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사대강'으로 개명합니다"

선관위 '4대강 반대 금지'에 '개명'으로 시민불복종 운동 전개

등록 2010.04.26 19:26수정 2010.04.26 19:26
0
원고료로 응원
a  환경정의 활동가들이 26일 서울 서초구 가정법원에 '사대강'으로 개명하겠다고 신청하기 전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환경정의 활동가들이 26일 서울 서초구 가정법원에 '사대강'으로 개명하겠다고 신청하기 전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환경정의


제가 태어난 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거주 이전에 자유가 있으며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물론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이 붙지만 말하는 자유가 있는 나라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한 법치국가라고 배웠습니다.

반공의 서슬 퍼런 깃발이 여전이 펄럭이던 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광고에 등장하는 "I'm from Korea"는 제게 그런 나라였습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대통령이 나왔고, 광장의 붉은 물결 위에 월드컵 4강에 오른 나라입니다.

대학을 다니고 입대와 전역을 하는 동안 대한민국은 또 그렇게 자랐습니다. 저도 자랐습니다. 스물의 터널을 통과하며 젊다는 이유로 어른들에게 세상 참 좋아졌다는 말을 귀에 딱지 앉도록 들으면서 이제 서른의 고개를 넘고 있습니다.

선관위, '4대강 사업' 홍보는 'YES' - 반대는 'NO'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4대강 사업 반대' 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사실 굉장히 지엽적인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거는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설마 그런 선거를 책임진다는 선관위에서 공식적으로 그런 법해석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신문이고 텔레비전이고 '4대강 사업'을 홍보하는 나라에서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낸다고 불법의 범주로 몰아간다는 건 불편부당한 법집행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90조와 93조를 근거로 든 선관위의 어처구니없는 유권해석은 현실이었습니다. 입 닫고, 귀 막고, 눈 감고 우리가 하는 '4대강 사업'에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제가 태어난 나라, 제가 알고 있는 나라인 "I'm from Korea"는 그런 나라가 아닌 것을.


(환경정의) 회의에서 한 활동가가 말했습니다. "그럼, 강아지 이름이라도 4대강으로 바꿔서 개 이름 부르듯 불러야겠네." 그러다가 "그럼, 우리 이름을 개명하자. 그래서 '사대강이 아파요'라고 말하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기획된 일이 "내 이름을 사대강으로 개명한다"입니다.

"4대강이 아프면, 사대강도 아픕니다"


a  "내 이름은 4대강입니다." 26일 '사대강'으로 개명을 신청한 환경운동가들. 가장 오른쪽이 필자다.

"내 이름은 4대강입니다." 26일 '사대강'으로 개명을 신청한 환경운동가들. 가장 오른쪽이 필자다. ⓒ 환경정의


얼마 전 연극을 보러갔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왕의 남자'의 원작이 되는 '이'라는 연극입니다. 거기 등장하는 광대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한 사람이 "4대…"라고 말 할 때, 다른 한 명이 입을 막습니다. 그런 뒤, "그래. 그래. 대강 대강 대강 대강 하는 건 문제야"라며 객석의 웃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어릴 때 했던 장난전화가 생각납니다. "거기 세미네 집이지요?" "아줌마네 집에는 수세미도 없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얼마나 깔깔거렸는지 모릅니다. 그런 장난에 재미가 붙어서 여러 아줌마 아저씨들의 뒷목을 무겁게 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참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딱 말장난할만큼 좋아졌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고사하고 딱 이만큼만 좋아졌나 봅니다. 그래서 정규석, 신권화정, 심희선, 임영수 이렇게 우리 넷은 사대강이 되어서 4대강 대신 아프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4대강이 아프면 사대강도 아픕니다.

사실 대한민국의 우리 모두가 사대강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픕니다.

"내 이름을 '사대강'으로 개명합니다"

26일 오전 환경정의 사무처 활동가 4명이 서울 서초구 가정법원에 개명 신청을 했다. 자신들의 이름을 '사대강'으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4대강 반대' 운동을 선거법 위반으로 금지하며 편향성 논란을 낳은 선관위에 대한 일종의 시민불복종 운동인 셈이다. 다음은 이들이 법원에 제출한 '개명 신청 이유' 전문이다.

개명 신청 이유

1. 본인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가지고 그동안 큰 불편 없이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는 서글픈 사연이 있습니다.

2. 본인은 4대강 사업이 강에 의존해 살고 있는 뭍생명들과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는 죽임의 잔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공직선거법을 들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모든 홍보물, 펼침막, 유인물, 배지까지 금지시켜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있습니다. 머리가 있되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이 있되 표현하지 못한다면 나는 4대강으로 인해 죽어가는 생명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처지입니다.

3. 본인은 헌법이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싶습니다. 따라서 본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봉쇄하는 선관위의 판단을 거부하며, 시민불복종의 하나로 본인 이름이라도 4대강으로 바꿔 4대강 사업반대가 자유롭게 거론되었으면 합니다.

4. 선관위가 설마 제 이름까지 부르지 못하게 하지는 않겠지요? 하여 이름을 바꿔서라도 강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뒤틀고 뭍생명들을 희생시키는 4대강 사업에 온몸으로 반기를 들고자 합니다. 본인의 이름을 개명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정규석씨는 환경정의 소속 활동가 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규석씨는 환경정의 소속 활동가 입니다.
#4대강 사업 #사대강 개명 #선거관리위원회 #환경정의 #시민불복종 운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