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농사 1년 결산, 매출은 180만원쯤?

부부가 마음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보람은 경제적 가치를 넘는다

등록 2010.01.18 10:28수정 2010.01.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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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16일) 오후, 모처럼 날씨가 풀려 숙지원에 다녀왔다. 숙지원은 연중 가장 한가한 시기로 특별한 일거리가 없다. 그래서 1주일에 한두 번쯤 풋마늘과 시금치를 솎고 파를 캐고 상추며 케일 잎 등을 뜯기 위한 발걸음만 한다.


숙지원에 자주 못가는 대신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우선 지난 1년을 정리도 하지만 그것보다 금년 농사는 무엇을 어디에 심을 것인지, 양은 얼마나 할 것인지, 또 화단은 어떻게 만들며 꽃은 어떻게 심고 가꿀 것인지 하는 이야기를 한다. 또 나무는 어떻게 재배치하며 금년에 어떤 나무를 구입할 것인지 하는 의논도 빠지지 않는다.

생각은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다. 어제 동쪽에 심으려고 했던 나무가 오늘 생각하니 아무래도 아니다 싶으면 어제 계획을 수정하게 되는데, 날마다 반복하는 이야기지만 지루한 것은 아니다. 서로 의견이 조금 다르더라도 "다시 생각하세" 하고 미루면 끝이다. 그 새 어떤 나무 한 그루는 숙지원을 몇 번이나 돌았을 것이다. 또 야콘밭은 늘어났다가 줄어들기를 열 번도 더 했을 것이다.

농사란 땀 없이 되는 일이 아니다. 풀을 베는 일도 쉽지 않지만 나무를 심기 위해 땅을 파는 일도 경험 없는 사람들이 오래 하면 하늘이 노래지는 경우도 있다. 고추 모종이 저절로 가서 뿌리를 지주대를 잡고 서거나 감자가 스스로 굴러 밭으로 가지 않는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저절로 창고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일까지 사람의 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과일을 따는 일도 마찬가지다. 줄곧 하늘만 보고 하는 일이기에 고개와 팔이 아프고 흔들거리는 사다리에 올라 균형을 잡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본격적인 생계형 농업이 아닌 텃밭에서 소득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나와 가족을 위한 취미생활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땀 흘리는 것이 귀찮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날을 회고하면 당시 흘렸던 땀까지도 아름답게 여겨지는 법이다. 앞날의 희망을 말하다보면 현재의 서운함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a 숙지원 설경 며칠 전 눈 온 후에 숙지원 위쪽에서 잡은 설경임.

숙지원 설경 며칠 전 눈 온 후에 숙지원 위쪽에서 잡은 설경임. ⓒ 홍광석


지난해 텃밭농사를 지어 얻은 현금 소득은 총 3만원이었다. 토란대를 가져가겠다는 사람이 있어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그냥 가져가기 미안하다면 건네준 돈이 3만원이었다. 어제밤 아내와 그때 웃었던 일을 떠올리며 장난삼아 2009년 약 300평의 텃밭 농사를 지은 결과를 결산(?)해보았더니 재미있어 잠시 소개한다.


그간 심어 가꾸고 수확한 것을 얼추 계산해본 것이기에 실제 계산과는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또 익는 정도에 따라 몇 차례에 나누어 수확한 것도 있어 양은 정확하지 않다. 가격은 대강 기억나는 시장 소매가격으로 잡았다. 물론 직접 판매했을 경우는 우리 계산과 차이가 있을 것이다. 독자들께서는 지난 1년을 돌라보면서 자랑삼아 하는 이야기로 듣고 이해하셨으면 한다. 

먼저 과일.
자두 60kg  18만원
매실 10kg  10만원
대추 2되    2만원
오디 5kg   5만원
앵두        1·만원(양은 측정할 수 없음)
보리수      2만원(양은 측정할 수 없음)
단감은 아내의 군입거리가 되었으니 계산할 수 없을 것. 


두 번째 농작물.
감자 40kg       4만원
토란 잎          3만원(유일한 현금이었음)
토란 5kg         3만원
마늘 3접         3만원
양파 10kg        1만원
강낭콩 3되       3만원
완두콩 1되       1만원
팥 5되           5만원
고추 10근(6kg)   8만원
야콘 200kg      80만원(상품성 없는 것 포함하지 않음)
고구마 100kg    10만원     
울금 2kg        1만원
생강 2kg        2만원
옥수수 100개    3만원
가지             3만원
오이             2만원(양은 측정할 수 없음)
토마토           1만원(양은 측정할 수 없음)
호박             2만원(양은 측정할 수 없음)
알타리무         3만원(양은 측정할 수 없음)
무               2만원(양은 측정할 수 없음)    
상추             2만원(양은 측정할 수 없음)
쪽파             2만원(양은 측정할 수 없음)
추정 합계         182만원

그밖에 수시로, 혹은 철따라 열무, 부추, 케일, 깻잎, 비트, 치커리, 딸기, 달래, 미나리, 배추, 머위 대, 아욱 등의 농작물은 수확했지만 아내는 계산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난해 채소는 거의 자급자족했는데 아내 말로는 10만 원쯤으로 계산하자고 한다. 그런 푸성귀 값을 더해도 수입은 200만 원을 넘지 않을 것 같다. 보이지 않게 가계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는 점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만약 처음부터 돈을 목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면 부부 인건비도 되지 않는 액수이다. 만약 땅값을 은행 이자로 환산했을 경우는 거의 조족지혈(鳥足之血) 수준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2009년은 나눔의 의미를 다시 새겼던 한 해였다. 텃밭의 주 작물인 자두와 야콘만 해도 평소 신세를 진 마을 분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여러 친지들 집에도 보냈다.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고구마, 감자, 상추, 고추, 부추, 강낭콩, 달랑무 등 많은 종류를 조금씩이라도 담아 줄 수 있었던 점도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아무튼 텃밭 농사를 통해 얻은 농작물은 그 자체로도 기쁨이지만 그보다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울 만큼 정신적인 보람을 누렸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텃밭 농사를 통해 건강을 회복한 점은 다른 무엇보다 값진 경험일 것이다. 아내는 아직 완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거의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나 역시 약을 먹지 않고도 200을 오르내리던 혈당이140 정도로 안정이 되었다. 이는 적절한 운동과 작물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수확하는 즐거움을 통한 자연치유의 효과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매일매일 우리가 가꾼 완전한 유기농 채소를 안심하고 먹었던 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 밖에 넓게 조성한 잔디밭에서 소나무 향이 배인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한가롭게 걷거나, 절구통 탁자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는 즐거움도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호사일 것이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소망도 있다. 집을 짓는 일이다. 친구들은 자꾸 언제쯤 집을 지을 계획이냐고 묻는데 아직 공부하고 있는 두 아들 때문에 미루고 있다는 설명을 구구하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직도 농촌 생활 적응훈련 중이라고 대답하지만 금년에도 출퇴근하는 농부일 수밖에 없는 사정이 아쉬운 대목이다.

a 숙지원 한쪽의 철쭉밭 며칠 전 눈이 많이 온 후 숙지원에 갔을 때  눈속에서도 버티는 철쭉이 대견하여 잡은 사진임

숙지원 한쪽의 철쭉밭 며칠 전 눈이 많이 온 후 숙지원에 갔을 때 눈속에서도 버티는 철쭉이 대견하여 잡은 사진임 ⓒ 홍광석


이제 아내는 마을 할머니들과 씨앗을 스스럼없이 나누고 농사에 관한 정보를 듣는 사이가 되었다.(지역의 기후와 토질에 따른 적합한 종자들을 알고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어떤 농사 이론보다 정확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을 사람과 관계를 통해 우리는 서서히 농촌을 알아가는 중이다. 그것도 소중한 농촌 적응 훈련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내는 농협 조합원도 되었다. 퇴비 구입비용도 지원을 받고 가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기도 한다. 이제 어디 가든 농사를 짓는 촌사람이라는 농담도 한다.

아직 숙지원은 아직 미완의 정원이다. 그래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텃밭으로 보일 것이다. 숙지원에 담긴 아내와 나의 희망과 꿈을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아내는 자신의 뜨락인 숙지원에만 가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고 한다. 나 역시 잘 된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더 빨리 시작할 걸 하는 후회도 한다.

텃밭 농사 3년.
아직 초보 농사꾼이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더 많다.
그러나 해볼수록 재미있고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하는 일이 텃밭농사 아닌가 한다.

정년을 앞둔 분, 혹은 정년을 하고 일을 찾지 못하는 분들에게 다시 한 번 텃밭농사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아직 젊은 분들에게도 뜻이 있다면 틈을 내어 다른 사람들의 텃밭 농사 혹은 전원생활이라도 견학을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텃밭농사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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