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하며 좋은 기운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최종규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며 골목사람으로 지내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골목동네를 골목동네답게 사진으로 담을 수 없습니다. 비록 골목동네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지라도 오늘 내 삶을 꾸리는 자리가 골목동네가 아니라 할 때에는 골목동네 오늘날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합니다. 이때에는 나 스스로 어린 날이나 젊은 날 보냈던 '옛이야기 담긴 모습'을 찾아내어 사진으로 담을 뿐입니다. 골목동네 사람이 아닌 사람이 담는 골목동네 사진이란 '구경꾼 사진'에 머물고 마는데, 바로 오늘 하루와 어제 하루와 글피 하루를 이곳에서 지내는 사람들하고 섞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섞인다'고 말했는데, 골목동네 사람들이란 이웃하고 따로 섞이며 지낸다기보다는 그저 똑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예 삶이요 삶을 사진으로 옮긴다고 하겠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이들은 당신들이 사진으로 엮으려는 이야기가 되는 마을로 찾아가 이 마을사람들하고 하나가 되고자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고자 할 때에는 그냥 '골목동네로 나들이를 간 매무새'로는 어림이 없습니다. 골목동네 사람들하고 하나가 되고자 애써야 비로소 겉훑기로나마 골목동네 삶자락을 살짝 엿볼 수 있고, 이렇게 엿본 만큼 사진으로 담습니다.
상업 사진을 하는 이들은 당신들이 돈을 받고 찍어야 하는 모습을 '돈을 준 사람 입맛과 눈높이에 맞추'고자 온힘을 다합니다. 당신들 손맛을 살리면서 돈을 준 사람 입맛을 맞추어야 합니다. 어떠한 그럴싸한 틀거리라든지 아주 기막힌 모습 하나를 찍는다고 될 상업 사진이 아닙니다. 주어진 사진 이야기에 걸맞게 사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찍고자 할 때에는 그저 '더 나은 장비와 더 깊은 경력'으로는 찍을 수 없습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이 나한테 '우리 동네와 우리 집과 우리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생각하면서 사진을 찍는 내 손맛을 살리는 가운데 골목동네 사람들 눈높이와 입맛에 걸맞도록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저는 골목동네를 제 사진감으로 삼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숱한 사람들이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골목동네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동네에 찾아와 사진을 찍는 분들이 선보이는 사진들을 보고 너무 끔찍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은 우리 동네를 구경꾼으로조차 아닌 멋내기와 어설픈 뒤틀기에다가 섣부른 금긋기로 잘라먹고 있었습니다. 골목동네 사람들이 이 사진을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못마땅해 하거나 슬퍼 하거나 씁쓸해 할는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제 사진기는 제 딱 하나뿐인 사진감이었던 '헌책방'에서 '골목길'로 가지를 하나 쳤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살고 있는 골목동네 삶자락 이야기를 골목동네 사람 눈길에 따라 사진으로 엮어 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지난 세 해에 걸쳐 사진찍기만 신나게 했습니다. 이제는 지난 세 해에 걸쳐 무슨 사진을 그토록 신나게 찍어댔는지를 글로 풀어내 보고 싶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제 고향 삶터인 골목동네에서 머잖아 쫓겨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누가 인천시장이 되어 우리 동네 행정을 맡는다 할지라도 '땅값과 집값 싼 골목동네를 통째로 갈아엎어 아파트로 바꾸려는 개발'을 밀어붙이려 하거든요.
ㅎ당이든 ㅁ당이든 이분들이 내놓는 정책이나 공약이란 '아파트 짓기'입니다. 우리 집처럼 보증금 300만 원에 달삯 35만 원 가까스로 내면서 버티는 사람들이 달삯 좀 줄이고 보증금 몇 푼이나 더 얹어 좀더 걱정없고 느긋하게 지내며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데에는 정책이나 공약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식구가 고향 삶터인 인천에서 쫓겨나 어디론가 떠도는 삶이 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앞으로 우리 골목동네뿐 아니라 다른 골목동네에서 사진찍기를 어떻게 하면 골목동네 사람들한테나 '사진을 찍는 당신'한테나 흐뭇하며 애틋하고 살가울까 하는 이야기를 적바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