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의 첫 회 안내문구. 현직 대통령 미화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SBS 화면캡쳐
한 남자가 있다. 지방에서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서울로 상경했다. 온갖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수십 년 후, 그는 대한민국 굴지의 건설회사 사장이 되어 있었다.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두고 혹시 푸른 기와집에 앉아 계시는 어떤 한 분을 머릿속에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가 예상하는 '그 분'이 아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이강모. SBS 새 월화드라마 <자이언트>(오후 10시 방송)의 주인공 되시겠다.
SBS에서 창사 20주년을 기념하여 야심차게 준비한 <자이언트>는 약 100억 원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거대 시대극이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1970~1980년대 서울 강남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경제개발의 빛과 어둠 속에서 한 인간이 일궈낸 성공스토리를 그려낸다.
밑바닥 출신 인물이 스스로의 뛰어난 능력과 주변 인물들의 도움으로 결국에는 크게 성장하는 식의 드라마는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흘러넘친다. 당장 동시간대 방영되고 있는 MBC <동이>만 보더라도 그런 류의 이야기가 아닌가. 격동의 세월인 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도 적지 않다. 지난 2008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MBC <에덴의 동쪽>이 대표적인 예다.
SBS가 야심차게 빼든 <자이언트>가 성공하려면그런데 유독 <자이언트>만큼은 이야기의 줄거리와 드라마의 배경을 놓고 시작 전부터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올해 초 <자이언트> 출연에 구두계약을 했다고 언론에 알려진 한 유명배우의 경우에는 인터넷의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서 '<자이언트> 출연 반대 청원' 움직임까지 일 정도였다.
<자이언트>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누리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까닭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실존하고 있는 어떤 한 인물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극의 주인공인 이강모의 직업이 건설회사 사장이라는 점, 그리고 극의 배경이 1970~1980년대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은 이강모의 모습에 필연적으로 건설회사 CEO 출신의 현직 대통령을 겹쳐 보게 된다.
결국 <자이언트>가 현직 대통령을 미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누리꾼들은 이 드라마의 방영에 모종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게 됐고, 그 논란과 불편한 시선은 <자이언트>가 방영을 시작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 <자이언트>가 성공을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은 바로 이와 같은 대중과 언론의 부정적인 논란을 잠재우는 것이다.
그러나 고비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이언트>가 맞닥뜨려야 할 또 다른 상대는 바로 경쟁작인 <동이>다. <이산> 이후 3년 만에 귀환한 사극의 대가 이병훈 PD가 야심차게 준비한 대하사극 <동이>는 현재 20%가 넘는 시청률로 안정세를 보이며 월화드라마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자이언트>가 방영 첫날 1, 2회를 연속 편성한 것은 <동이>의 독주체제에 제동을 걸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이언트>의 전작 <제중원>은 방송 3사의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에서 내내 꼴찌를 기록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종영 당시 시청률도 한 자릿수로, 시청자들이 이어지는 소위 '전작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결국 <자이언트>가 선택한 것은 변칙 편성이었다.
시청률을 위한 SBS의 드라마 변칙 편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MBC <선덕여왕>이 국민드라마로 불리며 안방극장을 점령하자 기존의 밤 10시 편성 월화드라마를 9시 편성으로 한 시간 앞당기고 10시에는 예능 프로를 편성한 바 있다. 그 주인공이 됐던 드라마가 바로 <천사의 유혹>. 결국 이 작품은 변칙 편성의 도움을 받아 상당한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미 <동이>가 15회나 진행되어 버린 상황에서 고정 시청자 층이 이탈할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그 시청률이 30~40% 정도로 높지 않은, 20% 대 초반이라는 점에서 아직은 그리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후발주자로 시작해 시청률 1위의 드라마를 역전한 사례는 적지 않다. 드라마 <자이언트>가 성공을 위해 넘어야 할 두 번째 관문은 바로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인 <동이>다.
<자이언트> 정치색 뺀 가족 휴먼드라마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