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278) 생산적

― '생산적인 일을 하는', '생산적이어야 해' 다듬기

등록 2009.12.18 11:39수정 2009.12.1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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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건

 

.. 당신이 승려였을 때는 머리로 명상만 해서, 손을 움직여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건 상상도 못했겠죠 ..  《사티쉬 쿠마르/서계인 옮김-사티쉬 쿠마르》(한민사,1997) 86쪽

 

 '승려(僧侶)'라 할 수 있으나 '스님'이나 '중'으로 손질해 줍니다. '명상(冥想)' 또한 그대로 쓸 수 있으나, '생각'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상상(想像)도 못했겠죠"는 "꿈도 못 꾸었겠죠"나 "생각도 못했겠죠"로 다듬어 봅니다.

 

 ┌ 생산적(生産的)

 │  (1) 생산에 관계되는

 │   - 생산적 활동 / 생산적 인구 /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다

 │  (2) 그것이 바탕이 되어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   - 그의 연주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 생산적 연주회였다 /

 │     생산적인 생각 / 생산적인 대화와 토론의 장 / 가사는 생산적인 활동이다

 ├ 생산(生産)

 │  (1) 인간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각종 물건을 만들어 냄

 │   - 상품의 생산 시기와 소비 시기 / 공장의 생산 실적 / 쌀의 생산과 공급

 │  (2) 아이나 새끼를 낳는 일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

 ├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건

 │→ 무언가 만드는 일을 하기란

 │→ 무언가 만들며 일하기란

 │→ 땀흘려 일을 하기란

 │→ 땀흘려 일을 할 줄은

 └ …

 

 무엇인가 만드는 일을 한자말로 '생산'이라고 합니다. '-적'이 붙은 '생산적'은 "생산에 관계되는"을 뜻한다고 하니, 우리 말대로 풀자면 "만드는 일과 얽히는" 무엇입니다. 그러니, 이 보기글에서는 "무언가 만드는 일"이라고 풀어내면 되는데, 머리로만 생각을 하고 몸을 안 쓰던 스님한테 들려주는 말이니, "땀흘려 하는 일"로 풀어내어도 어울립니다.

 

 ┌ 손을 움직여 논밭을 일굴 줄은 생각도 못했겠죠

 ├ 손을 움직여 일하고 살림을 꾸릴 줄은 꿈도 못 꾸었겠죠

 ├ 손을 움직이고 흙을 묻힐 줄은 조금도 몰랐겠죠

 └ …

 

 그런데, "생산적 활동"이나 "생산적 인구"나 "생산적인 일"이라고 하면, 이런 말마디들은 어떤 모습을 가리키는가요? "생산적인 생각"이나 "생산적 연주회"나 "생산적인 대화"는 또 무엇을 가리키는가요? '생산적' 두 번째 풀이는 '어떤 일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을 뜻한다는데, 말 그대로 '새롭게 하는'이나 '새롭게 빚어내는' 무엇인가를 나타내려고 하면서 이 말마디를 넣고 있지는 않나요? 밝고 환하게 쓸 수 있는 말마디를 스스로 놓치거나 잃으면서, 딱딱하고 두루뭉술한 말마디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있지는 않는가요?

 

 ┌ 힘이 되는 생각 / 훌륭한 생각 / 도움되는 일

 └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자리

 

 곰곰이 따지자면, "생산적 인구"라 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라 하여도 넉넉하다고 느낍니다. "생산적 활동을 한다"라 하지 말고 "일을 한다"라 해도 괜찮습니다. "생산적인 일에 종사한다"라 하기보다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일깨워 준 생산적 연주회"라는 말보다 "많은 생각을 하도록 이끈 좋은 연주회"라는 말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생산적인 생각"이나 "생산적인 대화"는 "좋은 생각"이나 "좋은 이야기", 또는 "훌륭한 생각"이나 "훌륭한 이야기"로 걸러낼 수 있다고 느낍니다. "가사는 생산적인 활동이다" 또한 "집안일은 훌륭한 일이다"라든지 "집안일은 아주 큰 일이다"로 다듬어 볼 수 있습니다.

 

 ┌ 손을 움직여 일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겠죠

 ├ 손을 움직여 스스로 일할 줄은 생각도 못했겠죠

 ├ 손을 움직여 일하는 사람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겠죠

 └ …

 

 무엇인가를 새롭게 빚어내는 일을 우리들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서, 그때그때 알맞거나 어울리는 말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훌륭하다'라든지 '좋다'라든지 '멋있다'라든지 '알뜰하다'라든지 '큰힘이 된다'라든지 '도움이 된다'라든지 '대단하다'라든지 '뛰어나다'라든지 '괜찮다'라든지 '사랑스럽다'라든지, 얼마든지 찾아내고 받아들여 널리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느끼려 하지 않거나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말마디를 얻지 못합니다. 아무런 생각을 키우지 못하고 아무런 말 문화를 북돋우지 못합니다. 늘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을 걷다가 고꾸라질 뿐입니다.

 

 

ㄴ. 생산적이어야 해

 

.. 중요한 것은, 전시회를 목표로 일하는 화가보다 고통이 적지 않다는 거야. 출품하든 않든 생산적이어야 해. 그래야 편하게 담배를 피우는 권리를 갖게 되거든 ..  《빈센트 반 고흐/박홍규 옮김-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아트북스,2009) 615쪽

 

 "중요(重要)한 것은"은 "중요한 대목은"이나 "깊이 생각할 대목은"으로 다듬어 봅니다. "전시회를 목표(目標)로"는 "전시회를 바라보며"나 "전시회를 생각하며"나 "전시회를 꿈꾸며"로 손보고, "고통(苦痛)이 적지 않다는 거야"는 "괴로움이 적지 않다는 말이야"나 "더 괴롭다는 말이야"로 손봅니다. '출품(出品)하든'은 '작품을 내놓든'으로 손질하고, '편(便)하게'는 '느긋하게'나 '걱정없이'로 손질해 줍니다.

 

 ┌ 출품하든 않든 생산적이어야 해

 │

 │→ 출품하든 않든 많이 그려야 해

 │→ 출품하든 않든 바지런히 그려야 해

 │→ 출품하든 않든 힘껏 그려야 해

 │→ 출품하든 않든 끊임없이 그려야 해

 └ …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가리켜 "생산적인 화가"라 한다면, 그림을 부지런히 그린다거나 그림을 많이 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생산적인 사진가"가 아니라 "많이 찍는 사진쟁이"가 될 테지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생산적인 작가"가 아니라 "많이 쓰는 글쟁이"일 테고요.

 

 공장에서는 "생산적인 노동자"가 아닙니다. "일을 많이 하는 노동자"나 "일을 잘하는 노동자"입니다. "훌륭하게 일하는 노동자"나 "바지런히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림을 많이 그리는 그림쟁이"나 "그림그리기를 바지런히 하는 그림쟁이"나 "새 그림을 많이 내놓는 그림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번 '생산적'을 쓰면서 가리키다가, 차츰 이 말마디에 익숙해지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우리 모습을 가리킬 때에 '생산적'이 아니면 어울리지 않거나 알맞지 않은 듯 생각하고 맙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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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11:39ⓒ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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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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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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