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시] 먼 기다림

매일 매일 보따리를 싸는 어머니

등록 2010.06.08 16:40수정 2010.06.0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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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밖을 살핀다 ⓒ 전희식

▲ 어머니 밖을 살핀다 ⓒ 전희식

기다리는 것이 사람일까

과거일까

미래일까

목을 멀리 빼고 골목을 바라보는

눈길

세월만이 속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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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다림 ⓒ 전희식

▲ 어머니 기다림 ⓒ 전희식

 

끝내 이루어지지 못할

염원 

끝끝내 오지 못할 과거

머나먼 기다림

뒷걸음질 치는

앞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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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보따리들 ⓒ 전희식

▲ 어머니 보따리들 ⓒ 전희식

이 많은 보따리들

사연 덩어리들

몸뚱이 하나 의탁 할

도구들

무겁고 무거운 업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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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보따리들. ⓒ 전희식

▲ 어머니 보따리들. ⓒ 전희식

 

어머니 보.따.리.

 

가로 막을 수 없는

굳센 의지

둘둘 뭉쳐 넣은 맹렬한

기다림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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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약을 꺼낸다 ⓒ 전희식

▲ 어머니 약을 꺼낸다 ⓒ 전희식

 

비밀 하나를 연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꺼내는

새하얀 비닐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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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 속의 비닐봉지를 연다 ⓒ 전희식

▲ 어머니 그 속의 비닐봉지를 연다 ⓒ 전희식

 

새하얀 비닐봉지 속에서

비밀이 풀려 나온다

어렴풋이 알듯 말듯

한 순간 꿈인듯

비닐 봉지 속에서 비치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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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파우다 ⓒ 전희식

▲ 어머니 파우다 ⓒ 전희식

 

파우다.

4년 전 내가 사다 드렸던 파우다.

아기들 속 살에나 바르는 파우다를

팔십 중반에 사타구니에 바르며

울던 바로 그것.

세기의 명약이 되어

어머니의 재산목록 1호로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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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길 나선다 ⓒ 전희식

▲ 어머니 길 나선다 ⓒ 전희식

 

휠체어 두 바퀴에 

기다림을 싣고

과거를 싣고

어지러운 나이를 싣고

출발했다

무릎위에 차곡차곡 포개 싣고

길 비켜라

보따리 대장 나가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6.08 16:40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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