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덕 할머니(왼쪽)와 반평생지기인 이금주 할머니.
인병문
최순덕 할머니는 올해 100세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 병탄이 된 1910년 경술국치 이듬해 광주에서 태어난 최순덕 할머니. 조국의 식민과 민족 분단 오욕의 100년의 역사를 오롯이 함께한 할머니의 눈빛은 젊은이들보다 더 형형하다.
허리가 편찮아 많은 시간 자리에 누워 계시지만, 빛나는 백발에 고운 얼굴, 그리고 총총한 기억력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100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의 아파트, 할머니 방 침대 머리맡에는 여러 책들과 공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할머니는 지금도 틈틈이 책을 보고 필요한 것들을 적는다. 이런 생활들이 할머니의 건강과 총기를 유지하는 힘인 듯하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한 축인 광주여고보의 '백지동맹' 투쟁일제의 황민화 교육과 민족 차별에 항의하며 일어난 광주학생들의 시위와 동맹휴업이 한창이던 1929년 11월 10일 밤 광주의 어느 하숙집, 젊은 학생들이 속속 모였다. 이들은 광주고보와 농고 등 광주지역 학교의 대표들로, 계속되는 학생들의 항일투쟁을 더욱 확산시킬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들 중에 유독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닌 광주공립 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학생 대표였다. 남자학교는 대부분 동맹휴업에 들어간 상태. 이들은 아직 수업을 하고 있는 이 여학교의 투쟁 방향에 대해 논의한 뒤 '중간고사 거부'로 결정한다. 바로 다음날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여학생은 이들과 헤어져 집에 들어가지 않고 동급생인 친구 집으로 향했다. 둘은 밤을 새워 150여 장의 전단지를 만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 일찍 도착한 이들은 등교생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시험이 시작되기 앞서 각 학급을 돌며 칠판에 '시험 거부' 투쟁에 대해 적었다.
얼마 후 한 학급에서 함성과 함께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뛰어 나가자 모든 학급으로 이어졌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구속 학생 석방하라' '식민지 교육 철폐하라' '중간고사 거부한다' '일본인은 일본으로 돌아가라' 등을 외치며 항의했다.
이듬해 이들은 1월 다시 한 번 투쟁을 전개하면서 학생 독립운동의 한 획을 긋게 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한 축인 '백지동맹'은 이렇게 전개됐다.
이 투쟁의 주역이 바로 당시 19살로 3학년 반장이던 최순덕 할머니다. 할머니는 이후 무기정학을 받고 친구의 집으로 피신하게 된다. 이 사건은 당시 부면장을 하던, 함께 전단지를 만들었던 친구 아버지의 조치로 밖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묻히지만, 이듬해 1월 학생들은 다시 투쟁을 전개하게 되고 일제는 대대적인 탄압을 하기에 이른다.
1, 2차에 걸친 '백지동맹' 투쟁으로 10여 명의 학생이 옥고를 치르고, 40여 명의 학생이 학교로부터 무기정학과 퇴학 등 징계를 받았다. 이때 최할머니는 1차 투쟁으로 무기정학을 당한 상태로 피신 중이었기 때문에 구속을 면했다.
잘못 기록된 '백지동맹'의 역사... 주역, 독립운동 유공자 인정 안 돼최순덕 할머니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바로 '백지동맹' 투쟁에 대한 정확한 역사 기록이다. 현재 각종 사료에는 할머니가 주역이 됐던 1929년 11월 11일의 1차 '백지동맹'에 대한 기록이 누락되어 있고 할머니에 대한 기록도 없다. 그로 인해 할머니는 또한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광주여고보에서 일어난 1930년 1월의 2차 '백지동맹' 투쟁이 언론에 보도되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당시 일제 경찰로부터 탄압을 받는 등 각종 기록으로 남아 2차 투쟁이 '백지동맹'의 '역사'로 남게 된 것이다.
현재 정부의 입장은 당시 언론보도 등 기록이 남아 있어야 유공자 포상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것을 근거로 '백지동맹'에 대한 기록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이를 위해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였으나, '증거 미비'로 보류된 상태다. 할머니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의 이유는 분명하다.
"내 개인적 명예 회복과 어떤 혜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겠어요. 일본의 역사왜곡을 탓하기 전에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해요. 혹독한 일제 치하에서 누가 어떻게 청춘과 목숨을 내걸고 조국 해방을 위해 싸웠는지, 광주여고보의 '백지동맹' 투쟁의 진실이 무엇인지 후대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하지요. 그래야만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조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어요.""일본의 역사 왜곡 탓하기 전에 우리 역사 바로 세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