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박물관 계남정미소가 6월5일부터 사진가 이용원씨를 초빙, '잃어버린 장날의 축제'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연다. 이번에 전시되는 사진들은 1990년대를 초·중·후반으로 나눠 선별한 것이다.
"전라북도 지방 장터에서 그래도 옛 맛이 나는 곳은 남원장을 으뜸으로 치고 장수, 순창, 오수, 임실, 진안장 등이 지금도 그리움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전라남도에서는 구례, 곡성, 담양장 등이 그래도 서로가 웃으며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져 갖가지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아보기 좋습니다. 충청남도에서는 금산장이 으뜸이고, 부여장도 이곳저곳 볼거리가 많습니다. 옛날부터 장터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가 정을 나누며 반가운 얼굴로 정보를 교환하고 오랜만에 만나 인사도 나누는 장으로 기억되고, 훈훈한 정이 깃든 우리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장날에는 늦장을 부리는 법이 없다. 암탉 몇 마리가 낳은 계란을 짚으로 가지런히 묶고, 참깨도 두어 되 보따리에 싸고, 농사지은 밀로 국수나 좀 빼먹게 서너 말 자루에 담아서 영자네 소달구지에 실려 보낸다.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른 할머니는 깨끗이 다듬은 무명옷을 차려입고 새벽밥을 재촉해먹고 장 나들이를 나선다.
마을 어귀에서 만나는 순자네 아버지, 동수네 어머니, 용식이 할아버지도 풀을 빳빳이 해서 다린 옥양목 자락에서 바람 소리를 내며 길을 재촉한다. 이들은 모두 사뭇 상기된 표정들이다. 가지고나간 물건들은 주인을 잘 만나 좋은 값에 빨리 처분하면 자식들 고무신이나 한 켤레 사고 짭짜름한 간 고등어나 한 손 사들고 돌아오겠지만, 장 나들이는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상거래 장소만이 아니었다.
일 년을 가도 장날 아니고는 이런 눈 호강, 마음 호강하는 날이 없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축제였다.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만이 축제가 아니다. 직거래장터, 우시장의 흥청거림, 오랜만에 만나는 타동네 사람들과 그들의 소식, 장꾼들의 치열하면서도 훈훈한 인심, 심지어는 야바위꾼들의 수작까지 옛 장날은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유일한 일탈의 장소였다.
"그러나 요즘 장터는 생존 경쟁의 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언행에 신경 쓰지 않으면 인정사정, 위아래도 없이 낯을 붉혀야 하는 현대판 시장 나들이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시골 장터에 가면 장터 아저씨들이 막걸리를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는 것을 볼 때면 옛날의 훈훈함이 느껴져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또 안타까운 것은 오랫동안 장터를 찾아 다녀보니 얼마 전까지 보였던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그저 작은 일에도 허탕하게 웃어 주셨던 모습이 아쉬워지기도 합니다. 이럴 땐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옮기면서, 장터를 집 삼아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 마음속 깊이 건강을 기원해 보기도 합니다."
전시장에서는 이용원씨의 작품 외에도 사진아카이브 연구소가 제공한 20세기 초 시장의 모습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진안군 마령면에 위치한 계남정미소에서 7월18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5.27 18:15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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