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의 첫 번째 황금기로 꼽히는 1930년대를 연 신호탄과도 같았던 <황성 옛터>(원래 제목은 <황성(荒城)의 적(跡)>). 그 불멸의 고전과 함께 대중가요사의 전설이 된 가수 이애리수(李愛利秀. 1911~2009)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한 해가 되어 간다(기사 하단 관련기사 참조).
본격적인 가수 생활을 채 3년도 하지 않고 충격적인 정사(情死) 시도 사건으로 대중 앞에서 사라진 이애리수는, 고령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이라는 세간의 추정과 달리 지난 2008년 가을에 생존 소식을 알리면서 75년 만에 또 다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상 최초로 한 세기의 수(壽)를 누리는 대중가요 가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다시 언론에 등장한 이후 반년 뒤인 작년 3월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진부하지만 여기서 또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다. 거의 백년을 산 이애리수의 삶을 사실 짧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끊임없이 불릴 그의 노래는 그보다 훨씬 오래 우리 곁에 머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가수는 역시 죽어서 노래를 남기는 법이다.
조선은 물론 일본에서도 음반을 낸 이애리수가 남긴 노래는 약 60여 곡. 그의 목소리를 가장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당년의 SP음반은 이제 거의 골동품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접하기 어렵고, 보통은 CD로 복각된 몇몇 곡을 들을 수 있을 뿐이다. <황성 옛터>나 <고요한 장안> 같은 대표곡이 복각되어 있는 것은 다행이나, 이애리수의 진면목을 살피기에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있다.
SP음반시대 옛 가요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에 주목해 작년 11월에 결성된 옛 가요 사랑모임 '유정천리'에서는, 한국 대중가요 최초의 스타이자 한류의 원조로도 평가받고 있는 이애리수의 일주기를 맞아 그의 가수 활동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필 수 있는 대표작 20곡을 모아 이번에 CD로 제작, 발매한다.
<이애리수 대표곡 선집>에는 기왕에 복각된 <황성 옛터> 등은 물론, 아직 공식적으로 복원된 바 없는 <오동나무>, <강남제비> 등의 인기곡이 여럿 수록되었다. 그밖에도 유명 희극배우이자 이애리수의 외삼촌이기도 한 전경희와 듀엣으로 부른 만요 <모보모가>, 이애리수 히트곡의 태반을 작곡한 명콤비 전수린과 듀엣으로 부른 <님 그리워 타는 가슴>, 당대 조선 최고의 문호로 꼽혔던 이광수의 몇 안 되는 대중가요 가사 가운데 하나인 <스러진 젊은 꿈> 등, 주목할 만한 작품이 적지 않다.
또, 다른 나라에서 히트한 첫 번째 한국 대중가요로 기록할 수 있는 <고요한 장안>의 번안곡 <あだなさけ(원망스러운 정)>도 원곡과 비교해 들어 볼 수 있도록 나란히 수록되었고, 이애리수가 가수 활동을 접은 뒤인 1934년에 뒤늦게 발매된 마지막 작품 <꽃각시 설움>이 선집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유정천리'에서는 오는 3월 26일 금요일 저녁에 이애리수의 남편과 아들이 적을 두었던 연세대학교 상남경영원에서 CD 발매를 기념하고 '세기의 가희' 이애리수를 추모하는 모임을 축음기 콘서트 형식으로 열 계획이다. <황성 옛터>, <꽃각시 설움> 등 몇몇 작품은 그 자리에서 SP음반을 직접 시연하게 된다.
가수는 세상을 떠났지만, 노래는 지금도 여전히 흐른다. 이 시간에도 어느 노래방에서는 누군가 틀림없이 <황성 옛터>를 열창하고 있을 것이다. 노래를 통해, 그리고 그 노래들이 모인 대표곡 선집 음반을 통해, 부활한 전설의 가수는 현실에서 못다 한 세기의 삶을 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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