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 동창들에게서 '예외'를 보다

등록 2010.06.28 13:24수정 2010.06.2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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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전도(顚倒) 현상

 

오래 전에 어떤 술집에서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은 환갑이 넘어 보이는 '어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30대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두 사람이 술자리에 함께 어울린다는 것도 흥미로웠고, 그들의 대화 내용은 더욱 흥미를 돋우었다. 그들은 충돌을 빚고 있었고, 서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 대화의 주제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우리 속담에 관한 것이었다. 환갑이 넘어 보이는 사람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주장이었고, 30대로 보이는 청년은 그런 속담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서울을 가려면 제대로 가야지 왜 모로 갑니까? 그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얘기인데, 그건 정당성을 무시하자는 것밖에 안 됩니다. 세상을 나쁘게 만들 뿐이에요!"

 

서로의 주장을 수용하지 못한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합의를 이루고는 혼자 앉아 있는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

 

초교 동창들 지난 15일 낮 초교 동창친목회원들이 몽산포 옆 몽대항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천안함 사건, 6/2지방선거,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교 동창들지난 15일 낮 초교 동창친목회원들이 몽산포 옆 몽대항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천안함 사건, 6/2지방선거,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요하
▲ 초교 동창들 지난 15일 낮 초교 동창친목회원들이 몽산포 옆 몽대항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천안함 사건, 6/2지방선거,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지요하

"두 분에게서 이상한 전도 현상을 느낍니다. 세상의 이치를 많이 깨우친 어른께서 '서울을 가려면 제대로 가야지 모로 가면 안 된다'라는 쪽에 서고, 뭔가를 이루려고 물불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하기 마련인 젊은 분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쪽에 서야 어울리는 풍경이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정 반대의 형국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이 의아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며 술잔도 함께 나누고 꽤 많은 얘기를 했는데, 환갑이 넘은 어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는 끝까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주장을 고수하면서 "고추가 크건 작건 밤에 사내구실만 잘하면 된다'는 말살에 쇠살 같은 변설을 갖다 붙이기도 했다.

 

40대 시절 어느 술집에서 그 일을 겪은 이후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는 갖가지 현상들 속에서 그때 그 일을 떠올리곤 했다. 참으로 우리네 생활공간에는 그 속담의 실체가, 또는 그 속담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 받는 일들이 많고도 흔한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의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혜안을 지녔을 법한 노년의 사람들과 왕성한 혈기로 방자하기 십상일 젊은 사람들 간의 기이한 가치관 전도 현상도 무시로 목격하거나 겪으며 살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노년층의 단순성과 청년층의 합리성

 

최근의 천안함 사건을 보면서도 예의 그 속담을 떠올려야 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그 속담의 실체가 천안함에 결부되어 있음을 확연히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깊숙이 우리의 관성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일 터였다. 그 관성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천안함 '사고'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천안함 사건 속에서도 나는 이상한 전도 현상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를 먹은 사람들일수록 쉽사리 '북풍' 조작에 휘말리고 북한 소행인 것으로 단정해 버리는 반면 젊은 사람들일수록 의문의 날을 세우며 논리와 과학의 눈으로 세밀히 분석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왜 나이를 먹은 사람일수록 쉽게 휘말리거나 단정을 해버리는 것일까? 왜 상식과 이치 쪽으로는 눈을 뜨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오랜 세월 분단 체제 속에서 살아온 관성 때문일 터였다. 과거의 갖가지 경험들도 작용하는 가운데서 오랫동안 '순치'되어 온 습성으로 말미암아 의문의 여지 따위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인양된 천안함 함미 천안함은 현재 '의문 덩어리'로 남아 있으나 실체가 바로 '증거'이기도 함으로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인양된 천안함 함미천안함은 현재 '의문 덩어리'로 남아 있으나 실체가 바로 '증거'이기도 함으로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 인양된 천안함 함미 천안함은 현재 '의문 덩어리'로 남아 있으나 실체가 바로 '증거'이기도 함으로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의문에 익숙하지 않은 비논리적인 습성, 오도된 이분법 속에서 일방적으로 순치되어 온 그 관성은 또 쉽게 왜곡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왜곡된 애국심에 불타는 사람들일수록 진정한 애국의 길을 보지 못하고, 애국이 자기들만의 전유물인 양 착각한다.

 

그것은 평범한 국민들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지식인 그룹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 문인입네 언론입이네 학자입네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살벌한 논조를 뿜어내는 이들이 널려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역시 지식인층에서도 나이 든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 사이의 이상한 전도 현상은 참으로 명확하다. 그런 현상을 나는 슬프게 생각한다.

 

초교 동창들이 보여준 예외성

 

나이 먹은 것이 민망하고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내 젊은 시절 중년 이상의 사람들에게 품었던 반감이 지금 시절에도 고스란히 현재진행형인 상황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동창들 모임이나 중년들이 다수인 상조회 같은 데 가면 부쩍 조심을 한다. 몇 마디만 들어보면 조중동을 보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금방 식별할 수 있는데, 아직 중년 세대들 가운데는 인터넷보다 조중동과 친숙한 사람들이 많은 현실인지라 나는 애쓸 필요 없이 충돌을 피하곤 한다.

 

어차피 퇴역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는 사람들을 붙잡고 설전을 벌여봐야 내 고독감만 더 커질 뿐이라는 생각이기도 한데, 때로는 내가 너무 비겁하고 유약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초교 동창생들에게서 뜻밖의 놀라운 현상을 보았다. 지난 15일이었다. 초교 동창생 20여 명이 함께 하는 친목회가 몽산포 옆 몽대항에서 야유회를 가졌다. 한 민박집의 차일 마당에 둘러앉아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을 들며 술잔을 기울일 때였다. 한 친구가 천안함 얘기를 꺼냈다.

 

생선 운반선의 하역작업 먼 바다 고깃배들에서 고기를 받아온 운반선이 몽대항의 부두에 도착했다. 어쩌면 운반선은 백령도 근해까지 갖다 왔을지도 모른다.
생선 운반선의 하역작업먼 바다 고깃배들에서 고기를 받아온 운반선이 몽대항의 부두에 도착했다. 어쩌면 운반선은 백령도 근해까지 갖다 왔을지도 모른다. 지요하
▲ 생선 운반선의 하역작업 먼 바다 고깃배들에서 고기를 받아온 운반선이 몽대항의 부두에 도착했다. 어쩌면 운반선은 백령도 근해까지 갖다 왔을지도 모른다. ⓒ 지요하

"천안함 아궁이에서 '진짜 연기'가 나기 시작허던디. 천안함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간 것 때문에 제대로 연기가 나게 생겼어."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여러 가지 설왕설래가 있은 다음 그 친구가 '연기'의 의미를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수많은 '명백한' 의문들을 해소하지 못한 상황에서 천안함 문제를 유엔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더욱 확실하게 연기가 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커졌다는 이야기였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외교술을 발휘하여 유엔 안보리에서 '성과'를 얻게 되면 그것으로 국내 여론을 호도하려는 술책인데, 그 술책이 도리어 화근이 될 거라는 얘기도 나왔다. 국내에서도 해소되지 않는 명백한 의문들이 국제사회에서는 덮어질 것으로 기대한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이야기였다.

 

천안함은 '거짓말의 도가니'라는 말도 다른 친구의 입에서 나왔다. 거짓말 때문에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고, 거짓말이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는데, 거짓말이 거짓말을 잉태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모르는 저 높은 사람들의 무지와 무모함이 참 불쌍하게 느껴진다는 표현도 있었다.

 

거짓말의 향연으로 오늘 당장은 책임을 모면할지 모르지만 오늘에 마련된 덫이 내일에는 기필코 큰 앙화가 되리라는 '걱정'들도 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내 의견을 물었다.

 

순간 나는 다시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불현듯 떠올라서 그 속담을 소개했다. 오늘의 천안함 사건에도 그 부정적인 속담이 결부되어 있다는 견해였다.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빚어진 일이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야 된다는 잠재의식이 작용한 탓이지. 선거라는 목표 때문에 천안함 사고를 이용하다 보니 일이 이렇게 커졌고, 죽도 밥도 아니게 된 상황이 되고 말았는데, 한마디로 치졸과 어리석음 그 자체야."

 

수단과 방법이 정당해야 목적도 정당하고 제대로 이룰 수가 있는 법인데, 어떤 농간을 부려서라도 우선 이루고 보자는 그 목적 제일주의는 그 목적 자체를 불순한 것으로 만들기 마련이다.

 

선거 전에는 천안함 사건으로 4대강 사업 등이 덮어지는 듯했고, 선거 후에는 반대로 4대강 사업이 천안함 사건을 덮는 양상이기도 한데, 현 정부의 최대 약점은 철학과 정치력 부재다. 철학이 없으니 미래를 보지 못하고, 소통 부재는 정치력 빈곤을 반증한다.

 

민주주의를 30년 전쯤으로 후퇴시킨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현실감각과 사고력이 빈약한가를 알 수 있다.

   

대략 이런 내용의 내 얘기를 친구들은 이해하고 동의했다. 중간에 한 친구가 "어느 놈이 정권을 잡아도 다 마차가지여. 그놈이 그놈이여"라는 말로 초를 치기도 했지만, 그 친구의 그 말은 누구의 동의도 얻지 못했다. "바로 그런 생각이 우리 정치를 더 나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말을 한 친구가 하기도 했다.

 

술잔을 돌리며 열띤 대화를 나누었던 우리는 열기를 가라앉힐 겸 바닷바람을 쐬고 와서 점심을 먹자는 회장의 의견에 따라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우리는 곧 몽대항의 긴 방파제 길을 걸었다. 부두에서는 생선 운반선이 들어와서 하역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낮게 나르며 부두의 생동감을 배가시켜 주는 듯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초교 동창 친구들에게서 오늘 '예외'를 실감했다는 사실이 더욱 삼삼한 기분을 갖게 했다. 새롭게 희망을 갖는 느낌이었다. 친구들 모두에게는 청년층 자녀들이 있고, 하나같이 그 자녀들과 소통을 잘 이루며 살고 있음을 감득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내 친구들 모두 아직은 젊은 사람들이었다.

2010.06.28 13:24ⓒ 2010 OhmyNews
#가치전도 #거짓말 #천안함. #초교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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