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드보이'의 촬영지를 찾아서

[골목이야기1] 멈춰 선 시간, 부산 '상해거리'에서 영주동 언덕 까지

등록 2010.06.14 10:30수정 2010.06.1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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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상해문 부산 초량동에 위치한 상해거리 입구에 위치

상해문 부산 초량동에 위치한 상해거리 입구에 위치 ⓒ 조을영


해상 물류의 통로! 영화의 도시! 바로 부산을 수식하는 단어이다. 이제는 무역 도시만이 아닌 세계적인 영화 도시 부산에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촬영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부산 역 앞의 초량동 '상해거리' 를 들 수 있다.

이곳은 무역 도시 부산의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인 동시에 영화 <올드 보이>에 나왔던 만두 가게가 있는 영화의 거리이기도 하다. 화려했던 부산의 역사를 묵묵히 안고, 이제는 영화의 거리로 거듭난 '상해거리'와 그 주변을 산책하며 복고와 첨단이 공존하는 도시, 부산의 모습을 만끽해 보자.


부산에 중국인이 본격적으로 거주하게 된 시기는 1884년 8월경 청나라 영사관 즉, '청관(淸館')이 초량동에 처음 설치된 이후부터였다. 배를 타고 초량동 부두에 내린 중국인들은 상해에서 가져온 화려한 비단, 포목, 꽃신, 거울, 화장품 등을 팔았고, 그때부터 이곳은 눈부시고 이국적인 중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거리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청관거리는 구한말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1882년 임오군란 후부터 1894년 청일전쟁 발발 전까지 이곳에는 중국인들이 넘쳐났으며, 활발한 물품 판매와 구입의 공간으로서 기능했다. 하지만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한 직후, 일본인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고, 일제 해방 이후에 남한에 미군이 주둔하면서는 텍사스 유흥가로 변모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러시아 상인들이 보따리에 물품을 싸들고 와서 팔기도 했다. 이렇듯 역사와 함께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담으며 변모해온 곳이지만, 화려한 비단을 팔던 '왕서방' 거리로 이곳을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다.

이에 1993년 부산과 상해간 자매결연이 체결되고, 1998년 부산에는 상해거리를, 중국 상해에는 부산거리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1999년 초량동 청관거리 일대를 '상해거리'로 명명한 뒤 도로확장 및 상해문 건립, 야간 조명시설 등을 설치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게다가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 상해거리의 매력 요소 중 하나가 영화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a 상해문2 부산 역 맞은 편에 위치

상해문2 부산 역 맞은 편에 위치 ⓒ 조을영


그간 이곳에서 촬영된 영화로는 최민식, 유지태 주연의 <올드 보이>, 류승범 황정민 주연의 <사생결단>, 김명민, 하지원 주연의 <내 사랑 내 곁에> 등이 있다. 영화를 본 후 국내외 관광객들은 막연한 호기심을 안고 '상해거리'로 몰려들고 있는데, 그 중 영화<올드 보이>에서 최민식이 만두를 먹던 중국 음식점 '장성춘'은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며 영화 속 주인공의 심정으로 만두를 먹고자 하는 이들로 끊이지 않는다.


15년간 만두만 먹으며 이유도 모른 채 감금당했던 주인공이 그 만두의 맛을 찾아 헤매던 곳으로 나왔던 장소이기도 하다. 맛은 소박한 보통 중국집의 일반적인 만두와 비슷하지만 영화에서 최민식이 앉았던 자리를 그대로 보존해 놓고, 사인을 걸어놓은 폼새가 제법 분위기를 살린다.

일반적으로 '상해거리'의 중국 음식점들은 모두들 비슷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국적인 인테리어와 소박하고 색다른 분위기는 평범한 음식을 색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게다가 음식 맛도 제법 모자라진 않다.


노릇노릇한 만두를 한 입 베어 물면 테두리는 바삭하고 속살의 뜨거운 육즙이 흥건하게 혀를 적시며 천천히 고기와 채소의 향이 입안에서 퍼져 나간다. 약간 눅진한 중국 향신료 냄새가 코로 넘어올 즈음 양파로 입안을 가셔주면 산뜻해진 입안에 다시 침이 고여 젓가락질을 계속하게 된다.

특히 '상해거리' 중국집의 공통점이라면, 곁들여 나오는 아삭한 오이 간장 무침을 빼놓을 수 없다. 길고 두툼하게 어슷 썬 오이에 마늘과 간장을 섞은 소스를 얹어주는 것인데, 텁텁한 면요리를 먹다가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하고 상큼한 식감에 중국 음식 특유의 기름기도 싹 가셔지는 기분이다.

a 상해거리 중국 음식점 상가 .

상해거리 중국 음식점 상가 . ⓒ 조을영


식사를 마치고 주민센터 방향으로 가다보면 이색적인 건물이 나타난다. 알록달록한 색감을 자랑하는 화교(華僑)유치원이다. 1960년대만 해도 이 거리에는 화교들이 대단위로 모여 살았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서울과 인천에서 피난 온 화교들이 부산으로 모여들면서, 한때 이 근방 초·중·고교에는 화교 학생 수만 3천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수는 10여 가구에 불과하다.

화교 유치원 위로 '40계단'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일대의 판자촌 주민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던 길목으로, 피난살이의 고달픔이 배어 있는 향수어린 공간이다. 이에 부산시에서는 1993년에 계단을 정비하고 기념비를 세우며 매년 9~10월경 '40계단 축제'를 개최한다. '머리에 물동이 이고 걷기', '주먹밥 먹기' 등의 한국 전쟁 시기의 어려움과 소소한 일상을 간접 체험해 보는 행사를 통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이색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십 계단을 지나 언덕길을 오르면 영주동의 이색 풍광이 펼쳐진다. 산 위에 온통 복고풍 집들로 꽉 찬 이곳에서는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하다. 낡고 허름한 집들이 연출하는 장관은 이 언덕에서 촬영될 또 다른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a 영주동 언덕의 오래된 아파트와 주택 .

영주동 언덕의 오래된 아파트와 주택 . ⓒ 조을영


또한 족히 30, 40년은 넘었을 것만 같은 낡은 아파트가 산위에 늘어선 풍경, 이국적인 스타일의 주택가에서 참신한 건축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40대 이상 연령층은 잃어 버린 유년기의 동네 풍경을 떠올릴 수도 있다. 소타기 말타기를 하는 꼬마들 틈에서 저녁 먹으러 오라며 엄마가 부르는 소리, 저 멀리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금방한 밥 냄새가 구수하게 진동하는, 그립고도 그리운 어린 시절, 저녁 무렵의 풍경이 밀려오는 느낌에 가슴이 아려올 수도 있다.

a 영주동 언덕 .

영주동 언덕 . ⓒ 조을영


어려웠던 시절, 이곳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의 발길로 닳아있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다 보면 저 멀리 부두에서 뱃고동이 천천히 울려 퍼지고, 한진해운과 대한항공의 듬직한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과거와 현재에도 변함없이 미래를 갈구하는 도시, 부산! 어려웠던 지난날의 가난을 딛고 힘차게 일어섰기에 이 도시의 창대한 꿈은 실현 가능했고, 이제는 더 크나큰 미래로 날갯짓하고 있는 부산이 든든하기만 하다.

a 영주동 언덕에서 본 주택가와 바다 .

영주동 언덕에서 본 주택가와 바다 . ⓒ 조을영

#올드보이 #부산 영주동 #부산 상해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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