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타협에 응하지 않을 것
.. 녹색당은 환경, 평화, 민주주의, 양성평등, 경제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에서는 결코 어떠한 타협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 《페트라 켈리/이수영 옮김-희망은 있다》(달팽이,2005) 24쪽
"경제에 관(關)한"은 "경제에 얽힌"이나 "경제와 같은"이나 "경제 같은"으로 다듬습니다. "근본적(根本的)인 문제(問題)에서는"은 "큰 문제에서는"이나 "밑바탕 문제에서는"이나 "뿌리깊은 일에서는"이나 "크나큰 일에서는"으로 손봅니다. '결코(決-)'는 '조금도'나 '털끝만큼도'나 '한 발자국도'로 손질하고, "않을 것이다"는 "않을 생각이다"나 "않으려 한다"로 손질해 줍니다.
┌ 응(應)하다 : (…에) 물음이나 요구, 필요에 맞추어 대답하거나 행동하다
│ - 질문에 응하다 / 협상에 응하다 / 조사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
├ 어떠한 타협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 어떠한 타협에도 나서지 않을 생각이다
│→ 어떠한 타협에도 움직이지 않을 터이다
│→ 어떠한 타협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일 것이다
│→ 우리가 품은 뜻을 그대로 지켜나갈 것이다
└ …
처음 천자문을 배울 때하고 중학교에 들어서며 한문을 배울 때를 떠올리면, '應'이라는 한자를 "응할 응"이라고 배웠습니다. '응하다'가 무엇인지를 깊이 헤아리도록 이끄는 분은 없었고 그저 "응할 응"이었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응하다'를 찾아보면 "대답하다"와 "행동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로 한다면 '대꾸하다'나 '말하다'요, '움직이다'나 '나서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나설 응"이나 "말할 응"이나 "대꾸할 응"이나 "움직일 응"처럼 한자를 가르치지 않았을까요. 말뜻과 말쓰임을 고스란히 일러 주면서 한자를 익히도록 이끌 마음은 없었을는지요. 한자를 가르치고 한자말을 쓰도록 이끄는 자리라 할지라도 새김과 뜻과 풀이는 옳게 가눌 노릇이 아닌지요.
┌ 우리 뜻을 그대로 지켜 나갈 생각이다
├ 우리 뜻을 튼튼히 지켜 나가려 한다
├ 우리 뜻이 흔들리지 않게 밀어붙이려 한다
├ 우리 뜻을 힘차게 밀고 나가려 한다
├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힘쓸 생각이다
└ …
민주주의란 '타협(妥協)과 대화(對話)'로 이루어진다고 배웠습니다. 시험을 치를 때에는 이 두 가지를 올바로 적어 놓도록 배웠습니다. 그러나 '타협'이 무엇을 가리키고 '대화'는 또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맞게 배운 일은 없습니다.
국어사전에서 '타협'을 찾아보면 "어떤 일을 서로 양보(讓步)하여 협의(協議)함"이라고 나옵니다. '양보'란 "남한테 사양(辭讓)하여 미루어 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양'이란 "겸손(謙遜)하여 받지 아니하거나 응하지 아니하거나 양보함"을 가리킨답니다. '겸손'이란 "남을 존중(尊重)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이라 하며, '존중'이란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이라 합니다.
눈치가 빠른 분은 몇 가지 한자말 뜻풀이를 살피는 동안 '국어사전 말풀이가 돌림풀이로 되어 있음'을 알아차리셨으리라 봅니다. 이 풀이가 저 풀이이고, 저 풀이가 이 풀이처럼 되어 있는 우리네 국어사전입니다. 더없이 얄궂은 모습이지만 이 얄궂음은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숱한 석사와 박사가 쏟아져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나라돈으로 국립국어원을 꾸리고 있어도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저러나 '타협'이란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면서 어떤 일이 잘 풀리도록 뜻을 모은"다는 일임을 어림할 수 있습니다. 곧, 민주주의라 한다면 "한편으로는 서로를 높이며 뜻을 모아 일을 풀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툼이나 주먹이나 무기가 아닌 이야기로 서로 마음을 열어 일을 푸는" 틀거리라고 하겠습니다.
┌ 질문에 응하다 → 질문에 대답하다 / 묻는 말에 대꾸하다
├ 협상에 응하다 → 협상에 나서다 / 협상을 하다
└ 조사에 응하겠다고 → 조사에 나서겠다고 / 조사를 받겠다고 / 조사를 받아들이겠다고
아주 마땅한 이야기인데, 우리들은 때와 곳에 알맞게 말을 나누고 글을 펼쳐야 합니다. 말을 하는 분들은 말을 들어야 할 사람들 눈높이를 헤아려야 하고, 글을 쓰는 분들은 글을 읽어야 할 사람들 눈썰미를 톺아보아야 합니다. 언제나 가장 알맞춤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고, 늘 가장 걸맞게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겉씌우는 말이어서는 안 됩니다. 겉발리는 글이어서는 안 됩니다. 겉도는 말이어서는 안 됩니다. 겉스치는 글이어서는 안 됩니다. 맑은 말 고운 글, 밝은 말 빛나는 글이어야지요. 사랑 담은 말 믿음직한 글, 따뜻한 말 넉넉한 글이어야지요. 속이 깊은 말이며, 품이 넓은 말이어야지요.
ㄴ.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 1954년에 출산하여 세 번째 아기가 태어날 때에는 같은 부서에서 세 명이 동시에 출산하게 되어 상사로부터 출산을 포기할 것을 종용받기도 했지만 무라타 씨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일하며 키우며》(백산서당,1992) 128쪽
"1954년에 출산(出産)하여"는 "1954년에 낳아서"나 "1954년에"로 다듬고, "세 명(名)이 동시(同時)에 출산하게 되어"는 "세 사람이 한꺼번에 낳게 되어"나 "셋이 나란히 낳게 되어"로 다듬으며, '상사(上司)로부터'는 '웃사람한테서'나 '위에서'로 다듬습니다. "출산을 포기(抛棄)할 것을 종용(慫慂)받기도"는 "아이를 낳지 말라는 소리를 듣기도"로 손질해 줍니다.
┌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
│→ 이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 …
누구 시킨다고 모두 따라야 하지 않습니다. 위에서 시킨다고 아래에 있는 우리들이 늘 따라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옳다면 따르지만 옳지 않다면 따르지 않습니다. 알맞다면 따르지만 알맞지 않다면 따르지 않습니다. 꼭 이래서만은 아니지만, 저는 정부 맞춤법을 늘 따르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습니다. 옳지 않거나 잘못된 말법과 말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좋은 쪽으로 거듭나거나 달라지기를 바라면서 잘잘못을 제 깜냥껏 바로잡아서 말을 하고 글을 씁니다.
┌ 아기를 낳지 말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무라타 씨는 꿋꿋하게 아기를 낳았습니다
├ 아기를 낳지 말라며 들볶였지만 무라타 씨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 …
옳다면 기꺼이 따르고, 옳지 않으면 기꺼이 따르지 않습니다. 아름답다면 즐거이 함께하고, 아름답지 않다면 즐거이 거스릅니다. 좋다면 넉넉히 손잡고, 좋지 않다면 넉넉히 손사래칩니다.
명령과 지시, 강압과 통제, 그러니까 힘과 이름과 돈으로 내리누르거나 들볶을 수 있는 우리 삶이 아닙니다. 사랑과 따스함과 믿음과 넉넉함으로 감싸안거나 보돔을 수 있는 우리 삶입니다. 이런 흐름과 마찬가지로, 우리 넋과 우리 말 또한 사랑과 따스함과 믿음과 넉넉함으로 가꾸거나 일구어 나갑니다. 나날이 좋은 쪽으로 거듭나도록 갈고닦으며, 하루하루 곱고 맑은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가다듬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2.19 14:56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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