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제주도만장굴 내부, 바닥이 불규칙하다
김준희
컴퓨터로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보면 주인공은 최소 한 번 이상 동굴에 들어간다. 그 안에서 보스와 맞서 싸우기도 하고 임무를 완수할 만한 보물을 찾거나 열쇠를 얻기도 한다. 만장굴이 거기에 어울릴 만한 동굴이다. 내부가 넓어서 괴물과 싸우기 좋고 천장은 오래전에 굳어 버려서 무너질 염려도 없다.
게임의 주인공처럼 동굴로 들어가지만, 우리의 임무는 상대적으로 보잘것 없다. 개방구간의 끝까지 갔다오기만하면 된다. 만장굴의 내부는 바닥과 벽에 군데군데 조명시설을 설치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운동화를 신고 걷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바닥은 오래 전에 용암이 굳은 상태 그대로다. 울퉁불퉁하고 곳곳이 패여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삐끗할 수도 있다.
이렇게 조명시설이 있더라도 아무도 없을 때 만장굴에 혼자 들어오는 것은 꽤나 꺼려질 것만 같다. <반지의 제왕>에서 대왕거미가 사는 동굴에 들어가던 프로도의 심정도 그렇지 않았을까.
축축한 바닥을 밟으며 안쪽으로 이동한다. 동굴 특유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천장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조명시설이 있어도 어둠을 전부 걷어낼 수는 없다. 나의 형편없는 카메라와 더 형편없는 사진 실력으로는 동굴 내부의 모습을 제대로 찍지 못한다. 가다보면 만장굴의 명물인 거북바위와 용암석주가 있다고 하니까 그거나 좀 찍어 봐야겠다.
만장굴이 형성된 것은 대략 30만 년 전이라고 한다. 당시는 신생대 홍적세였고 한반도에는 아마 호모에렉투스(직립형 인간)가 살고 있었을 것이다. 화산 폭발과 함께 만장굴의 넓이와 높이만한 거대한 용암이 흘러내리는 광경을 보았을때 그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화산폭발과 용암이 뭔지는 몰랐어도 가까이 다가가면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이 죽기도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흘러내리던 용암의 표면이 굳고, 그 내부로 용암이 빠져나가서 이렇게 용암동굴이 만들어졌다. 폭발 당시 공포의 대상이었던 용암이 이후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동굴로 바뀌었다. 제주도 서쪽에 있는 벵뒤굴은 선사시대 인간의 거주지였다고 한다.
용암이 만든 거북바위와 용암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