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안상수 전 원내대표가 21일 당 대표 경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봉은사 외압 의혹과 관련 "사실이라면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들께 심려를 끼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남소연
"봉은사 관련, 명진 스님과 김영국씨가 한 발언 내용은 작년 11월의 일이라 오래돼서 자세히 기억하긴 어렵지만,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안상수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21일 당대표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명진 스님(서울 강남 봉은사 주지)에게 에둘러 사과했다. 명진 스님이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전환키로 한 데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한 지 꼭 3개월 만이다.
명진 스님은 지난 3월 21일 일요법회에서 "2009년 11월 13일 안상수 원내대표가 시내 한 호텔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만나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 부자 절의 '좌파 주지'를 그냥 놔두어서 되겠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폭로해 파문을 일으켰다. 안 원내대표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교(政敎) 분리의 헌정질서를 침해하는 언행이었다.
'메모의 달인' 안상수의 '오래된 기억' 안 원내대표는 당시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날 조찬 회동을 주선하고 그 자리에 참석했던 김영국씨(전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 종책특보)가 이틀 뒤 기자회견에서 명진 스님의 발언 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힘으로써 안상수 대 명진의 '1차 진실게임' 승패는 이미 그때 가려졌다.
그런데도 김씨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봉은사 문제와 관련) 앞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면서 '묵언수행'을 자처한 안 원내대표가 3개월 만에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들에게 유감을 표명한 데는 집권당의 당대표로 출마하려면 봉은사 문제를 털고 가야 불교계의 반대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작년 11월의 일이라 오래돼서 자세히 기억하긴 어렵지만,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이라고 전제조건을 단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에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메달'(메모의 달인)로 통하는 그가 '오래된 기억' 핑계를 대는 것은 구차스럽다. 신임 총무원장 스님과 함께한 조찬회동 같은 중요한 모임이라면 필시 자신의 수첩에 메모했을 것이고, 아무리 오래된 일이라도 수첩만 들춰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봉은사 외압 발언 의혹은 그 자신이 친필로 메모한 수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지난 4월 8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안 원내대표 수첩의 4월 7일, 8일 일정에 '말조심'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 것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 '말조심'은 '불조심'이나 '개조심'처럼 '있는 것'(존재)과 '개연성'을 강조할 때 쓰는 말이지 '없는 것'에 쓰는 말은 아니다. 스스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만큼 '말실수'를 했다는 얘기다.
<시사저널> 사진기자가 같은 날 찍은 안상수 수첩의 오른쪽 페이지 하단 'MEMO'란의 메모도 의혹의 대상이다. 제목을 '3/31 대통령'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이날 안상수 당시 원내대표는 4월 국회를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과 어떤 형식으로든 소통한 것으로 보인다.
수첩에 잡힌 '3/31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