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야, 내가 졌다...에어컨 지르던 날

실외기 누가 떼어갈라 '보고 또 보고' 촌놈 티 내기

등록 2010.08.07 09:51수정 2010.08.0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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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불볕더위로 더웠을지언정 묵묵히 끈기와 의지의 한국인으로 살아왔다. 그건 에어컨 없이 오로지 선풍기로서만 더위와 씨름을 해 왔다는 거다.


이랬던 내가 결국 더위에 속수무책으로 굴복한 건 너무나(!) 더운 폭염의 날씨가 계속된 때문이었다. 예년 같았더라면 어느새 도래한 가을의 사신에게 그 자릴 내줄 준비를 마쳤을 여름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얘기였다.

아마도 미쳤는지 하여간 이 여름이란 놈은 더욱 흉행(凶行)하여 가을은 저 먼 산등성이 아래서 꼼짝을 못 하고 벌벌 떨고만 있는 형국이었다.

이에 더욱 기고만장해진 여름과 그 중간층인 폭염(暴炎), 그리고 우두머리인 염제(炎帝)까지 모두는 가가대소하면서 천하를 더욱 무덥고 메마르며 목마른 대지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이 바람에 죽어나는 건 우리네 인간들은 물론이요ㅡ 기타의 동물과 식물들도 매일반이었다. 날씨가 '이따위로' 말도 안 되게 덥다보니 밤엔 열대야까지 덩달아 가세하여 그야말로 죽을 맛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게 밤새 열대야에까지 시달린 뒤 비몽사몽과 어리바리로 출근하면 젠장 아침부터 부족한 졸음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업무에 집중하기도 어려운 것은 그 다음의 수순이었고.


하는 수 없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수밖엔!

그건 바로 에어컨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선풍기의 열 배 가량이나 전기료가 더 나오고 나아가서는 지구온난화의 또 다른 주범으로까지 지목받고 있는 게 바로 에어컨이다. 그같이 '이미지 나쁜' 에어컨에 프러포즈를 보낸 건 나 혼자만 뭐 그리 잘 낫다고 독야청청으로 선풍기만 고집하느냐는 자문자답 뒤에 얻은 결론이었다.


사흘 전인 4일 큰맘을 먹고 가전제품 양판점에 갔다. 나 말고도 에어컨을 구입하려 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종업원들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예년 같았음 에어컨은 찾지도 않았을 텐데..."

올해는 사상 최악의 폭염 때문으로 에어컨은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다고.

크고 비싼 스탠드형 말고 저렴한 벽걸이형 에어컨을 골랐다.

"설치는 낼 모레 해 드리겠습니다."

더위 비켜! 니들은 이제 죽었어!
더위 비켜!니들은 이제 죽었어!홍경석

오매불망 기다렸던 에어컨 설치 기사 두 사람이 온 건 약속시간보다 좀 늦은 어제(6일) 오후 8시 무렵이었다.

두 사람은 능숙한 솜씨로 1시간 여만에 거실의 벽에 에어컨 설치를 마쳤다.

설명에 따라 버튼을 눌러 가동을 했다. 신통방통한 에어컨은 그러자 무려 35도에 육박하던 실내온도를 얼마 되지도 않아 30도 아래로 끌어내리는 마력까지 발휘했다.

"와~ 완전 좋아!!"

에어컨의 실외기는 현관 바로 앞에 설치하였다. 한데 기사가 가면서 했던 말이 자꾸만 신경을 거슬렀다.

"요즘엔 돈이 된다고 하면 맨홀의 뚜껑까지 훔쳐가는 삭막한 시절이니까 혹여 이 실외기도 그리 될 지 모르니 유념하여 살펴보세요!"
".......!!"

그 때문이었으리라. 조바심에 꼭두새벽부터 눈을 뜨곤 맨 먼저 한 일이 바로 그 실외기를 살펴본 것은. 그건 '보고 또 보고'였으며 아울러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설치한 에어컨에 대한 남다른 애착에서 발로한 '촌놈 티 내기'였다.

또한 그같은 행위는 그 옛날 아버지가 사 주신 고운 새 신발을 혹여 누가 훔쳐가지나 않을까 싶어 자다가도 몇 번이나 깨어 문 밖에 나가 살핀 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던 가난했던 시골 소년의 연장선상이었다.

덧붙이는 글 |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sbs에도 송고했습니다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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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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