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더보기 새벽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혼자 뼈다귀 해장국에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예전엔 아침부터 술 마시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다.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심정을 너무 잘 안다. 낮밤이 바뀐 일터에서 먼지와 악취를 견디고 아침을 맞은 사람이 편안한 잠을 청할 다른 방법이 있을까. 소주병의 2/3쯤을 비운 뒤 보고 싶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도 묻고 신세 한탄도 했다. 가끔은 어머니가 좋은 친구가 되어줬다. 마지막 1/3은 나를 위한 '격려주(酒)'였다. 오늘도 잘 참았다, 조금만 버티자, 잘 해낼 수 있다. 지난 봄, 대학원의 형, 동료들과 함께 근로 빈곤의 현장 체험을 계획했을 땐, 이렇게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생일대의' '청춘을 불사를' 기획 기사를 써보자고 작정하자 심장이 뛰고 피가 끓었다. 기자의 입장에서 소외된 노동자의 삶을 생생하게 관찰하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현실적 대안을 찾는 데 기폭제가 되자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그러나 나는 그 현장에서 냉정한 관찰자가 되기 어려웠다.처음 일하러 간 곳은 한 대형 병원의 세탁실이었다. 무료신문 광고를 보고 지하 세탁실로 찾아갔더니 세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길다란 빨래 뭉치들을 들고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고래 뱃속이 이렇지 않을까, 신기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일자리는 못 구했다. 현장 소장은 '멀쩡한 젊은 놈이 여기 왜 왔어'하는 눈빛으로 "난 너희 또래들 보면 안타깝다"고 혀를 찼다. 분을 삭이며 돌아 나왔다. 나는 취재를 하러 온 거다... 그러나다음으로 찾은 일이 야간 청소 용역이었다. 비좁은 사무실에서 대강의 서류를 작성하고 그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얘길 들었다. 바로 '그런' 사람들과 함께 대걸레를 들고 오가면서 속으로 '나는 이들과 같지 않아'하고 되뇌었다. 나는 기자다. 취재하러 왔다. 하지만 이상했다.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다.전주로 출장 갔을 때 일이다. 청소를 시작하기 전 분식점에서 아저씨들과 나란히 밥을 먹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시간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지만,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건너편에서 식당 아주머니 두 명과 여대생 한 명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나를 훔쳐보며 '낙오자' '패배자' '밑바닥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증상은 갈수록 더 심각해졌다. 한 번은 오 반장이 "먼저 테이블부터 옮겨야지"라며 나에게 지시했다. 평소 나의 은밀한 취재에 가장 도움이 된 사람이었는데도 불쾌했다. '당신이 뭔데 나에게 지시를 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슬쩍 건네는 농담도, 어린아이처럼 웃는 미소도 짜증났다.위장 취업인 주제에 왜 그리 예민했을까? 그렇다. 그들과 나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학원생이지만, 언론사 입사 시험에 좌절한 적이 있는 반 백수다. 아버지 몰래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학자금 대출액은 1000만 원이 돼간다. 취업이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면, 나는 빚을 갚기 위해 바로 '그런' 일을 하러 나설지도 모른다. 호텔 주방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 사촌 동생이나, 나나, 오 반장이나 그렇게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그런 삶에 빠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입장이 되자, 신문과 방송이 야속했다 큰사진보기 ▲황상호 기자 황상호 그들의 눈으로, 그들의 심정으로 세상을 보게 되자 신문과 방송이 야속했다. 한 때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고 온갖 언론들이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기자들이 새롭고 신선한 아이템을 쫓을 때, 그들은 여전히 빈곤에 쫓겼다. 냄비 끓듯 요란하게 몰리는 반짝 관심이 아니라 더 치열하고, 더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대안 모색이 필요했다. 이 생각을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상호야, 내가 꿈이 어디 있겠니"했던 최 과장이 생각난다. 그가 청소 일을 하면서도 꿈을 꿀 수 있고, 사랑하는 딸에게 자랑스런 아빠가 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땐 환갑이 다 될 오 반장도 떠오른다. 다친 허리 때문에 늘 굼뜬 움직임을 보여 나이 어린 과장들에게 타박도 많이 받았지만 내겐 늘 친절했던 사람이다. 연금도 보험도 없는 그가 제발 아프지 않아야 할 텐데…, 누구보다 성실히, 열심히 살아가는 그가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는 날이 와야 할 텐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이 만든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 창간특집으로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이 만든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 창간특집으로 실렸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취재후기 #청소용역노동자 #황상호 추천12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글 황상호 (homerunser) 내방 구독하기 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이 기자의 최신기사 27층 빌딩은 왜 길거리 낙서 패에 점령당했나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단독] "가면 뒈진다" 명태균, "청와대 터 흉지" 글도 써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단독] 윤석열 모교 서울대에 "아내에만 충성하는 대통령, 퇴진하라" AD AD AD 인기기사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3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4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5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위장취업'인 주제에 왜 그리 예민했을까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인기기사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의사 아빠가 죽은 딸의 심장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경희대 시국선언문 화제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 큰일 났다... 윤 정부, 또 망칠 건가 남편 술주정도 견뎠는데, 집 물려줄 거라 믿었던 시댁의 배신 "10만4천원 결제 충분히 인식"... 김혜경 1심 '유죄' 벌금 150만원 '국감 골프' 민형배 의원 고발당해…"청탁금지법 위반" 시퍼렇게 날 선 칼 갈고 돌아온 대통령, 이제 시작이다 이준석의 폭로 "윤 대통령, 특정 시장 후보 공천 요구"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