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떠나기 전에 기념 사진을 남겼습니다.
송성영
"웃어 짜슥들아! 웃어봐! 이 돼지 같은 놈들아!""찍기 전에 하나둘셋 해줘요!""그려? 하나둘셋! 하나둘셋! 하나둘셋!"나는 녀석들이 폼 잡을 사이도 없이 하나둘셋을 쉼표 없이 급히 내뱉어 가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녀석들은 그런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다들 환하게 웃어 댑니다. 녀석들의 환한 웃음은 평생의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저렇게 환하게 웃어가며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녀석들은 학교로 돌아가면 서로 경쟁자가 되어야 합니다. 충남 공주에서는 성적순으로 잘라 고등학교에 입학시킨다고 합니다. 몇 개월 후면 돼지 같은 놈들 역시 성적순으로 헤어져야 합니다. 원하는 고등학교에 다 함께 진학할 수 없습니다. 자신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 때문에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없습니다. 흉허물없이 함께 어울려 놀던 친구를 경쟁에서 이겨야만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돼지 같은 세상, 자유를 꿈꿔라 아들아운전대를 잡고 녀석들을 순천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녀석들은 순천역에 도착할 때까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열차 안에서 김밥이라도 사먹으라며 몇 푼을 찔러주고 역 대합실로 떠나 보내는데 녀석들이 안쓰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학교로 돌아가면 녀석들은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서로 경쟁자의 관계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니들 원하는 고등학교 가지 못해도 절대로 실망하거나 기죽지 마라. 니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믄 되는 겨. 공부 잘 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니들이 진짜로 하고 싶은 거 하면 돼.그리고 겨울 방학 때도 꼭 놀러 와라! 알았지!"인사말을 건네놓고 녀석들이 저만치 대합실로 들어섰습니다. 녀석들을 그대로 떠나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워 자동차를 적당한 곳에 주차해 놓고 황급히 뒤따라 갔습니다. 녀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어 주는 것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녀석들과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깨물고 돌아오면서 그 어떤 서러움에 복받쳐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에이, 돼지 같은 놈들…."아이들을 돼지 같은 틀 속에 가둬 놓고 죽어라 경쟁시키고 있는 돼지 같은 세상. 아이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음껏 할 수 없는 세상. 돼지 같은 놈의 세상이 서러웠습니다. 반항기 다분한 녀석의 티셔츠에 써 있는 '이 돼지 같은 놈들아'는 그런 세상을 향한 욕설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그런 세상에 방치해 놓고 있는 어른인 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욕설이었습니다.
녀석들을 떠나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갤로퍼 승용차 맨 뒤 칸의 의자를 접어 올려 놓으려 하는데 의자 받침대가 펼쳐져 있지 않았습니다. 녀석들은 우리 집에서 순천까지 한 시간 넘게 받침 없는 불편한 의자에 얹혀 갔던 것입니다. 그만큼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요령을 모릅니다. 불편해도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불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욕설과 매질이 묵인되는 인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학교를 온몸으로 껴안고 생활합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무조건 따릅니다.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하면 아이들 역시 누군가의 인권을 존중하게 될 것이고 자유로움을 가르치면 자유롭게 살 것입니다.
매질과 욕설로 억압하며 가르치면 그만큼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억압하게 될 것입니다. 친구들과 경쟁할 것을 강요하면 세상에 나가서도 역시 경쟁심에 얽매여 살아갈 것입니다. 누군가를 억압하고 상처 입혀 가며 경쟁심으로 살아가는 길이 사람의 길이 아니라 돼지 같은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이미 그 길에 익숙해져 벗어나기 힘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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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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