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의 한 장면.
쇼이스트(주), 동녘필름
외국인 노동자가 죽었을 경우 보통 화장을 해 유골이나 분골로 본국행 비행기를 탄다. 그러나 가족들이 화장을 원하지 않으면 '시신보존위생' 처리를 해야만 갈 수 있다. 화장을 원하지 않는 것은 대부분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안치실에 들어가니 나같은 참관생을 제외하고 '시신보존위생사' 즉, 임바머(Embalmer) 세 명이 각종 설비와 장비, 기구들을 챙기며 준비하고 있었다. 세 명 모두 대학의 장례지도 관련 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했다.
이제 본격적인 '시신보존위생'에 들어간다. 우선 세상을 떠난 이후 냉장 안치실에 있었던 그를 시신보존위생테이블 위로 옮겼다. 그리고는 다같이 묵념을 했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숨을 쉴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짙은 쌍꺼풀 진 눈을 뜨고 웃을 것만 같았다.
먼저 몸 전체에 소독액을 분사한 후 몸 각 부분을 깨끗이 닦고 몸의 경직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자세와 얼굴을 자연스럽게 고정시킨 다음 혈관에 시신보존위생액을 집어넣고 혈액을 빼내기 위해 쇄골 쪽과 대퇴부 쪽의 정맥과 동맥을 찾아 절개를 했다. 기계를 이용해 시신보존위생액을 넣은 다음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절개한 부위를 봉합하고, 다시 한 번 깨끗하게 몸을 닦은 후 옷을 입힌다.
흰 셔츠에 검은 양복, 검은 넥타이, 검은 양말을 신은 그를 입관하고 나니,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담당자가 들어와 기록을 위해서인듯 그의 모습을 촬영한다. 그는 내일 아침 네팔행 비행기에 오른다고 했다.
나는 참관생이긴 했지만 여러 손길이 하면 그래도 도움이 좀 된다기에 몸의 경직을 풀어줄 때와 옷을 입힐 때 거들었다. 일면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낯설기까지 한 외국인이었지만 거부감은 없었다. 다만 낯선 땅에 와서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던 그의 절박했을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해 가슴이 먹먹했다.
한때 힘차게 뛰고 부지런히 움직였을 그의 손과 팔과 발과 다리를 부드럽게 풀어주노라니, 생명 있고 없음의 막막한 거리가 실감이 나면서 몸과 마음, 생명, 삶, 죽음 같은 단어들이 순서없이 오갔다. 냉랭한 지하 안치실에 서서, 바깥의 환한 햇살 아래 눈부시게 피어있던 안양천변의 벚꽃과 개나리를 떠올린 것도 어쩜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미 영원한 안식에 들었을 그, "나마스테"그와 나, 무슨 인연이 있어 이렇게 만났던 걸까. 입관 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며 나는 입 속으로 가만히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러면서 불현듯 "나마스테"라는 네팔 말을 이어서 했다. 세상 떠난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인삿말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집에 와 '나마스테'의 뜻을 찾아보니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해지세요, 다시 만나요' 등 넓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안녕히 가세요'라는 나의 인삿말과는 통했으니 됐다.
깨끗한 얼굴, 편안한 표정의 그를 보는 내내 몸은 비록 여기 누워 고향에 도착하기까지 상하지 않고 잘 보존되기 위한 처치를 받고 있지만, 영혼만은 이미 저기 저 어느 곳에 도착해 영원한 안식에 들었으리라 생각하니 그래도 조금 위로가 되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도 떠나올 때도 로비에 놓인 TV에서는 천안함의 배꼬리(함미) 인양 속보가 계속되고 있었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발표되는 몇 '명' 아닌 몇 '구'로 표현되는 젊은 해군 장병들의 소식은 우리들 가슴을 후벼 파며 아까의 그 위로마저 턱없는 일로 만들고 있다.
죽음이 우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이 때에, 오늘 만난 그는 도대체 내게 무엇을 주고 간 것일까. 어느 한때 누군가의 사랑이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꿈이었을 그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 주기 위해 오늘 내 앞에 나타났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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