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행렬 중인 아낙네들
이갑철/포토넷
다른 어느 문화밭이나 예술밭보다 사진밭에서 '대가'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고 팔리고 나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대가라는 이름이 붙거나 이 이름을 붙이는 분들 사진책은 좀처럼 팔리지 않습니다. 대가라는 분들 사진책이 덜 팔린다고 이분들이 대가가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많이 팔리는 사진책을 내놓았다고 대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사진을 처음 배울 무렵부터 사진을 꾸준히 찍고 사진책을 차근차근 즐기는 오늘날까지 "대가 = 엉터리"이고 "엉터리 = 대가"가 아닌가 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머리로 품는 생각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이 이와 같습니다.
스스로 대가라고 일컫거나 둘레에서 대가라고 일컫는 이름에 흐뭇해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사래치지 않는다면 그예 엉터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느낍니다. 남들이 엉터리라 하든 스스로 엉터리라고 이야기하든 엉터리 소리를 흔히 듣거나 자주 듣거나 으레 듣는다면 이이야말로 대가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작품 하나로 그치는 대가란 없습니다. 작품 하나로 마무른 대가라 한다면 새로운 작품 하나로 나아갈 노릇이요, 지난날 당신이 이룬 대가다운 작품은 더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노릇이라고 봅니다. 작품 하나를 일군 대가라 한다면 하루하루 새 나날을 보내는 동안 당신이 지난날 이룬 대가다운 작품을 깎고 보태고 다듬고 손질하면서 마지막 숨결을 잇는 그때까지 땀흘리기를 멈출 수 없는 노릇이라고 봅니다.
한자말로는 '대가'라지만, 우리 말로는 '큰그릇'입니다. 사진찍기를 하든 글쓰기를 하든 그림그리기를 하든, 우리가 굳이 큰그릇만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작은그릇이면 어떠하고 작은그릇조차 못 되면 어떠하랴 싶습니다. 우리는 크거나 작은 그릇이 되고자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내 삶을 사랑하는 만큼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고 느낍니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내가 아끼는 만큼, 내가 알아 가는 만큼, 내가 고개숙이는 만큼, 내가 부대끼는 만큼, 내가 껴안는 만큼, 내가 느끼는 만큼, 내가 깨닫는 만큼, 내가 믿고 보듬는 만큼 일을 하고 놀이를 한다고 봅니다.
큰사람이 되라고 딸아들을 낳아 기르지 않습니다. 저 또한 딸아이 하나를 옆지기와 낳아 함께 복닥이고 씨름하는 나날을 보내며 생각합니다. 우리 딸아이가 아빠나 엄마보다 크고 거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착하고 참되고 고운 사람으로 씩씩하고 튼튼하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