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우리 말의 존재 이유
.. 우리 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 <최경봉-우리 말의 탄생>(책과함께,2005) 93쪽
'존재(存在)'는 '있다'로 고쳐쓰고,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고쳐씁니다. 그러나 두 낱말을 모두 살리고 싶다면 "우리 말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처럼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존재'를 쓰려 하든 '이유'를 쓰려 하든 이와 같은 낱말을 쓰려 하는 까닭을 찬찬히 헤아려 주어야 합니다. 이 낱말이 아니고는 내 뜻이나 느낌이나 생각을 하나도 담아낼 수 없는지 곰곰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투를 더 북돋우지 못하거나 가로막지 않는가를 가만히 짚어 보아야 합니다.
┌ 우리 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
│→ 우리 말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 우리 말은 왜 있을까?
│→ 우리 말이 있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 우리 말은 왜 있어야 하는가?
└ …
저 혼자서 해 보는 생각입니다만, 이 보기글을 쓰신 분은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묻거나 "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하고 물을지 모르겠구나 싶습니다.
┌ 사람은 왜 삽니까?
└ 책은 왜 있습니까?
"너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도 물으리라 봅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도 물을 테지요.
┌ 너는 왜 사니?
└ 우리는 왜 여기에 있을까?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외치거나, "민족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외치지 않으랴 싶습니다.
┌ 한 나라는 왜 있어야 하는가?
└ 겨레란 무엇인가?
"생명의 존재 이유"와 "자연의 존재 이유"를 놓고도 똑같이 물어 보리라 봅니다.
┌ 생명이 있는 까닭
└ 자연이 있어야 하는 까닭
"문명의 존재 이유"나 "민주주의의 존재 이유"를 궁금하게 여기기도 하겠지요.
┌ 문명은 어떤 모습으로 있는가
└ 민주주의는 어떻게 있어야 하나
말을 생각해 봅니다. 글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가 날마다 듣기도 하고 읊기도 하는 말이 무엇인가 가만히 곱씹어 봅니다. 우리가 날마다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하는 글이란 무엇인가 찬찬히 되뇌어 봅니다. 우리는 무슨 까닭으로 말을 하는가요. 우리는 왜 글을 읽는가요. 우리 생각을 담는 말인지요. 우리 넋이 담기는 글인지요.
ㄴ. 도리깨의 존재이유
.. 수해를 심하게 입은 밭에서는 단 한 꼬투리의 콩도 수확하지 못했으니 도리깨의 존재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 <남난희-낮은 산이 낫다>(학고재,2004) 239쪽
'수해(水害)'를 그대로 두기보다는 '물난리'라고 할 때가 한결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심(甚)하게'는 '모질게'나 '끔찍하게'로 다듬고, "단(單) 한 꼬투리의 콩도"는 "콩꼬투리 하나조차도"나 "콩을 한 꼬투리조차도"로 다듬습니다. '수확(收穫)하지'는 '거두지'나 '얻지'로 손질하고, "없어진 것이다"는 "없어졌다"나 "없어진 셈이다"로 손질해 줍니다.
┌ 도리깨의 존재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
│→ 도리깨가 있어야 할 까닭이 없어진 셈이다
│→ 도리깨를 쓸 곳이 없어진 판이다
│→ 도리깨는 쓸모가 없어졌다
└ …
어느 곳에 써야 하기에 연장을 갖추어 놓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 다르겠지만 쓸모없는 연장이란 없습니다. 알맞춤한 쓸 자리를 찾아가지 못하는 연장이 있을 뿐입니다. 알맞춤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알맞춤한 놀이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있듯이 말입니다.
알맞지 못하게 쓰는 말이 있고, 알맞지 못하게 펼치는 글이 있습니다. 알맞게 쓰면 좋으련만, 예나 이제나 알맞게 쓰는 말이란 무엇인지를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알맞게 나아가는 길을 들려주지 않습니다.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알맞게 펼치는 글이란 무엇인가를 꼼꼼히 밝히지 못할 듯한데, 우리들이 주고받는 글줄보다 우리 겉옷을 부풀리거나 뽐내는 영어에만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는 탓입니다.
흔히 일컫는 세계화 시대이든 영어공용이라 하든, 영어만 써야 하는 터전이나 흐름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어린이한테 영어를 가르친다 하여도 어린이들이 영어만 쓰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칠 수 없습니다. 회사원이 나라밖에 물건 많이 파는 재주꾼이 되어야 한달지라도 영어만 해서는 일할 수 없습니다. 관공서에서 영어로도 서류를 쓴다 하지만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 앞에서 영어로만 떠들고 있어도 괜찮을까요.
우리는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가를 잊으며 영어를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영어를 잘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으며 토익이나 토플 점수 높이는 데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영어 낱말 섞는 일이 얼마나 자랑이나 우쭐거림이 되는지를 헤아리지 않으면서 갖은 말치레와 글치레를 일삼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사랑으로 나눌 말을 잃습니다. 다 함께 따뜻하게 어우를 글을 잊습니다. 아이 어른 누구나 즐겁게 주고받을 말을 놓칩니다. 높낮이 없이 어깨동무할 글을 버립니다.
말을 잃으며 생각을 잃고, 생각을 잃으며 삶을 잃습니다. 글을 버리며 마음을 버리고, 마음을 버리며 따뜻한 삶터를 버립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가 쓴 ‘우리 말 이야기’ 책으로,
<생각하는 글쓰기>가 있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1인잡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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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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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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