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님의 1주기인 지난 18일(수) 오후 7시, 충남 태안에서는 뜻 깊은 추모제 행사가 있었습니다. 장소는 태안 읍내 중심지인 '사거리 농협' 앞이었습니다. 일과 시간이 끝난 다음 농협 주차장을 빌려 거기에 분향소와 음악 공연장을 마련하고 1부 추모콘서트, 2부 추모제 순으로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가수 정태춘의 녹음 노래가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태안의 전문 음악인들로 구성된 밴드의 반주에 맞춰 서울대 음대 성악과 2년 재학 중인 정재원(태안 '참여연대' 멤버 정연희씨 장남) 군이 부른 노래 몇 곡이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태안의 김대중 대통령님 1주기 추모제는 태안 민주당 인사들과 '참여연대',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준비를 했습니다. 행사를 알고 찾아온 분들, 지나다가 헌화와 분향을 하고 참여한 이들을 합해 150명 정도가 함께 했습니다. 또 참석자들 중에는 남녀 중·고생들도 여럿 보였습니다.
추모 콘서트가 40분 정도 진행된 다음 추모제가 거행되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과 민주 영령들을 위한 묵념이 있었고, 추모제 행사를 앞장서서 주선한 최기중 준비위원장(태안 참여연대 공동대표/최가축병원 원장)의 경과보고가 있었습니다.
이어 태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문영식 회장과 태안지역에서 오랜 세월 민주화운동에 헌신해온 안면읍 출신 황영복 선생의 추모사가 장내 분위기를 숙연하게 하였습니다. 추모사들이 참으로 절절하고 심금을 울리는 내용이어서 눈물을 닦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두 분의 추모사 다음에 '추모시'를 낭송했습니다. 이번 1주기 추모제를 대비해서 추모시를 새로 짓지는 않았습니다. 162명의 시인들이 참여하여 지난해 말 출간된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추모시집' <님이여, 우리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하소서>(김준태 외, 화남 펴냄) 안에 수록된 <당신이 떠나시며 주신 선물>을 낭송하였습니다.
먼저 분향소 안에 들어가 김대중 대통령님 영정 앞에 국화꽃송이를 올리고 절을 올린 다음 추모시 낭송을 하기 전에 간단한 인사말을 했습니다.
"우리 고장 태안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싶은 소망을 안고, 착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소설가 아무개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1주기 추모제 행사에 참여하여 추모시를 낭송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감히 고장의 '정신적 지주'를 소망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들어서였습니다.
"150명 안팎의 여러분이 제 눈에는 천 명, 만 명으로 보입니다. 참으로 고맙고, 절로 든든해지는 마음입니다."
이 말은 깨어 있는 소수가 천 명, 만 명의 역할을 대신하고, 다수를 변화시키고 이끌며 역사발전을 이룩해 가는 그 '중심의 힘'에 대한 인식과 믿음을 바탕에 깔고 한 말이었습니다. 추모제 자리에 함께 한 모든 분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입니다.
추모시집 <님이여, 우리들 모두가 하나 되게 하소서>에 대한 소개도 곁들였습니다.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니, 김대중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이들의 모임체인 꽤 큰 규모의 '카페' 메인 화면에 내 추모시가 꽉 차게 올라 있어서 깜짝 놀랐던 일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님 영정 쪽으로 돌아서서 추모시를 낭송했습니다. 이쯤에서 제 추모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당신이 떠나시며 주신 선물
―김대중 대통령님의 영전에 바칩니다
당신을 안 날로부터
점점 더
깊이 많이 알아가면서
참 많이도 사랑했습니다
이해하고 존경했습니다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섭섭해하고 야속해하며
통렬히 비판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 때문에 흘렸던 눈물들을 기억하며
당신으로 하여 눈물 흘릴 수 있는 가슴을 지닌
나 자신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영면의 길로 가셨을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노짱'이 이미 다 가져가서
흘릴 눈물도 없었습니다
막막함과 허황함 가운데서
오히려 오기를 머금었습니다
당신이 살아 계시던 때
당신 때문에 눈물 흘리던 시절
절절한 가슴으로 써서 발표했던 글들을 몇 개
추모 글 삼아 다시 세상에 띄웠습니다
이국에서 감사 전화를 주신 분이 있었고
그 분의 적극적인 조언에 따라
대체의학 활용으로
폐와 임파선에 암세포를 안고 사시는 노친을
살려낼 수 있었습니다
암을 이겨 가시는 노친을 보며
당신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당신은 이승을 떠나시면서
제게 값진 선물을 주셨습니다
당신을 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을
그 절절했던 눈물을
마치 헤아리기라도 하신 듯
당신은 제게 보답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2009년 8월 18일
당신이 이승을 떠나시면서 제게 주신
값진 선물을 가지고
당신과 동갑이신 노친을 보살펴드리며
당신 선물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오늘은 제 노친을
암으로부터 살려내고 있는 선물이지만
이 선물 속에는
당신으로 하여 눈물 흘렸던 이유들
당신을 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했던
그 모든 의미와 가치들이
고스란히 담뿍 어려 있습니다
하여 다짐합니다
그 절절했던 눈물의 이유들을
더욱 뜨겁게 끌어안고
세상의 암세포들과 결연히 맞서 싸워나갈 것임을!
그리하여
모멸 당하는 민주주의를 되살려내는 일에
미력하나마
뜨겁고 절절하게 힘을 보탤 것임을!
양심과
하느님 신앙과
사랑의 이름으로…!
추모시 낭송을 마친 다음에는 시에 등장하는 내 노친에 관한 소개도 곁들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별세가(김대중 대통령님 생전에 종이 매체에 썼던 글들을 추모 글 삼아 인터넷 매체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어느 고마운 이의 호의에 의해 대체의학을 알게 되고 대체의학 활용으로 노친을 암이라는 절망적인 병환에서 건져낸 이야기였습니다.
2009년 6월 폐암 말기에다가 임파선에도 암이 있어 6개월 밖에 못 사신다는 진단을 받았던 노친, 암세포의 골반 전이와 골절로 말미암아 일어서지도 못하고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에서 운명하실 뻔했던 노친. 같은해 11월 말 태안의 요양병원으로 옮겨올 때는 여생이 2개월 정도라는 말을 들었던 노친이 기적적으로 완치되어 병원생활 8개월 만인 지난 7월 5일 퇴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면서 동시에 김대중 대통령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선물'일 터였습니다. 그 개인적인 선물을 수많은 국민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공의 선물로 승화시킬 필요를 느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총체적으로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있는 말기 암환자와 같습니다. 민주주의는 퇴보를 거듭하더니 불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회정의는 미로를 헤매고 있으며, 국가권력은 골수에까지 병이 들어 버렸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은 지하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그것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 주십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가를 웅변하고 계십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별세, 그 영면은 수많은 국민들을 새로 깨어나게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국민들을 새로 깨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님이 떠나시며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값진 선물일 것입니다. 그 선물은 오늘도 또 내일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주어질 것이며, 마침내는 우람한 '민주회복'의 꽃으로 이 땅에 다시 피어날 것입니다.
2010.08.20 11:04 | ⓒ 2010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