는 거대도시를 길러 독립시켜 내보낸 어미도로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하게 될 것이다. 대신 어미도 경남은 몰골이 앙상한 허우대 좋은 껍질로만 남게 될 운명이다.

그러나 경남도와 도의회는 속으로만 끙끙 앓을 수밖에 없는 벙어리 냉가슴 신세가 되었다. 왜냐하면 경남도지사는 행정구역 통합을 밀어붙이는 이명박 정부와 같은 집권당 한나라당 소속이며, 경남도의회 또한 집권당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불만이 있더라도 속으로만 삼키고 있을 뿐이니 하는 말이다.

내년 7월 지방선거에서 첫 시장을 뽑게 될 통합시 인구는 서울·부산·인천·대구·대전·광주광역시에 이어 7번째로 많아진다. 기초자치단체로는 현재 수원시(106만 명)를 제치고 명실상부한 최대 도시가 된다.

이외에도 행정구역 통합 대상지역으로는 현재 논의되는 경기 수원·화성·오산시, 경기 성남·하남·광주시, 충북 청주·청원 지역 등 3곳이 더 있다. 행정안전부는 성남·하남·광주시 의회에 오는 24일까지, 충북 청주·청원 의회에 이달 말이나 내년 초까지 통합 안건을 처리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한다.

행정안전부는 다음 주 중 '창원·마산·진해시 통합시 설치법안(가칭)'을 입법예고해 후속절차를 밟아, 내년 7월 새 도시가 발족하면 행정안전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지방자치단체 간 자율통합에 따른 행정특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향후 10년간 2369억 원을 인센티브로 지원한다. 그 기간 통합에 따른 예상 재정절감액 7620억 원을 더하면 실제 통합효과가 1조원에 달한다니 거역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이명박 정부의 행정구역 통합에 '자율'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형식은 '자율', 실질은 '타율'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행정구역 통합까지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깊다. 마창진 통합의 경우 여전히 반대하는 여론이 많고, 통합시 명칭과 청사 위치, 초대 통합시장 선출을 둘러싼 기존 도시 주민들 사이의 잠재된 갈등은 손대면 툭하고 터질 농익은 봉숭아 열매와 닮았다.


또한 행정 능률과 효율성만을 앞세운 중앙정부 주도의 반강제적인 행정구역 통합은 그 자체 반분권적이고 반자치적이다. 주민투표를 통한 해당 지역주민들의 민주적 의견수렴절차 없이 집권당 한나라당 출신 시장과 시의원들이 압도하는 시의회의 의결만으로 행정구역 통합을 밀어붙이는 형태는 정치색 짙은 중앙집권주의와 행정편의주의의 극치이다.

일본 10여년 새 기초자치단체 54% 수준으로 감소


이웃 일본에서도 1999년 3월 31일에는 3232개의 시정촌(기초자치단체)이었으나, 2002년에 시작된 대규모 시정촌 합병이 이뤄져 2009년 12월 3일 현재 47개의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과 1772개의 시정촌(783시, 798정, 191촌)으로 바뀌었다. 2010년 3월 31일에는 1742개의 시정촌(785시, 770정, 187촌)이 될 예정이어서,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수는 99년에 비해 약 54% 수준으로 감소된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시정촌 평균 인구는 7만 3천명 규모로,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 평균 인구 약 20만 명에 비하면 여전히 작고 시정촌 개수 또한 여전히 많다.

그런데 시정촌 합병을 하면서 일본 총무성이 제시한 기초자치단체 합병 장점으로는, △ 노약자 등에 대한 복지서비스의 안정적 제공과 충실, △ 보건·토목 등 전문적·고도의 능력을 보유한 공무원의 확보·육성을 통한 행정 서비스의 향상, △ 창구서비스, 문화·스포츠 시설 등 공공시설의 광역 이용, △ 광역적인 관점에서 도로·시가지의 정비, 문화·스포츠 시설 등의 효율적 정비와 일체적인 지역 가꾸기, △ 중점적 투자를 통한 대형 프로젝트의 실시, △ 행정경비절약, 소액의 경비로 보다 높은 수준의 행정서비스제공, △ 지역의 이미지 향상으로 젊은이의 정착, 직장의 확보 등이다.

그러나 일본 총무성에서 제시한 이상과 같은 기초자치단체 합병의 장점은, 실제로 합병을 하지 않고도 지방자치를 이상적으로 구현하는 프랑스, 스위스, 독일의 사례를 볼 때 별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낮은 재정자립도 등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한 기초자치단체에 재정적 우대조치라는 당근을 제시하며 시정촌 합병을 반강제적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일본에서는 대규모 시정촌 합병 결과, 상대적으로 역할이 축소된 광역자치단체인 도도부현을 폐지하고 그것을 대체하는 초광역자치단체인 도주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주장의 근거로는 첫째, 시정촌 합병으로 현 내 기초자치단체 수가 감소되어 현의 존재의의가 사라졌으며, 둘째, 현 내에 인구가 많은 대도시가 많이 탄생함으로써 현이 담당할 업무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여 현이 공동화되었으며, 셋째, 합병을 계기로 사무권한을 시정촌에 이양하면, 공동화된 부현의 합병이나 도주제를 채택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초광역자치단체인 도주제 도입론자들은 "도주제는 지방분권의 완성", "도주제는 지방분권의 궁극적 형태"라고 주장하지만, 한편 도주제에 대해서는 주민자치를 형해화하고,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여 확대, 도주 간부의 권한 강화, 도주 안에서 또 다른 일극집중 가능성 등 많은 의문을 제기하는 반대론 역시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더구나 시정촌의 합병이나 도주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의 확대강화를 통한 지방자치의 진정한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지방자치제도의 개혁 차원이 아니라, 금융위기 전 세계적인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는 행정 효율성이나 능률성, 나아가 기업 활동의 활성화를 통한 시장경제주의의 심화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시정촌의 합병과 도주제를 추진하는 쪽이 역사적으로 일관되게 대기업, 즉 재계였다는 사실이 그러한 주장을 반증한다.

우리나라 역시 현재 중앙정부 중심의 행정구역 개편을 주도하는 주체가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 신봉자인 이명박 정부라는 사실이 결코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마창진 통합시의 출현으로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경상남도(광역자치단체)를 폐지하고 초광역자치단체로 행정구역을 새로이 개편하자는 주장이 곧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런데 지방분권, 지방자치의 핵은 어디까지나 지방의 정치·행정에 대한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접성임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행정구역개편 #마창진 통합시 #지방자치 #지방분권 #도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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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법학과 교수. 전공은 행정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주전공은 환경법. (전)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전)한국공법학회부회장, (전)한국비교공법학회부회장, (전)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전)김해YMCA이사장, 지방분권경남연대상임대표, 생명나눔재단상임이사, 김해진영시민연대감나무상임대표, 홍조근정훈장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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