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6.03 17:03수정 2010.06.0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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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 계시는 노친이 몸 상태가 좋아져서 지난 3월 26일 처음으로 다시 걷기 시작하고, 5월 9일 드디어 소변 주머니를 떼어내고 첫 외출을 한 날부터 내 머리에는 '6월 2일의 계획'이 꽉 차게 되었다.
바로 '2010지방선거'가 실행되는 날 어머니를 요양병원에서 모시고 나와 투표장으로 가는 일이었다. 노친께는 어쩌면 마지막 선거 참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어머니를 꼭 모시고 나와 투표를 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며, 계속 이런 식으로 몸 상태가 좋아지시면 능히 투표장에 모시고 갈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노친께 일찌감치 귀띔을 해드려서, 노친도 6월 2일을 기다리시는 눈치였다. 그런 노친께 도지사 후보들과 교육감, 군수, 도의원, 군의원, 교육위원 출마자들에 관한 얘기를 해드렸다. 한꺼번에 네 장씩, 도합 여덟 장의 투표지를 받아 기표를 하는 방법도 설명을 드렸다. 노친이 "좀 복잡허겄는디…. 누굴 찍어야 헐지두 알려 줘"하셔서 그건 투표 날 알려 드리기로 했다.
드디어 6월 2일, 투표 날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오전 9시 20분쯤 요양병원을 갔다. 노친을 모시고 일단 집으로 온 다음 옷을 갈아입혀 드리고, 먼저 성당을 갔다. 매주 수요일에는 오전 10시에 미사가 있기에, 미사부터 지내고 투표장에 가기로 했다.
노친이 다시 성당에 가시기는 지난해 10월 이후 무려 8개월 만이었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한 달, 태안의 서해안요양병원에서 7개월을 지내시는 동안 한 번도 미사참례를 하지 못했다.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병실에서 '봉성체'를 영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나는 노친을 성당으로 모시고 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 오늘 미사 지내시면서, 다시 성당으로 불러주시고 미사를 지내도록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허는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허세요. 그리고 오늘은 선거 날이니께, 많은 국민들이 꼭 투표에 참가허도록 하느님께 빌어 주세요. 높은 투표율이 무엇보다도 중요헌 일이에요."
"오늘 미사가 있는 날이어서 좋구먼 그려. 미사부터 지내구 나서 투표를 허는 것두 뜻있는 일이구…."
고개를 끄덕이는 노친은 적이 진지한 표정이기도 했다.
나는 노친이 갑자기 화장실을 가야 할 상황이 생길지도 몰라 성당의 뒤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미사를 집전하시는 보좌 신부님이 '영성체 후 기도' 다음에 공지사항을 발표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지 회장님 어머니께서 건강이 좋아지셔서 퇴원을 하셨는지 오늘 성당에 오셨습니다. 건강해지신 몸으로 오랜만에 성당에 오신 할머니께 축하인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미사 후 노친은 많은 신자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았다. 나는 형제자매들께 노친이 퇴원을 한 건 아니고, 오늘 지방선거 투표 날이라 투표를 하기 위해서 외출한 것임을 말해 주었다. 그만큼 투표 참여가 중요하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기도 했다.
이윽고 우리 가족은 투표장으로 향했다. 태안중학교 생활관이었다. 투표를 하려는 이들이 제법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그것을 보고 아내는 환성을 질렀다.
"전과는 다른 것 같아요. 투표율이 높아질 것 같아요."
그리고 아내는 먼저 가서 제법 긴 줄의 맨 뒤에 섰다. 그리고 어머니를 부축하여 아내가 서 있는 곳으로 갔다. 곧 우리 가족 차례가 되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인장을 찍은 다음 투표용지를 받아 들고 각기 기표소로 들어갔다. 나는 잠시 기표소 앞에 서서 노친이 기표소 안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보조기구를 이용하지 않고도, 또 내가 부축해 드리지 않아도 문제없이 기표소로 들어가시는 노친의 모습을 보며 입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뇌었다.
그리고 노친의 투표에 부디 좋은 성과가 있기를 빌었다. 어쩌면 노친께는 마지막 투표일지도 몰랐다. 2년 후 대통령 선거 때도 노친이 투표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어쩌면 마지막 투표일지도 모른다는 괜한 생각이 들면서 그에 따라 노친의 투표에 제발 보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노친이 기표소 안에 머무르는 시간은 누구보다도 길었다. 기표소에서 나와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고 나서 노친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실수허지 말어야 허니께, 시간이 좀 걸리더라구. 이름 찾느리고 좀 애를 먹었지먼 실수 읎이 잘 찍었어."
"잘 하셨어요, 어머님. 어머님이 찍으신 후보들이 다 당선될 거예요."
노친을 부축해 드리는 아내도 기쁜 표정이었다.
우리 가족은 투표를 마친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갓진 곳의 음식점을 찾았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는 노친께 이런 말을 했다.
"이달 말쯤 퇴원을 하시고요, 마음 편케 건강허게 잘 사시다가 2년 후 대통령 선거 때도 오늘같이 이렇게 같이 투표를 허기루 헤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확실허게 애국을 헐 수 있는 것은 오늘처럼 투표를 허는 거예요. 그게 가장 큰 애국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았어."
노친은 또 한번 밝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노친의 웃음지은 얼굴을 보며, 노친 덕분에 내가 오늘 곱빼기로 애국을 한 셈일 거라는 생각을 슬며시 해보았다. 절로 내 얼굴에 웃음이 그려졌다.
2010.06.03 17:03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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