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군이 개최한 ‘제1회 적벽사진 전국 촬영대회’ 개회식 장면(1981년 5월24일). 아내와의 인연이 시작된 전남 화순은 지금도 고향처럼 정겹게 느껴집니다.
조종안
필자가 활동하던 아마추어 사진 모임은 1968년 10월 7일 회원 9명이 군산에 인물과 거리 사진의 길목을 열어준 고(故) 채원석 선생님을 고문으로 추대하고 출범했으며 매년 사진전시회를 개최해 오고 있었다. 다음은 1981년 5월 월례회에서 어느 회원의 제의.
"전남 화순군에 풍광이 뛰어난 '적벽'이라는 곳이 있는데 댐 건설이 완공되면 주변 마을이 물에 잠긴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적벽'의 비경을 다시는 못 볼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화순군에서 '제1회 적벽사진 촬영대회'를 24일에 개최한다고 하니까 참가했으면 좋겠습니다." 한 회원의 제의는 많은 사람의 흥미를 끌었고, 별다른 의견 개진 없이 받아들여져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2010년 5월24일은 아내와 처음 인연이 시작되어 29년째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자가용이 귀하던 시절이어서 버스를 이용했다. 자리가 비어 타 사진 모임 회원들도 동승해서 다녀왔는데, 그 속에 지금의 아내도 끼어 있었던 것. 그런데 안타깝게도 풋사과처럼 새콤달콤할 것 같은 첫 만남의 추억은 빛 들어간 필름을 현상해놓은 것처럼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고, 회원들끼리 다투었던 아름답지 못한 추억만 쓴웃음을 짓게 한다.
아름답지 못한 추억이란 모임을 원만하게 이끌어가야 할 회장이 채 선생님이 승차하지 않은 것을 뻔히 알면서도 버스를 출발시킨 데서 시작되었다. 행사 때마다 회원들이 시간을 지키지 않으니까 "오늘은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출발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던 것.
당시 환갑을 갓 넘긴 채 선생님은 촬영대회가 끝나고 서울에서 내려온 (사) 한국사진작가협회 임원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늦은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버스를 출발시키기에 "이런 경우는 없다. 버스를 세워라!"라며 애걸하고 따졌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알력다툼이 있었던 모양인데 내막을 모르는 필자는 몸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해서 '이대로는 그냥 갈 수 없으니 내려야겠습니다!'하고는 버스에서 내려 흙먼지가 날리는 길에 서 있는데 선생님이 터덜터덜 걸어오셨다. 택시를 타려고 나오는데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이 내리니까 여기저기에서 쑤군대며 내려달라는 사람이 나타났고, 결국 버스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서 있다고 했다.
속이 무척 상했던 채 선생님이 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 마무리 되었는데, 다른 사진모임 회원이었던 아내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대화도 없었고, 관심을 두지 않아서인지 훗날 아내가 얘기해서야 알았다.
두 번째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