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에 와서의 처음으로 가꾼 감자밭. 토종 씨감자를 얻어 심었는데 풀과 함께 잘 자랐다.
송성영
"지렁이가 잠자리처럼 빠르게 살면 안 되나?"
이게 대체 뭔 소리냐구요? 일손이 잠자리처럼 빠른 아내가 지렁이처럼 느려터진 남편인 나에 대해 하소연하는 소리입니다. 얼마나 속이 터졌으면 지렁이에게 잠자리가 좀 돼 주면 안 되겠냐고 했겠습니까. 하지만 지렁이도 밟으면 굼틀거리는 법. 지렁이인 나도 할 말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냥 날아다녀, 나는 생긴 대로 그냥 기어 다닐 테니께. 그렇다고 내가 할 일 안하는 거 아니잖어? 좀 느리게 해서 그렇지만.""그게 뭐가 '좀' 느려?"그렇게 전남 고흥으로 이사 와서도, 좋게 말하자면 터 누르기 차원에서,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서로 성질머리가 고약해서 일머리를 놓고 툭하면 쌈박질을 해댔습니다. 남편인 내가 느리거나 말거나 한동안 번듯한 집에 기분 좋게 취해 있던 아내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잠자리 아내와 지렁이 남편언젠가 김민해 목사님이 놀러 왔다가 티격태격하는 우리부부에게 붙여준 별명, 지렁이와 잠자리. 늘 그래왔듯이 아내는 잠자리처럼 어지럽게 지렁이처럼 느려터진 내 주변을 빙빙 날아다니며 시비를 걸어왔던 것입니다.
"느리지만 내가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디, 이사 오자마자 300평 넘는 밭을 갈아서 거기에 감자, 오이, 고추 토마토에 야콘까지 열 가지가 넘는 작물을 심었잖어. 내가 짓는 농사는 잠자리처럼 빠르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께 그러네.""아이구, 남들은 그보다 몇 배나 농사를 짓는데, 밭이 아주 깔끔하잖아. 인효 아빠는 만날 게으르게 농사지으니까 밭이 맨 잡초 투성이고.""게으르다고? 느린 것하고 게으른 것은 다른 겨. 자연농이라는 게 말여, 화학비료 주고 약치는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일손이 그 몇 배나 된다구.""작물을 심어 놓은 밭보다 풀에 뒤덮여 놀고 있는 밭이 더 많잖아.""그 밭은 감귤도 심어가며 천천히 관리할겨."
"아이구 어느 세월에…. 당신은 너무 게을러, 좀 부지런했으면 좋겠어.""거참, 자꾸만 게으르다고 하지 말어.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밥벌이 원고에 오마이 뉴스 연재 기사 쓰고, 거기다가 바다에 나가 찬거리 마련해 오지, 또 거시기 뭐냐... 그려, 밭농사 짓지, 거기다가 당신 민박하는 거 도와주지. 할 것 다 하구 있잖어.""손님들이 왔다 가면 청소 좀 같이 하면 안 돼? 쓰레기도 좀 치워주고.""당신이 시키는 대로 청소 안한 적 없잖어.""알아서 후딱 후딱 치워야지. 속 터져 죽겠다니께." "생겨 먹은 게 그런데 어떻게 혀. 그렇다고 내가 당신한티 지렁이처럼 느리게 살라고 강요한 적 없잖어?"아,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와 다툴 때 말하지 못한 게 있습니다. 겨우내 집을 지을 때, 뒷일 거들어 주랴 거기다가 이사 오자마자 농사일이며 바닷일(바닷일이라 해봤자 갯바위에 나가 돌미역을 따고 찬거리 낚시질한 것이 전부지만)을 시작하면서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이 빠졌습니다.
거기다가 어금니까지 뽑고, 앞니 몇 개가 왕창 흔들립니다. 어깨까지 치렁치렁 내려온 긴 머리를 아주 짧게 삭발해 놓고 거울을 보니 마치 인도 고행길이라도 다녀온 얼치기 수행자처럼 몰골이 영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게으르다는 겁니까? 억울해 죽겠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아내대로 속 터질 만한 것이었습니다. 집 짓고 나서 주변 정리할 일을 차일피일 미뤄 두고 있었고 거기다가 손님들 다녀간 뒤끝 정리할 일을 '좀 쉬었다가 하자'는 식으로 빈둥거렸으니 오죽했겠습니까.? 하지만 내 딴엔 오늘 못하면 내일 해도 상관없는 일에 불과했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일에 매달리면 그 다음날 역시 또다른 일에 매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매일 매일 아내가 원하는 일에 파묻혀 생활하다 보면 정작 내 일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지렁이 같은 놈이 견뎌낼 재간이 있겠습니까? "왜 가만히 있는 사람 밟고 그러는겨, 뿔다구 나게" 해가며 없는 뿔까지 곧추 세우고 한바탕 싸움질을 할 수밖에요.
자연에 맞춰사는 게으른 나, 느린 것 뿐인데...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흥에서의 첫 농사이기에 한 번에 왕창 심어 놓게 되면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었습니다. 밭에 어떤 풀들이 주로 점령하고 있는지 또 어떤 벌레 녀석들이 설쳐대는지, 어떤 작물을 심어야 제대로 된 농사를 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대략 300여 평 만 심어놓고 염탐 중에 있습니다.
공연히 1000평 가까운 땅에 이것저것 욕심껏 작물을 심어 놓았다가는 경사진 밭에 침수 피해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병충해에 꼼짝없이 당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첫 대면하는 밭과 인사라도 나누는 차원에서 전체 농지의 삼분의 1정도인 300여 평 정도만 갈아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나도 쉬고 땅은 물론이고 풀 숲 우거진 밭에서 살아가는 온갖 생명들도 한해를 평화롭게 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밭 갈아먹지 않아 당장 굶어 죽을 일도 없고, 쉬는 만큼 덜 먹으면 됩니다.
충남 공주에서 밭농사를 지을 때는 농기계를 전혀 쓰지 않았는데 올봄 발 같이는 농기계를 이용해 수월하게 마쳤습니다. <오마이뉴스> 덕분이었습니다. 동네에 사는 어떤 분이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내 글을 읽었다며 우리 집에 놀러 왔습니다. 차를 마시다가 풀이 수북한 밭을 보고는 "잠깐 기다려 보소" 하더니 트랙터를 끌고 와 후딱 갈아 줬던 것입니다.
"송 선생, 내가 갈아줬다고 하지 말어요이."밭을 다 갈아 놓고 감자를 심으려 작심하고 있는데 <오마이뉴스> 기사를 본 또 다른 분이 찾아왔습니다. 고흥에서 유기농을 하고 있는 김부일 선생이었습니다. 김 선생은 환경운동을 하고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3000평이 넘는 논농사와 더불어 양파, 마늘 등의 밭작물 또한 유기농으로 지어가며 갯벌에서 바지락을 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일장에 나가도 보이지 않고, 씨감자 구할 데 어디 없나요?""아, 내가 좀 있소, 토종 감자씨 심어 보실라오?"그렇게 김 선생으로부터 귀한 토종 감자씨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녹색평론 모임을 소개받아 사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