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한푼 안 내고 공짜로 학교운영위원 하려고?

학교운영위원 10년차 학부모가 본 모금 백태... 자발 가장한 반강제 모금

등록 2010.08.25 16:29수정 2010.08.2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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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월 31일. 당시 김영삼 정부는 교육개혁 방안 중 하나의 과제로 각 학교마다 교원과 학부모 그리고 지역인사가 참여하는 '학교 운영위원회'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그 해 2학기, 355개교에서 시범 실시된 학교 운영위원회는 올해로 15년을 지나가고 있다.

내가 처음 학교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것은 지난 2000년 3월,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닐 때부터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오늘까지 하고 있으니 만 10년이 조금 넘었다. 당시 교육 관련 시민단체인 '참교육 학부모회' 주도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민주적인 운영위원회를 만들자'는 캠페인을 벌인 것에 찬성하여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다.

하지만 학교 운영위원회 활동 10년 동안 나는 늘 불편했다. 불법적 관행을 보면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순응하지도 못하니 늘 괴로울 수밖에. 학교 운영위원회의 오래된 '불법적 모금' 관행이 바로 불편함의 원인이었다. '불법에 침묵하는 것 역시 불법'이라고 했던가? 이 잘못된 관행의 고리가 끊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내가 지켜본 모든 것을 고백하고자 한다.

학교 운영위원 10년, 내가 불편했던 까닭

학교 운영위원회 설치 근거인 '학교 운영위원회 설치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4항에는 '학부모 위원에게는 학부모가 부담하는 학교 운영지원비 외에는 일체의 비용을 부담 지워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실상은 조금 다르다.

2010년 4월.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한 아이를 둔 어머니는 학교 측으로부터 운영위원회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막상 수락을 한 후 운영위원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그는 인터넷 모 교육 관련 사이트에 '운영위원회에 대해 알고 있는 분의 조언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십수 개의 댓글이 올라왔는데 그 내용은 전혀 생각 외의 내용이었다. 운영위원회에 들어가면 최소 100만 원에서 200만 원을 내야 한다는 답이 줄을 이었다.

학교 운영위원회의 비용 모금은 '원칙적으로' 해당 학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대개 운영위원회가 구성된 후 학부모 및 지역위원이 운영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모여 그 해 운영위원회 비용을 논의하여 걷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운영위원회의 음성적 비용 추렴을 학교 당국이 몰라서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흔히 학교 운영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는 학교가 모범적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학교 운영위원회가 다루는 사안이 다양하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크게는 학교 예산 및 결산에 관한 사항을 비롯하여 일상적인 학내외 교육 및 체험학습 등에 대한 심의, 그리고 졸업 앨범이나 교복 구입 등도 학교 운영위원회 소관사항이다. 또한 최근 관심이 큰 학교 급식 안전과 학내 폭력 등 교내사고 등에 대한 민원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중요한 업무에 대해 책임지고 역할을 해야 할 운영위원회가 일부 그릇된 운영위원장으로 인해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그리고 잘못된 몇몇 운영위원회의 행태를 보면, 학교 측으로부터 제출된 안건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심도있는 논의를 주도하기 보다는 보다 많은 모금으로 각종 식사와 접대를 우선하려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자발적 모금 강요, 심각한 문제"

지난 10년간 학교 운영위원 활동 경험에 비춰보면, 운영위원회 위원장은 일반 위원보다 약간 더 많은 돈을 냈는데, 통상 100만 원 정도 선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사례는 지난 2005년 참여했던 경기 안산의 모 중학교에서의 일이다.

당시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어머니 학부모 위원이 위원장 선출을 앞두고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했다. 자신을 무투표로 당선 시켜 주면 위원들에게 돈을 걷지 않고 혼자 500만 원을 내겠다는 공약이었다. 그 말도 황당했지만 '내 돈 안 나가니 좋다'며 동의해 준 이들도 참으로 어이없었다. 하지만 그 사람처럼 500만 원 내지도 못할 거면서 혼자 끝까지 반대하는 것 역시 참 어렵고 불편한 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다시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 운영위원으로 당선된 이들이 각 지역별로 만든 임의단체인 '학교 운영위원회 협의회' 등에서 만난 이들에 따르면, 경기 북부 K시 학교의 경우는 40만원, 경기 안산의 D중학교는 지난해 일년에 100만 원씩을 걷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을 것으로 흔히 알려진 서울 지역의 경우는 더 심하다. 서울지역 학교에서 운영위원을 지낸 이들에 따르면, 200만 원을 요구받은 학부모도 있고, 아주 일반적인 경우가 100만 원 정도라고.

2009년, 100만 원을 요구받아 고심 끝에 낼 수밖에 없었다는 경기 남부지역의 학부모 위원 K씨는 "어느 정도 돈을 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꺼번에 100만 원을 내라고 하여 매우 놀랐다. 하지만 거부할 용기가 없어 낼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너무 부담스러워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불법 모금 수준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도대체 아이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학교 운영에 참여하려는 이들이 왜 이 같은 엉뚱한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지 개탄스럽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에 의지가 있는 학부모나 지역위원감이 있어도 운영위원 참여를 선뜻 권유하기 몹시 어렵다. 수십만 원의 돈을 내고 운영위원으로 함께 하자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 그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운영위원을 하려는 보통의 학부모는 없다. 지역위원 역시 마찬가지다.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면 수십만 원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 학교의 지역위원이 고심 끝에 사퇴한, 웃을 수 없는 경우도 지켜봐야 했다.

모금 거부한 나, 내내 외로웠다

a  경기도교육청.

경기도교육청. ⓒ 김한영


그렇다면 이 같은 엄청난 비용을 운영위원회가 꼭 걷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상 이유가 없다. 학교운영위원회를 설치한 순수 목적으로 비춰보면 사실 돈이 들어갈 이유도, 돈을 걷을 이유도 없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고 또 암담했다. 처음 학교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던 2000년, 경기도 모 초등학교에서의 일이다.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당시 교감선생님은 운영위원회 공식 회의 석상에서 "방문하는 주변 학교 교장 선생님과 장학사 등을 위해 수박과 떡 등을 준비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왜 운영위원이 수박과 떡을 사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학교 예산으로 해야 할 일인데 학교 운영위원이 왜 음식을 사야 하는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처럼 한다면 돈 없는 학부모는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덕분에 그 해, 나는 내내 외로웠다. 물론 운동회 날, 수박과 떡은 손님들을 위한 접대상에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10년을 싸우고 모나게 한 결과 학교는 얼마나 변했을까. 어떤 해는 원칙적으로 잘 되었고 그래서 좋아지나 보다 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아이가 진학한 중학교의 운영위원장은 다시 떡과 과일, 맥주를 사서 학교에 돌렸다. 스승의 날을 맞아 꽃바구니를 돌리고 출장 뷔페를 시켜 대접도 하겠다며 말했다.

당연히 반대하는 나에게 운영위원장은 "당신은 돈 내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다. 위원장과 친한 일부 위원은 "돈도 내지 않고 공짜로 운영위원을 하려는 파렴치한"으로 나를 모욕하기도 했다.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도 없는, 그리고 요구해서도 안 되는 이런 일들을 '경쟁적으로'하려는 것일까. 그럴 돈이 있다면 차라리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급식비 기부를 하는 것이 운영위원으로 보다 당당하고 떳떳한 일이 아닌가? 그저 이것이 모두 학교당국에 잘 보이기 위한 그릇된 운영위원의 문제로만 치부되어도 좋은가 묻고 싶다.

결론적으로 이 문제는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자발을 가장한, 그리고 자발적인 것처럼 위장하는 교육 당국의 방관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 학교 운영위원회의 그릇된 행태는 바로 잡혀야 한다.

나는 바란다, "얼마예요?" 묻지 않는 그날을...

학부모라면 누구나 아무런 부담이나 제약없이 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운영위원회를 거치지 않고서는 학교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는 이 조례 제6조 2항에 따라 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교육 여건을 만들고 싶어 참여한 학교 운영위원회였다.

10년 전인 2000년, 학교 운영위원으로 처음 참여한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커지는 모금 추태는 과연 추방될 수 없는가. 물론 이는 극히 일부 학부모가 돈으로 학교 관계자의 호감을 사고 싶은 그릇된 발상으로 빚어진 작은 소동일 수 있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신호를 나는 이 땅의 교육 당국과 교육의 정상화를 바라는 이들에게 외치고 싶다.

한편, 경기교육청은 2010년 학교 운영위원 선출을 앞두고 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위원 선출이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의미있는 조치를 취했다. 권역별로 학교 운영위원회 업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연수를 실시하여 사실상 학교 차원의 조정을 통해 협조적인 특정 학부모가 입후보 하도록 하거나 단합 행위로 무투표 당선을 유도시키는 등 부적정 사례가 근절될 수 있도록 강조한 것이 그것이다. 매우 의미있는 노력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바란다. 아이들이 먹을 급식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 보다 안전한 체험학습과 아이들이 행복하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학교 운영위원회를.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하는데 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걱정하지 않고, 또 "돈은 얼마나 내나요?"라고 묻는 사람을 이상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이 꿈에 대해 새로운 교육을 열망하는 이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출범한 교육당국이 명쾌하게 답해줄 때다. 두 눈 크게 뜨고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7월 5일 시민사회신문에 실린 내용을 일부 고쳐 쓴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지난 7월 5일 시민사회신문에 실린 내용을 일부 고쳐 쓴 것입니다.
#고상만 #학교 운영위원회 #경기 교육청 #운영위 불법 모금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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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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