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빛 느끼며 골목동네 껴안기

[골목길 사진찍기 1] 골목길을 사진으로 찍고 싶은 당신한테

등록 2010.05.12 13:20수정 2010.05.1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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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하며 좋은 기운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하며 좋은 기운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 최종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며 골목사람으로 지내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골목동네를 골목동네답게 사진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비록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지라도 오늘 내 삶을 꾸리는 자리가 골목동네가 아니라 할 때에는 골목동네 오늘날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합니다. 이때에는 나 스스로 어린 날이나 젊은 날 보냈던 '옛이야기 담긴 모습'을 찾아내어 사진으로 담을 뿐입니다. 골목동네 사람이 아닌 사람이 담는 골목동네 사진이란 '구경꾼 사진'에 머물고 마는데, 바로 오늘 하루와 어제 하루와 글피 하루를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하고 섞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섞인다'고 말했는데, 골목동네 사람들이란 이웃하고 따로 섞이며 지낸다기보다는 그저 똑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예 삶이요 삶을 사진으로 옮긴다고 하겠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이들은 당신들이 사진으로 엮으려는 이야기가 되는 마을로 찾아가 이 마을사람들하고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고자 할 때에는 그냥 '골목동네로 나들이를 간 매무새'로는 어림이 없습니다. 골목동네 사람들하고 하나가 되고자 애써야 비로소 겉훑기로나마 골목동네 삶자락을 살짝 엿볼 수 있고, 이렇게 엿본 만큼 사진으로 담습니다.

상업 사진을 하는 이들은 당신들이 돈을 받고 찍어야 하는 모습을 '돈을 준 사람 입맛과 눈높이에 맞추'고자 온힘을 다합니다. 당신들 손맛을 살리면서 돈을 준 사람 입맛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떠한 그럴싸한 틀거리라든지 아주 기막힌 모습 하나를 찍는다고 될 상업 사진이 아닙니다. 주어진 사진 이야기에 걸맞게 사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고자 할 때에는 그저 '더 나은 장비와 더 깊은 경력'으로는 찍을 수 없습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이 나한테 '우리 동네와 우리 집과 우리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는 내 손맛을 살리는 가운데 골목동네 사람들 눈높이와 입맛에 걸맞도록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저는 골목동네를 제 사진감으로 삼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숱한 사람들이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동네에 찾아와 사진을 찍는 분들이 선보이는 사진들을 보고 너무 끔찍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은 우리 동네를 구경꾼으로조차 아닌 멋내기와 어설픈 뒤틀기에다가 섣부른 금긋기로 잘라먹고 있었습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이 이 사진을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못마땅해 하거나 슬퍼 하거나 씁쓸해 할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제 사진기는 제 딱 하나뿐인 사진감이었던 '헌책방'에서 '골목길'로 가지를 하나 쳤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살고 있는 골목동네 삶자락 이야기를 골목동네 사람 눈길에 따라 사진으로 엮어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지난 세 해에 걸쳐 사진찍기만 신나게 했습니다. 이제는 지난 세 해에 걸쳐 무슨 사진을 그토록 신나게 찍어댔는지를 글로 풀어내 보고 싶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제 고향 삶터인 골목동네에서 머잖아 쫓겨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누가 인천시장이 되어 우리 동네 행정을 맡는다 할지라도 '땅값과 집값 싼 골목동네를 통째로 갈아엎어 아파트로 바꾸려는 개발'을 밀어붙이려 하거든요.

ㅎ당이든 ㅁ당이든 이분들이 내놓는 정책이나 공약이란 '아파트 짓기'입니다. 우리 집처럼 보증금 300만 원에 달삯 35만 원 가까스로 내면서 버티는 사람들이 달삯 좀 줄이고 보증금 몇 푼이나 더 얹어 좀더 걱정없고 느긋하게 지내며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데에는 정책이나 공약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식구가 고향 삶터인 인천에서 쫓겨나 어디론가 떠도는 삶이 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앞으로 우리 골목동네뿐 아니라 다른 골목동네에서 사진찍기를 어떻게 하면 골목동네 사람들한테나 '사진을 찍는 당신'한테나 흐뭇하며 애틋하고 살가울까 하는 이야기를 적바림하고 싶습니다.


a  골목길

골목길 ⓒ 최종규


1. 인천 중구 경동. 2010.5.1.14:09 + F8, 1/80초
한국전쟁이 끝나고 잿더미가 된 인천에서 흙과 돌과 나무를 그러모아 지은 집들이 오늘날까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겨우겨우 올린 집을 나중에 기와를 얹거나 벽돌을 덧대거나 흙벽에 시멘트를 바른다든지 타일을 붙이며 조금씩 손질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가난한 동네에 가난한 도둑이 든다고, 도둑을 막고자 방범창을 달아 놓습니다. 나중에 돈을 좀 벌면 겨울날 추워서 얼어죽을 듯한 집에서 창문이라도 새로 달아 바람 새는 구멍을 막고자 애씁니다. 이동안 전기가 들어오고 전깃줄은 골목동네에 어지러이 이어집니다.

a  골목길 사진 둘.

골목길 사진 둘. ⓒ 최종규


2. 인천 중구 관동1가. 2010.5.9.13:54 + F10, 1/80초
문을 스텐샤시로 처음 바꿀 때에 얼마나 반딱반딱했는지 모릅니다. 나무문을 스텐샤시문으로 바꾸는 집은 마치 새집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스텐샤시문을 볼품없이 여기고 나무문을 그윽하게 여깁니다. 그래도 스텐샤시문으로 바꾸고 흙벽을 타일로 붙이며 집사랑을 하던 분들 손길은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문간에 꽃그릇 얌전하게 놓습니다. 해묵은 '천주교회 교유의 집' 딱지도 갈아 붙이지 않습니다. 스무 해 서른 해를 묵는 동안 조용히 믿음을 지키고, 이러한 믿음 그대로 동네에서 사람사랑을 이어갑니다.


a  골목길 사진 셋.

골목길 사진 셋. ⓒ 최종규


3. 인천 중구 내동. 2010.5.1.13:27 + F16, 1/00초
처음부터 온갖 꽃과 푸성귀를 기르던 골목집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먹고살기에 바쁘니 집을 어떻게 꾸미거나 가꾸겠습니까. 그래도 상추라든지 콩이라든지 고추를 한 포기쯤은 심어서 조금씩 길러 먹는 버릇은 이었습니다. 차츰차츰 나이가 들어 딸아들이 제금이 나며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남아 휑뎅그렁한 집을 지키는 동안, 숱한 들꽃은 골목꽃이 되어 어르신들한테 좋은 말벗이 되고 삶벗이 됩니다. 하늘바라기를 하는 빨랫대와 갖가지 골목꽃은 골목길에 피어나는 고운 빛깔입니다.

a  골목길 사진 넷.

골목길 사진 넷. ⓒ 최종규


4. 인천 동구 송림2동. 2010.5.2.16:04 + F13, 1/80초
인천 골목동네를 느긋하게 마실하다 보면 갖가지 열매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너무 바빠맞은 걸음으로는 열매나무를 알아채지 못할 뿐 아니라 '이런 흔한 나무가 뭔 대수인가?' 하고 지나칩니다. 열매나무에 열매가 맺히면 아직 풋배인데 몰래 따 가는 얌체 이웃이 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 골목동네 골목 배나무에서 싱그러운 열매 하나 얻어 간다면 그리 나쁜 일이 아닙니다. 봄날 봄햇살 듬뿍 받으며 골목 배꽃이 하얗고 소담스레 꽃내음 나눕니다.

a  골목길 사진 다섯.

골목길 사진 다섯. ⓒ 최종규


5. 인천 중구 송월동1가. 2010.5.9.12:26 + F18, 1/100초
골목동네 어린이들이 저희 이웃집 담벼락에 분필로 낙서를 합니다. 그러면 이 집에 사는 어린이는 낙서를 한 아이네 집에 찾아가 그 집 벽돌에 또 분필로 낙서를 합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금세 보송보송 마른 빨래를 헤아리며 이 집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 모습을 그려 봅니다. 드럼세탁기로 빨아서 말리지 않더라도, 손으로 빨아 해바라기를 하며 널어 놓는다 하더라도, 모두 곱게 마르는 빨래요 곱게 새로 입는 옷가지입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은 서로서로 햇볕을 서로한테 알맞춤하게 나누어 가집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골목마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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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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