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들이 뗏목 부교를 이용해 한강을 건너 피란을 가고 있다. 1951. 5. 29. 서울
눈빛출판사
역사는 내비게이션이다불나방은 제 무리가 불에 덤벼들다가 타죽는 것을 빤히 보고도 저도 똑같은 짓을 하다가 같은 꼴을 당한다. 파리란 놈도 마찬가지다. 파리통에 제 동족이 새까맣게 빠져죽은 주검을 보고도 꾸역꾸역 한사코 그 통에 들어가 마침내 똑같은 처지가 된다. 이처럼 하등동물은 지혜나 학습이 없기 때문에 거듭 시행착오로 제 목숨을 잃고 만다.
그러면 고등동물이라는 사람은 어떤가. 사람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전임 대통령이 무리한 장기 집권 끝에 비극을 당한 것을 보고도 자기만은 예외라고 후임 대통령이 같은 길을 거듭하다가 똑같은 비극을 맞았다. 또 전임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이 불법 정치자금이나 친인척 비리로 고개를 숙이며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런 것을 보고도 후임자들이 자기는 예외라고 각성하거나 조신치 않다가 똑같은 일을 거듭 반복하는 게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는 역사를 아끼고 사랑하며 올곧게 기록하여 쌓아가고 있다. 역사학자 김성식은 <내가 본 서양>에서"영국 사람은 역사를 아끼며, 프랑스 사람은 역사를 감상하고, 미국 사람은 역사를 쌓아간다"고 했다.
그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역사가 있으면 이를 아끼고 그대로 본존하며 원형을 손상치 않고자 심지어는 건물의 먼지를 닦는 것조차도 주저한다고 한다. 그들은 설사 조상의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후손들에게 바른 역사를 일깨워주고 있다.
이웃 중국도 오랜 굴종의 역사에서 해방된 뒤, 온 나라 곳곳에 있는 역사의 현장에다 '물망국치(勿忘國恥, 나라의 치욕을 잊지 말자)''전사불망후사지사(前事不忘後事之師, 지난 일을 잊지 말고 후세의 교훈으로 삼자)'라는 글을 돌에 새겨놓고 백성들에게 지난 치욕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면서 역사현장에서 만난 한 역사학자(연변대 박창욱 교수)는 "과거를 잊는 것은 반역자다"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는 역사를 모르는 이는 하등동물처럼 거듭 시행착오를 하거나 역사의 시계 침을 되돌려 놓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나라의 지도자가 역사를 모르는 것은 나라와 겨레를 나락에 떨어뜨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서 비로소 바르고 슬기로운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역사는 도로 표지판이나 내비게이션, 곧 길 도우미와 같다. 우리가 도로 표지판도 내비게이션도 없이 고속으로 길을 달리면 얼마나 위험한가. 인생길도 이와 같다. 선진국 백성들이 굳이 역사를 아끼고 사랑하고 감상하고 쌓아가는 근본 까닭이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