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정은 오래도록 '여울'이 되리니

고 김대중 전 대통령님 추모시집을 받고

등록 2009.12.22 12:38수정 2009.12.22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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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1일) 받은 한 보따리의 우편물 중에 기다리던 책이 한 권 있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추모시집' <님이여, 우리들 모두가 하나되게 하소서>.

 

2009년 한해 동안 내가 우편으로 받은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가장 귀한 책일 것 같다. 또 내 글이 실린 책들 가운데서는 올해 마지막으로 받은 책이다.

 

지난 여름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추모시집'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에도 참여했고, 최근 출간된 '용산참사 헌정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했지만, 그 책들은 '봉하마을'과 용산참사 현장의 '헌정식'에서 직접 받고 또 구입해 온 책들이다.

 

그런데 이번 김대중 대통령 추모시집은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받았다. 이상하게 송구스러워지는 마음이었다. 우편물 보따리 속에 기다리던 추모시집이 있는 것을 직감한 순간 이상한 긴장감을 맛보았고, 다른 우편물들의 개봉 작업(?)을 모두 마친 다음 마지막으로 추모시집을 봉투 안에서 꺼낼 때는 성호를 그었다.      

 

흰색 바탕에 매화와 나비가 그려져 있는 표지를 그윽한 눈으로 보고 또 보았다. <님이여, 우리들 모두가 하나되게 하소서>라는 붓글씨 아래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추모시집'이라는 글자가 두 줄로, 또 세로로 마치 '문패'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김준태 외'라는 글자 밑으로 "한국 현대사가 낳은 위대한 정치지도자―인간 김대중, 정치인 김대중에 대한 이 땅의 대표 시인 157명과 작가, 화가, 서예인 등 문화예술인 162명의 추모 헌정시집!"이라는 말들이 네 줄로, 역시 세로로 새겨져 있었다.

 

책 앞날개에는 여섯 문단으로 나뉜 글들이 올라 있는데, 명료함과 각별함으로 더욱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었다. 그 여섯 개의 문단 중에서 마지막 문단을 소개해 본다.

 

"역사는 한때 좌절이 있어도 영원한 후퇴는 없다. 절망하지 않는 국민에게는 패배가 없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 인생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생전 말씀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고인의 명복을 온 국민과 더불어 빌어마지 않습니다.

 

참 신앙인이기도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이 내게 일깨워주었던 '정신'들을 오늘 다시 되새기며, 그리고 진심으로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또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나도 기꺼이 이 추모 헌정시집에 참여했다.

 

올해 '노무현 추모시집', '용산참사 헌정문집', '김대중 추모시집'에 참여한 것 모두 내 인생에서 매우 각별하고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우선은 참담하고도 뼈아픈 일이기도 하다. 그 슬픔과 뼈아픔을 디딤돌 삼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내일의 희망을 향해 더욱 힘차게 나아가고자 한다.              

 

'김대중 추모시집' 간행을 주선한 '한국문학평화포럼'과 도서출판 '화남'은 370여 쪽에 이르는 두툼한 책을 내게 보내면서 서신 한 통도 동봉했다. 추모시집에 참여해준 것에 감사를 표하는 내용과 함께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이희호 여사 등을 모시고 필자들이 함께 하는 '출판기념회' 행사를 서울에서 개최할 계획(일자 미정)임을 알리는 서신이었다.

 

서신에는 특별한 사항이 한 가지 있었다. '김대중 추모시집'에 수록된 필자들의 '육필시'를 모아 '김대중평화센터'에 기증하여 영구 보관할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B4 용지에 시 제목과 시인 이름과 수록시 원고 전체를 육필로 써서 보내 달라는 부탁….

 

실로 오랜만에 육필로 원고를 써보게 되었다. 또 이미 활자화된 글을 육필로 써보는 최초의 경험도 갖게 되었다. 올해 2009년의 마지막 작업으로 그 일을 할 생각이다. 그리고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현재 지속중인 '용산미사' 참례를 제외하고는, 일회성 행사로는 금년의 마지막 '서울 나들이' 행사가 될 것 같다.

 

전국의 모든 서점에 배포된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시집'의 일독을 여러분께 권하면서 이 시집에 수록된 내 추모시를 소개해 본다.

 

당신이 떠나시며 주신 선물

 ― 김대중 대통령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당신을 안 날로부터

점점 더

깊이 많이 알아가면서

참 많이도 사랑했습니다

이해하고 존경했습니다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섭섭해하고 야속해하며

통렬히 비판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 때문에 흘렸던 눈물들을 기억하며

당신으로 하여 눈물 흘릴 수 있는 가슴을 지닌

나 자신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영면의 길로 가셨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노짱'이 이미 다 가져가서

흘릴 눈물도 없었습니다

막막함과 허황함 가운데서

오히려 오기를 머금었습니다

 

당신이 살아 계시던 때

당신 때문에 눈물 흘리던 시절

절절한 가슴으로 써서 발표했던 글들을 몇 개

추모 글 삼아 다시 세상에 띄웠습니다

 

이국에서 감사 전화를 주신 분이 있었고

그 분의 적극적인 조언에 따라

대체의학 활용으로

폐와 갑상선에 암세포를 안고 사시는 노친을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암을 이겨 가시는 노친을 보며

당신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당신은 이승을 떠나시면서

제게 값진 선물을 주셨습니다

당신을 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을

그 절절했던 눈물을

마치 헤아리기라도 하신 듯

당신은 제게 보답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2009년 8월 18일

당신이 이승을 떠나시면서 제게 주신

값진 선물을 가지고

당신과 동갑이신 노친을 보살펴드리며

당신 선물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오늘은 제 노친을

암으로부터 살려내고 있는 선물이지만

이 선물 속에는

당신으로 하여 눈물 흘렸던 이유들

당신을 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했던

그 모든 의미와 가치들이

고스란히 담뿍 어려 있습니다

 

하여 다짐합니다

그 절절했던 눈물의 이유들을

더욱 뜨겁게 끌어안고

세상의 암세포들과 결연히 맞서 싸워나갈 것임을!

 

그리하여

모멸 당하는 민주주의를 되살려내는 일에

미력하나마

뜨겁고 절절하게 힘을 보탤 것임을!

 

양심과

하느님 신앙과

사랑의 이름으로…!

덧붙이는 글 |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로 『신화 잠들다』, 『인간의 늪』, 『회색정글』 등. 신앙시집으로 『때로는 내가 하느님 같다』등. 충남문학대상, 충남문화상, 황희문화예술상 등 수상.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겸임교수 역임.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한국예총 태안지회장. 

2009.12.22 12:38ⓒ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지요하 : 1948년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로 『신화 잠들다』, 『인간의 늪』, 『회색정글』 등. 신앙시집으로 『때로는 내가 하느님 같다』등. 충남문학대상, 충남문화상, 황희문화예술상 등 수상. 공주영상정보대학 문창과 겸임교수 역임.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충남소설가협회 회장, 한국예총 태안지회장. 

#김대중 #추모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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