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가 국회의원 시절이었다던가, 지리산을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같이 한 일행 모두 지리산의 풍광에 취해 감탄을 하면서, 한 사람이 MB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때 MB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어디에선가 그 얘기를 접했을 때 나는 왠지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맛보았다. 확실한 공포감이었고, 그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리라는 예감이기도 했다.
MB에게는 지리산도 그 무엇도, 어쩌면 대자연 모두가 '개발'의 대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왕왕 들었다. 지리산의 풍광도, 웅혼한 산이 안겨주는 정기(精氣)도 그에게는 무의미한 것일지 몰랐다.
그에게는 대자연의 순결한 숨결과 아름다움보다는 마구 허물고 난도질을 해서 인위적으로 꾸미는 그 가공의 자연이 더 가치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 세월 토건업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관성 속에서만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데다가, 알게 모르게 불도저 같은 성격도 형성되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서 '대운하' 공약을 내걸었을 때부터 예감 같은 공포감을 가졌다. 대운하 공약을 철회하고 '4대강 사업'으로 포장을 바꾸었을 때는 절박한 위기감을 갖기 시작했다. 수수만년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강들이, 우리 민족의 장대한 역사와 삶의 숨결과 수만 가지 사연들이 어려 있는 산하가 송두리째 마구 파헤쳐지고 까뭉개지고 난도질당하리라는 두려움 속에서 흉몽을 꾸기도 했다.
많이 기도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명박 장로가 그런 무모하고도 무참한 일을 벌이지 않기를 하느님께 수없이 빌었다. 그러나 그 기도도 보람 없이 조물주의 숨결이 보존되는 대자연을 포악하게 유린하는 대참상이 4대강 곳곳에서 벌어지게 되고 말았다.
그 엄청난 일이 그토록 빠르게, 성급히 진행될 줄은 몰랐다. 국민에 대한, 국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차릴 줄로 알았다. 환경영향평가 등 치밀한 사전 타당성 조사가 병행되고,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 정도는 밟게 되기를 기대했다. 강의 특성을 모조리 죽이고, 4대강과 그 유역을 통째로 변형시키는 야만적 최대 규모의 토목 공사를 시행함에 있어, 그것에 따라야 할 최소한의 양식과 분별은 한 구석에나마 자리하기를 바란 것도 다 무위가 되고 말았다.
MB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쓰키야마 아키히로'라는 일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원래 호적 이름이 '상정'이었으나 명박(明博)으로 바꿔 올렸다고 한다. 그에게는 우리나라의 강변 추억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우리나라의 은빛모래톱 강변에서 대자연의 순결한 아름다움을 체감하며 거기에서 창조주의 섭리와 창조 질서를 깊이 체득해 본 경험이 거의 없지 싶다.
그런 것이 있다면, 또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강을 살린다는 미명으로 그토록 철저하게 야만적인 방식으로 대자연을 유린하는 행위를 차마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언어 조작'에 집착한다. 4대강 사업은 '죽어 있는 강'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고 한다. 그런 발상부터 오만방자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의 강이 언제 죽어 있었나? 죽어 있었다는 것을 무슨 증거로 설명할 수 있나? 부분적으로 오염이 된 곳은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 결코 죽어 있지는 않았다. 강은 지속적인 흐름이 있는 한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강들은 언제나 유유히 흐르고 있었고, 강의 숨결과 흐름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여울들이 있었다. 강바닥에는 무수한 샘들이 있었고, 흐르는 물에서만 사는 갖가지 물고기들과 패류와 미생물들이 조물주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강바닥의 조약돌, 강변의 은빛모래톱, 강물과 밀어를 나누는 기암괴석들과 역사 문화 유적들, 울창한 수림과 갖가지 희귀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늪지들이 모두 강이 살아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강은 그렇게 자신과 더불어 있는 그 모든 것들과 어울리는 자연 질서 속에서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해내고 또 재창조해 가는 것이었다.
4대강 사업은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거짓과 억지를 느끼게 한다. 옛날에는 강의 범람과 물난리라는 것이 있었지만, 현대로 오면서 강의 범람 때문에 생긴 물난리는 거의 없었다. 1950년대 '사라호' 태풍을 겪은 이후로 우리나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수리시설을 만들고 정비하며 치수를 잘해 왔다. 태풍 때 홍수 사태를 겪은 것은 대개 지류 하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었다.
물 부족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도 '눈 가리고 야옹하는' 소리다. 장차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가 된다는 말을 그럴 듯하게 하지만 구체적인 연구보고서는 없다. 언제부터 왜 어떤 연유로 물 부족 현상을 맞게 된다는 확실한 논증이 없는 가운데 그런 말이 통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확실한 논증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나라도 곧 물 부족 국가가 된다'는 말 자체에만 현혹되는 현상을 보인다.
설령 물 부족을 겪게 되더라도 수많은 댐 성격의 보 안에 갇혀서 흐르지 않거나 흐름이 무디어져서 생명력을 잃어버린 물, 갖가지 위락시설들과 시멘트 구조물들에 노상 시달림을 받는 강물로는 식수 사용도 수월치가 않을 것이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것도 조악하긴 마찬가지다. 강을 난폭하게 변형시키면 필연적으로 수많은 위락시설들이 생겨나게 된다. 또 '강이 아닌 강'을 유지하기 위한 시설들과 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의 고용 효과는 가져오겠지만, 진정한 일자리이기보다는 '억지 춘향이 노릇'일 게 뻔하다.
어떤 이는 말한다. "일자리 창출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필경 강 아닌 강을 다시 강으로 되돌리는 사업을 하게 될 터인즉, 그러면 일자리 창출은 계속되는 셈일 것이다." 뼈아픈 농담이다. 파괴한 자연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이 과연 가능하며, 얼마가 더욱 기가 막힌 일일 것인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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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들을 변형시키는 사업이 그대로 진행되어 강 아닌 강에 수많은 호수 같은 것들이 생겨나고, 그 위를 호화로운 유람선들이 떠다니고, 강변에는 온갖 위락 시설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또 양변에 길고 긴 자전거 길이 생겨나서 사람들이 저마다 자전거라도 타게 된다면, 일단은 많은 사람들이 최면에 빠져들 것이다.
일시적인 집단최면 현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문명을 한껏 누리고 즐기는 가운데서 흠뻑 최면에 빠져들며 비인간화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자연을 잃어버린 채 인위적이고 위락적인 공간 안에서 산다는 것은 상당 부분 비인간화의 길을 의미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최면과 환각을 보며 인간의 길과 자연 회복을 갈망하는 사람들 역시 비례적으로 많아질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 안에는 '그리움'이라는 게 있다. 그리움의 정서 안에는 복원 본능도 있다. 그것이 지혜를 일깨우며 잘 작동된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지금 구미 각국과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강과 하천의 댐과 보를 허물고 자연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일'을 따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훗날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오늘 당장 대자연이 무참하게 유린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이미 기가 막힌 참상들이 벌어져 있지만 이제라도 그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
국민 대다수는 4대강 사업의 '이유'를 모른다. 정부가 내세우는 이유들을 공감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한다. 청계천 사업에 도취된 MB의 과잉적인 욕망, 자신의 이상한 업적에 대한 집착 정도는 이해를 한다. 과거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도 반대가 많았다는 40년 전의 기억을 금과옥조로 삼고 박정희를 본받으려는 MB의 열렬한 의지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40년 전도 아니고, 40년 전의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오늘의 4대강 사업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교통문제 등 현실적인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건설'이 결코 아니다. 대자연을 대대적으로 훼손하여 강 아닌 강을 만들고, 그리하여 강들을 죽이는 일일 뿐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지만 개인의 욕망과 아집으로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다. 국민 합의도 구하지 않고, 민주적 절차도 밟지 않고 독단으로 그런 일을 하면서 '홍보 부족/국민 무지'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모든 게 '함부로'이다. 마치 4대강이 개인 소유이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MB는 자신의 한계도 깨달아야 하고, 일부 언론에 순치되는 국민들만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어나는 국민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현재의 권력으로 계속 밀고 나가 임기 내에 4대강 사업을 마무리한다 하더라도, 그럴수록 부작용은 엄청난 규모로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사람들은 도도한 강물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 대신 "정의가 강물처럼"이라는 말의 뜻을 더욱 곱씹게 될 것이고, 비록 강변의 은빛모래톱은 사라졌을지라도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뒷문 밖에는/갈잎의 노래/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고 노래한 소월의 시는 더욱 심금을 울리게 될 것이다.
소월의 노래는 결코 전설로만 남지 않고, 그리움의 파장을 사람들의 유전자 안에서 더욱 힘껏 용솟음치게 할 것이며….
2010.05.17 14:55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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