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
김한영
그렇다면 이 같은 엄청난 비용을 운영위원회가 꼭 걷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상 이유가 없다. 학교운영위원회를 설치한 순수 목적으로 비춰보면 사실 돈이 들어갈 이유도, 돈을 걷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고 또 암담했다. 처음 학교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던 2000년, 경기도 모 초등학교에서의 일이다.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당시 교감선생님은 운영위원회 공식 회의 석상에서 "방문하는 주변 학교 교장 선생님과 장학사 등을 위해 수박과 떡 등을 준비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왜 운영위원이 수박과 떡을 사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학교 예산으로 해야 할 일인데 학교 운영위원이 왜 음식을 사야 하는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처럼 한다면 돈 없는 학부모는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덕분에 그 해, 나는 내내 외로웠다. 물론 운동회 날, 수박과 떡은 손님들을 위한 접대상에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10년을 싸우고 모나게 한 결과 학교는 얼마나 변했을까. 어떤 해는 원칙적으로 잘 되었고 그래서 좋아지나 보다 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아이가 진학한 중학교의 운영위원장은 다시 떡과 과일, 맥주를 사서 학교에 돌렸다. 스승의 날을 맞아 꽃바구니를 돌리고 출장 뷔페를 시켜 대접도 하겠다며 말했다.
당연히 반대하는 나에게 운영위원장은 "당신은 돈 내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 위원장과 친한 일부 위원은 "돈도 내지 않고 공짜로 운영위원을 하려는 파렴치한"으로 나를 모욕하기도 했다.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도 없는, 그리고 요구해서도 안 되는 이런 일들을 '경쟁적으로'하려는 것일까. 그럴 돈이 있다면 차라리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급식비 기부를 하는 것이 운영위원으로 보다 당당하고 떳떳한 일이 아닌가? 그저 이것이 모두 학교당국에 잘 보이기 위한 그릇된 운영위원의 문제로만 치부되어도 좋은가 묻고 싶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자발을 가장한, 그리고 자발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교육 당국의 방관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학교 운영위원회의 그릇된 행태는 바로 잡혀야 한다.
나는 바란다, "얼마예요?" 묻지 않는 그날을...학부모라면 누구나 아무런 부담이나 제약없이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운영위원회를 거치지 않고서는 학교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는 이 조례 제6조 2항에 따라 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교육 여건을 만들고 싶어 참여한 학교 운영위원회였다.
10년 전인 2000년, 학교 운영위원으로 처음 참여한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커지는 모금 추태는 과연 추방될 수 없는가. 물론 이는 극히 일부 학부모가 돈으로 학교 관계자의 호감을 사고 싶은 그릇된 발상으로 빚어진 작은 소동일 수 있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신호를 나는 이 땅의 교육 당국과 교육의 정상화를 바라는 이들에게 외치고 싶다.
한편, 경기교육청은 2010년 학교 운영위원 선출을 앞두고 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위원 선출이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의미있는 조치를 취했다. 권역별로 학교 운영위원회 업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하여 사실상 학교 차원의 조정을 통해 협조적인 특정 학부모가 입후보 하도록 하거나 단합 행위로 무투표 당선을 유도시키는 등 부적정 사례가 근절될 수 있도록 강조한 것이 그것이다. 매우 의미있는 노력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바란다. 아이들이 먹을 급식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 보다 안전한 체험학습과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학교 운영위원회를.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걱정하지 않고, 또 "돈은 얼마나 내나요?"라고 묻는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이 꿈에 대해 새로운 교육을 열망하는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출범한 교육당국이 명쾌하게 답해줄 때다. 두 눈 크게 뜨고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7월 5일 시민사회신문에 실린 내용을 일부 고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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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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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한푼 안 내고 공짜로 학교운영위원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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