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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전쟁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제주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제3차 '한·일·중 정상회의' 중에 한 말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북한과 전쟁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북한에 대해 유례없이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많은 국민에게 섬뜩한 공포감을 주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몽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대통령이 '우리'라는 말을 썼지만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말을 과거에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했다면(할 리 만무하지만) 조중동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오늘 한껏 전쟁 분위기를 부추기며 호전적인 논조로 일관하는 조중동이 전임 대통령 시절에는 과연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정신상태가 의심된다는 말까지 동원하며 생난리를 치지 않았을까.
군대도 가지 않은 이 대통령이 전쟁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입에 담는다는 생각을 했는데, 인터넷 상에서는 즉각 이런 야유가 나왔다. "군대 가는 건 두렵지 않지만 가기는 싫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이라는 합조단의 발표 이후 급속도로 전쟁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전쟁 분위기는 그냥 분위기일지 모른다. 혹 국지전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서도, 전면전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전쟁 분위기를 고의적으로 유발하는 듯한 측면도 있다.
오늘의 전면전은 과거의 전쟁들과는 다르다. 이기고 지는 전쟁이 아니라 남북한이 공멸할 수밖에 없는 차원이다. 그 사실이 전면전을 효과적으로 억제해 준다는 '믿음' 속에서 지방선거를 의식한 이른바 '북풍 몰이'를 위해 전쟁 분위기를 유발하리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일정한 톱니바퀴 형태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뜻밖의 돌발 상황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언제 어떤 형태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 상황이 인간의 삶 안에는 늘 잠복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같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생사의 협곡'을 경험한 사람은 전쟁이라는 말만 들어도 알게 모르게 긴장이 되고 오금이 저린다. 군대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전쟁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는 현상 속에서 자괴감도 겪는다.
자기들이 직접 전쟁을 할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저리 쉽게 전쟁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더불어 병역 면제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관련 합조단 발표 이후(노무현 전 대통령의 1주기 다음날인 5월 2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쟁 분위기를 유발하는 담화문을 발표한 일이 얼마나 부조화적인 형태인가를 자꾸 떠올리게 된다.
전쟁 분위기를 유발하는 데에는 조중동이 단연 앞장을 선다. 또 '뉴라이트'를 포함하여 여러 보수단체에 속한 이들이 전쟁은 필연이고 당연지사인 것처럼 열기를 고조시킨다. 그런 보수단체의 대다수를 점하는 노인들을 보노라면 나도 어언 60대 시절로 접어든 처지에서 야릇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막상 전쟁이 나면 노인들이 전선에 나아가 총 들고 싸울 것도 아니다. 젊은이들이 희생을 치러야 한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가져야 하고, 그들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든지 평화의 기틀을 마련하여 '생명의 유산'을 물려줄 생각을 해야지, 자신들의 낡은 이데올로기 관습과 과거 경험만을 가지고 전쟁 분위기를 만들어 '반생명적이고 반 평화적인 유산'을 물려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미래는 노인들의 것이 아니고 후손들의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게 나이 먹은 이들의 온당한 자세이며, '어른'이 되는 길이다.
최근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서 70대 노인이신 홍지득 님이 쓰신 '70대 민초가 천안함 전쟁장사꾼들에게'라는 기사를 읽었다. '해외로 튈 능력 없는 나는 '전쟁' 말만 들어도 소름 끼친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그 기사는 <오마이뉴스> 메인 면 톱에 올라 독자들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도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 글을 통해 '어른'의 의미, '노인과 어른의 차이'를 절감할 수 있었다.
지난달 29일 오후 아내와 함께 공주를 다녀왔다. 공산성 안의 영은사라는 사찰에서 거행된 4대 종단(천주교·불교·원불교·개신교) 연대 '금강 지키기' 행사에 참석했다. 마구 난자질 당하고 있는 금강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서 절절한 아픔을 삼켜야 했다.
공주에 간 김에 금강변의 처가에도 들러 올해 81세이신 장인어른께 '보수단체 노인'들에 대한 말씀을 드렸다. "노인들이 후손들에게 전쟁 분위기를 유산으로 물려주는 게 옳습니까, 평화의 기틀을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옳습니까?"라는 질문을 드려보았다.
장인어른은 "잃어버린 10년을 말하는 사람들이 시대를 30년 전으로 되돌려놓은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또 개신교 신자이신 장인어른은 "이명박 장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생명적이고 평화적인 길로 갈 줄 알았다. 저렇게 4대강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대자연을 마구 유린하고, 지난 10여 년 동안 공들여 닦아온 평화의 기틀을 철저히 깨버리고 전쟁 분위기까지 유발할 줄은 몰랐다"며 혼란한 심경을 토로했다.
금강의 참담한 모습에 큰 슬픔을 안은 상태에서도 80대 노인이신 장인어른이 단순한 노인이 아닌 '어른'이심을 확인하는 기쁨을 안고 밤늦게 피곤을 잊으며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희망'의 의미를 되새기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6월 3일치 '태안칼럼' 난에도 송고된 글입니다.
2010.06.01 15:07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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