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앞에서 바라본 건너마을. 사일리지 위로 보이는 건너 마을은 항상 평화스럽고 고즈넉하게 보입니다.
조종안
녹았다 얼면 스케이트라도 지칠 눈 쌓인 들녘으로 달려가 뒹굴고 싶었는데요. 고즈넉한 마을, 눈꽃이 만발한 야트막한 뒷산, 하얗게 변한 지붕, 가끔 들려오는 강아지 짓는 소리가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함박눈이 펄펄 내리면 강아지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다고 합니다. 어른이라고 다를 게 없지요. 만나자는 사람도 없는데 누군가 만나고 싶고, 자꾸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도 첫눈이 내릴 때마다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 모양입니다.
이리저리 뒹구는 노란 은행나무 이파리들 사이로 불어오는 칼바람이 손등을 꽁꽁 얼게 하더군요. 피사체를 발견하고 호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낼 때마다 감각이 둔해졌는데 입으로 호호 불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내린 눈을 손님처럼 반기며 촬영할 장소를 찾아다녔지요.
차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지방도는 이미 녹아 있었고, 호젓한 농로와 학교 운동장도 누군가 밟고 지나간 발자국들이 이리저리 나있어 안타깝더군요. 하지만, 게으른 저를 탓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이 조금은 녹았지만, 잔디 위에도 눈꽃이 피었고, 벽돌담에도 피었고, 화단에 빨갛게 열린 예쁜 열매 위에도, 녹슨 농기계 위에도 탐스럽게 피어 있었습니다. 측백나무 울타리에도 하얀 눈꽃이 반발해서 온통 눈꽃세상이더군요.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습니다.
높이 솟은 나뭇가지에서 한가로움을 즐기는 까치 부부가 유달리 다정하게 보였는데요. 두둥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눈에 부셔서 하늘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