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들의 수다>에 나온 독일 여성 베라의 책

[서평] 베라 홀라이터가 쓴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등록 2010.03.24 15:47수정 2010.03.2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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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 문학세계사

책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 문학세계사

KBS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은 누구나 한 번 쯤 호기심으로 들여다봤을 법하다.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여러 나라의 미녀들을 등장시켜 어설픈 한국말로 우리 문화와 자국 문화를 비교하며 이야기하는 내용은 신선한 충격을 주며 시선을 끌었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독일 여성 베라 홀라이터가 쓴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출판되기 전에 이미 독일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책이다. 독일에서 출간된 후, 한국에 대한 직설적이고 왜곡된 평가가 많다는 지적 덕분에 그녀는 네티즌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한국에서는 스캔들이 휩싸이게 된 이유를 저자는 "독일어 속에 숨겨진 말의 유희와 풍자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자신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혼돈과 화려함이 병존하며 가끔은 너무나 힘든 서울에서의 생활을 묘사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평가내리는 서울 이야기에 깜짝 놀라게 된다. 서울은 밤새 시끄러워서 잠을 못 들게 하는 소음 속에 있으며 한국인들의 인간관계는 괴상하고 어렵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예의가 없으며 엉뚱하다는 표현들은 곱게 보려고 해도 괜히 거슬린다. 그게 아무리 독일식 유머라고 해도 받아들이기 힘든 건 어쩔 수가 없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이상하게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존재들이다. 기회만 있으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놓지 못해 안달이고, 언제나 불만투성이인데다 사소한 일에 끊임없이 흥분한다. 그리고 자주 우울해한다. (중략)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서울의 혼잡한 도로와 같은 한국인의 행동 규칙과 금기 사항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독일 여성 베라, 그가 한국 결혼식에 놀란 이유

 

그러나 이런 경험은 외국에 살게 된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일들이 아닐까 싶다. 나도 외국 생활을 해 봤지만 기존에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그곳의 문화에 불만을 갖고 우울해하며 정신적 혼란을 견디지 못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화려함과 속도가 지배하는 아시아, 천만 도시의 어수선함 속에서도 불교 사찰과 예쁘게 꾸며 놓은 공원의 평화가 좋아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곧 실망감이 되고 말았다.

 

그런 그녀가 계속 한국에 머무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인 남자친구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좋아도 그가 속한 문화는 마음에 들지 않다는 그녀의 속내는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는 어깨를 치고 지나가면서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 많은 외국인들이 이런 상황에 놀라고 불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외국에서 오랜 동안 생활하다 한국에 들어온 사람들도 처음에는 이 경험에 새삼 놀라게 된다.

 

저자의 날카로운 시각은 이와 같은 한국의 사례를 꽤 여러 가지로 열거한다. 한국의 엄청난 학업 강도와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와 있다. 한국의 대학입시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다는 얘기는 공감이 가면서 한편으론 슬프다. 우리는 왜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할 때, 편하고 쉽게 인생을 즐기며 살지 못하는 걸까?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독특한 모습은 이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남자친구의 누나 결혼식에 갔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 하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잡담을 하고 전화를 하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상황은 정말 예의 없어 보인다. 진짜 예식은 몇 분 만에 끝나고 사진 찍기에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외국인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춰졌을 것이다.

 

"나이든 한국인들은 음식이 취향과 적응의 문제라는 것을 도통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한국 음식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한마디나 전혀 악의 없는 평가도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이기 일쑤다. 그리고 자기 나라 음식에 대한 사랑은 종종 외국 음식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진다."

 

날카로운 저자의 지적... 불쾌감을 주기도

 

해외여행을 갈 때조차도 한국 라면과 김치를 준비해 가는 열성이 '극성스럽다'는 표현에 어울릴 만하다. 이런 문화적 상황은 간혹 타 문화에 대한 배척을 불러오기도 하니, 우리 것을 고집할 때에는 지나치지 않은가 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국수주의적인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서울의 잦은 공사도 저자에게는 비판거리가 된다.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공사 소음으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는 어느 날, 손쉽게 부수고 짓는 공사 속도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독일 여성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한다. 나 또한 하루에 한 번이라도 공사장을 지나치지 않고 거리를 걸어본 적이 없을 정도니 말이다.

 

"한국은 과도한 애국주의 때문에 전통과 현대 사이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이 국제적으로 덜 중요하고 덜 성공적이고 덜 인기 있는 나라인 것에는 중국과 일본, 혹은 서양의 무관심에만 그 탓이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들과 진보적인 사람들에게까지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과거 지향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사고에 실제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은 한편으로는 지나치다 싶어 불쾌감을 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외국 문화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우리의 민족적 성격이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과 부정의 양 측면을 지니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현재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화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많은 외국인과의 교류를 경험하고 있다. 비록 쓴 소리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의 비판을 주의 깊게 들어보고 고쳐야 할 부분은 개선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단, 저자가 말하는 모든 얘기가 다 고개를 끄덕일 만큼 보편적인 설득력이 있지는 않다는 점에 유의하며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책에는 객관성을 벗어나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편협한 한국 이야기도 가끔은 담겨 있다. 그게 바로 이 책이 그토록 많은 비난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 한국에서의 일 년

베라 홀라이터 지음, 김진아 옮김,
문학세계사, 2009


#문화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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