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82) 후회막급

[우리 말에 마음쓰기 818] '후회막급이었다', '후회막급이었지만' 다듬기

등록 2009.12.17 11:45수정 2009.12.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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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후회막급이었다

.. 좀 서둘러 나왔더라면 … 후회막급이었다. 그런데 택시 운전수가 이런 나를 구해 주었다 ..  《이현주,최완택-이토록 뜨거운 만남》(삼민사,1986) 248쪽


"나를 구(救)해 주었다"는 "나를 살려 주었다"나 "나를 빼내 주었다"나 "나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로 다듬어 줍니다.

 ┌ 후회막급(後悔莫及) : 이미 잘못된 뒤에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     수가 없음
 │   - 혼자 서울로 보냈던 것이 후회막급이었으나,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 후회(後悔) :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
 ├ 후회막급이었다
 │→ 얼마나 후회가 되던지
 │→ 후회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 잘못을 깨우쳐도 이미 늦었다
 │→ 잘못을 뉘우쳐도 이제 늦었다
 │→ 그저 한숨만 나온다
 └ …

잘못을 뉘우치는 일을 가리키는 한자말 '후회'입니다. 우리는 이 한자말을 안 쓸 수 있으나, 이냥저냥 쓸 수 있습니다. 입에 붙은 말이요 익숙하고 낯익은 말이기에 여러모로 알맞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자말을 우리 입에서 털어내면서 이제까지 옛사람들이 두루 쓰던 말투를 떠올릴 수 있고, 우리 나름대로 새 말투를 아기자기하게 일굴 수 있습니다.

 ┌ 이제는 어쩔 수 없다
 ├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 너무 늦었다
 ├ 이제는 늦었다
 ├ 뉘우치고 보니 너무 늦었다
 ├ 뉘우쳤으나 때는 늦었다
 └ …

우리는 어느 쪽 길을 걷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느 쪽 길을 걸으려 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냥저냥 아무 말이나 쓰고 있지 않습니까. 좀더 알맞고 살갑고 싱그럽고 손쉬운 쪽으로는 걸어가려 하지 않는 우리들은 아닌가요. 좀더 부드럽고 알차고 넉넉하고 따뜻한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 우리들은 아닌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고, 찬찬히 헤아려 보며, 낱낱이 따져 보면서 한 마디를 꺼내고 두 마디를 잇는 우리들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깊이 돌이키고, 널리 돌아보며, 두루 살펴보면서 한 줄을 쓰고 두 줄을 적바림하는 우리들은 아니구나 싶습니다.

그저 되는 대로 말할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냥 내키는 대로 읊을 뿐이 아니랴 싶습니다. 그예 아무렇게나 욀 뿐이로구나 싶습니다.


한결 아름다울 수 있으나 아름다운 길을 걷지 않습니다. 한껏 사랑스러울 수 있으나 사랑을 주고받는 쪽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 혼자 서울로 보냈던 것이 후회막급이었으나
 │
 │→ 혼자 서울로 보내어 뉘우치고 있었으나
 │→ 혼자 서울로 보내어 잘못했다고 생각했으나
 │→ 혼자 서울로 보내어 잘못했다고 뉘우쳤으나
 │→ 혼자 서울로 보내어 아차 싶었으나
 └ …

늦은 나이란 없습니다. 늦은 때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말매무새와 글매무새는 그지없이 형편없고 터무니없습니다만, 늦은 모습이란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뉘우치고 제대로 돌아보며 제대로 걸어갈 수 있으면 됩니다. 이제부터 하나하나 돌이키고 곱씹고 어루만질 수 있으면 됩니다.

우리들 잘잘못을 우리 스스로 깨우치면서, 우리가 싱그럽고 알차고 곱게 걸어갈 말길이 무엇인지를 찾아나서면 됩니다. 우리들 옳고그름을 우리 슬기로 가누면서, 우리가 튼튼하고 손쉽고 따뜻하게 걸어갈 글길이 어디인가를 밝히면 됩니다. 첫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ㄴ. 후회막급이었지만

.. 처음부터 그림의 기역 자도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후회막급이었지만 도중에 그만둘 수는 없어서 파스텔을 문지르느라 까지고 얼얼한 손끝을 비벼 가며 얼추 나무를 완성했다 ..  《윤진영-다시, 칸타빌레》(텍스트,2009) 73쪽

'도중(途中)에'는 '이제 와서'나 '뒤늦게'나 '여기에서'나 '하다가'로 다듬습니다. '완성(完成)했다'는 '마무리했다'나 '다 그렸다'로 손봅니다. "그림의 기역 자"는 그대로 두어도 되고, "그림 그리는 기역 자"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후회막급이었지만
 │
 │→ 후회뿐이었지만
 │→ 후회가 가득했지만
 │→ 크게 뉘우쳤지만
 │→ 아이구야 싶었지만
 │→ 내가 왜 이랬나 싶었지만
 │→ 내가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싶었지만
 └ …

쓸데없는 일을 하고 뉘우쳐야 아무런 보람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쓸데없는 일은 안 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꼭 쓸데없는 일을 저지르고, 이렇게 저지른 다음에야 뉘우칩니다. 그래도 뉘우치기라도 하면 낫습니다. 뉘우치지 않고 뻗대어 버린다든지, 외려 이판사판 막나가려고 한다면 큰일입니다. 돌이키기 만만하지 않더라도 곰곰이 뉘우친 다음 하나하나 다독여 주면 반갑습니다.

그런데, 우리 살아가는 이 터전에서 쓸데없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 하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 쓸데없고 어느 쪽이 쓸데있을까요. 쓸데나 쓸모는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둘을 나눌 만한 까닭이 있나요. 둘을 나누어야 할 까닭이 있는가요.

우리 나름대로 우리 길을 즐겁게 걸어가면서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거나 껴안으면 넉넉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깜냥껏 우리 길을 기쁘게 돌아보면서 거리낌없이 맞아들이거나 어루만지면 아름답지 않으랴 생각해 봅니다. 살다 보면 때때로 쓸데없는 짓을 할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해 놓고 뉘우칠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짓이라 하지만 이 일에서도 보람을 찾으며 활짝 웃을 수 있습니다. 눈물과 웃음을 아끼지 않으며 하루하루 고맙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말이란 삶결 그대로 솟아나오고, 글이란 삶자락 그대로 터져나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아쉬움을 남기지 않고 티없이 살아간다면, 우리가 나누는 말과 글은 언제 어디에서든 아쉬움이 없으며 티 또한 없는 곱고 따사로운 말과 글이 되리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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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상말 #국어순화 #우리말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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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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