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살랑' '살랑'... 죽(竹)여줘요

'접선' 만드는 부채 장인 전남 담양 김대석씨

등록 2010.06.14 18:06수정 2010.06.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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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예쁜 임도 곁에 두고 싶지 않는 더위다. 오늘처럼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후텁지근할 땐 어릴 적 우물가에 엎드려 끼얹었던 물 한 바가지 생각이 절로 난다. 등목은 옛날 최고의 피서법이었다. 등목 이후 부채 한 자루 손에 들면 더위는 저만치 사라지고 없었다.

 

지금은 선풍기에다 에어컨까지 다 있어 부채가 그다지 필요 없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무더위 속에서도 전통의 부채를 만들며 비지땀을 쏟는 사람이 있다. '대나무고을' 담양에서 부채 만드는 일에 여념이 없는 김대석(62·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만성리) 씨가 그 주인공이다.

 

부채는 둥근 모양의 원선(圓扇)과 손에 쥐었다 폈다 하는 접선(摺扇)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김씨는 접선(일명 합죽선)을 만드는 장인이다.

 

그가 만드는 부채는 연간 7000여개. 대부분 주문을 받아 만드는데 일반적인 접선이 4000여개, 무용이나 줄을 탈 때 쓰는 무용선이 3000여개 등이다. 무용선은 개당 1만원씩, 접선의 값은 몇 천원에서부터 수십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a  전남무형문화재 김대석 씨가 만든 부채(접선)들. 장인의 혼이 깃든 것들이다.

전남무형문화재 김대석 씨가 만든 부채(접선)들. 장인의 혼이 깃든 것들이다. ⓒ 이돈삼

전남무형문화재 김대석 씨가 만든 부채(접선)들. 장인의 혼이 깃든 것들이다. ⓒ 이돈삼

a  김대석 씨가 만든 접선(부채)들. 품격 있는 바람을 선사한다.

김대석 씨가 만든 접선(부채)들. 품격 있는 바람을 선사한다. ⓒ 이돈삼

김대석 씨가 만든 접선(부채)들. 품격 있는 바람을 선사한다. ⓒ 이돈삼

"중학교 때부터 부채를 만들었어요. 학교 갔다 오면 집안일을 도우면서 부채를 만드는 게 일이었죠. 본격적인 부채 만들기는 학교를 졸업하고부터 시작했고요."

 

이렇게 시작한 그의 부채 만들기 인생이 벌써 50년 다 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처럼 곧게 평생 한 길만을 달려온 장인이다. 최근 전라남도무형문화재 제48호 선자장(扇子匠)과 제48-1호 접선장(摺扇匠)으로 인정됐다.

 

"접선은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좋은 거예요. 무조건 뻣뻣해서도 안 되고, 굽실굽실 살랑대기만 해서도 안 돼요. 그걸 조화시키는 게 기술이죠."

 

a  김대석 씨가 댓살에 종이를 붙이며 접선(부채)를 완성하고 있다.

김대석 씨가 댓살에 종이를 붙이며 접선(부채)를 완성하고 있다. ⓒ 이돈삼

김대석 씨가 댓살에 종이를 붙이며 접선(부채)를 완성하고 있다. ⓒ 이돈삼

접선을 만드는 일은 보통의 생각과 달리 공력이 많이 들어간다. 접선은 댓살을 접었다 폈다 하는 부채를 일컫는다.

 

그에 따르면 접선 만들기는 담양산 왕대를 골라 자르고 쪼개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바탕이 될 종이를 만들고 인두로 그림을 그리는 낙죽을 한 다음 뚫고 조이고 내리고 자르고 접고 바르고 수십 단계를 거친다. 이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한다.

 

이 공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댓살 깎기.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여기서 결정된다. 이렇게 깎은 부챗살을 겹쳐 민어의 부레를 끓여 쑨 풀로 붙인다. 여기에 무늬를 그려 넣고 한지를 붙여 그림을 새기면 멋스러운 합죽선이 탄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채를 만들어 외지로 갖고 다니며 팔아본 적이 없습니다. 주문 받아서 내 집에서 만들고 여기서 다 소화를 시켰죠. 부채 만들어 온 것을 한 순간도 후회한 적도 없고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오늘도 묵묵히 앉아 거친 손끝을 놀리며 접선을 만드는 그가 존경스런 이유다. 그가 만든 접선에선 전통의 향기가 진하게 묻어난다. 접선 하나하나에 그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다.

 

a  전남무형문화재 김대석 씨가 만든 접선. 전통의 향기가 묻어난다.

전남무형문화재 김대석 씨가 만든 접선. 전통의 향기가 묻어난다. ⓒ 이돈삼

전남무형문화재 김대석 씨가 만든 접선. 전통의 향기가 묻어난다. ⓒ 이돈삼

2010.06.14 18:06ⓒ 2010 OhmyNews
#접선 #부채 #김대석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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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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