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정세균 민주당 전 대표는 굉장히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전당대회 본선 진출자 9명을 뽑는 '컷오프'가 예정돼 있었지만, 정 전 대표의 표정 속에 긴장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지난 2년간, 민주당을 나름대로 '성공한 야당'으로 만든데 대한 중앙위원들의 후덕한 평가가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엿보였다(실제 정 전 대표는 1차 컷오프를 무사히 통과했다. 민주당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치고 있지만, 그가 1위를 차지했다는 게 당 안팎의 추측이다).
지난 7·28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정 전 대표가 불과 1달여 만에 다시 당권 도전에 나선 이유는 "차기 총선과 대선 승리를 이끌 적임자"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꾸려질 새 지도부는 차기 총선과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며 "누가 그 준비를 잘 할지 당원 동지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전당대회 이후 2012년 대선까지 민주당의 진로에 대한 구상도 명확했다. 그는 민주당이 수권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리그'를 깨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판을 키워 인재를 영입하고, 민주당을 강하게 만들어야" 수권정당이 될 수 있다는 게 정 전 대표의 뜻이다. 요약하자면 '선판후사'(먼저 판을 키우고, 뒤에 사익을 추구한다)다.
그래서 정 전 대표는 자신과 손학규·정동영 세 사람을 민주당의 '빅3(쓰리)'로 이름짓는 게 반갑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는 "한국정치 지형이나 개인 지지도를 볼 때 지금 우리는 '스몰3'일 뿐"이라며 "한국정치의 빅3가 민주당 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진보 대통합은 내년 초 틀을 짜야, 민주-진보 2개 정당으로 재편"
2012년 민주-진보 대통합과 관련해 그는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내년 초, 그러니까 2012년 4월 18대 총선 공천 전까지 대통합의 틀을 짜야 한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는 야권이 중도개혁세력을 포함한 정당과 급진적 진보정당 2개로 재편되는 게 옳다고 내다봤다. 2개의 정당이 연대해 보수세력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진보 대통합을 위해서는 자신의 꿈(대권)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꺼이 길잡이가 되겠다"는 게 정 전 대표의 뜻이다.
하지만 그는 대권 도전 의지도 "접은 것은 아니다"고 여지를 남겨뒀다. "이제부터 심사숙고 하겠다"고도 말했다. 차기 당권을 쥐게 되면, 밖으로는 통합을 추진하면서도, 안으로는 2012년 12월을 목표로 차근차근 준비하겠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최근 '독립 정치'를 선언한 486 세대에 대해서도 "내 경쟁자들"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우리 사회의 허리인 486이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당권을 쥘 경우 중용하겠다는 생각도 내비쳤다.
다음은 정 전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7·28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지 얼마 안 돼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하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는 것 같다.
"전당대회는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당을 맡아 나름대로의 성과를 냈다. 정당 지지율 상승, 당 정통성 회복, 당내 통합 완성, 6·2 지방선거 승리. 그래서 당원 동지들의 신임을 다시 얻고 싶다. 앞으로 꾸려질 새 지도부는 차기 총선과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 누가 준비를 잘 할 사람인지 당원 동지들이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언론에선 정 전 대표와 정동영 상임고문, 손학규 상임고문을 묶어 '빅3'라 통칭하고 있다. 마음에 드나.
"'스몰3'보단 낫다.(웃음) 하지만 민주당 내 '빅3'는 큰 의미가 없다. 한국 정치의 '빅3'가 민주당 안에서 나와야 한다. 한국 정치 지형을 볼 때나 '빅3' 개개인의 지지도 등을 따져볼 때 지금의 우리는 '스몰3'다."
- 정동영 상임고문, 손학규 상임고문에 대한 장·단점을 평가한다면.
"한 분은 대선후보였고, 다른 한 분은 대선후보 경선에 나갔던 분이라 대중성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통성과 정체성 부분에선 나와 대비되는 측면이 있다."
"정동영-손학규 후보, 민주당 정통성에서 나와 대비된다"
- 사실 '빅3'가 전대 '룰' 문제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나는 현행 '룰', 즉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선거로 선출하는 것을 지지했다. 분리 선거를 하게 되면 우선 문호를 개방하는 효과가 있다. 오늘(9일) 컷오프가 있는데 9명만 통과한다. 만약 리그가 두 개였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뛸 수 있었을 것이다. 양대 리그로 치러진 지난 전당대회는 환상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서울의 김민석, 경기의 김진표, 인천의 송영길, 충청의 안희정, 호남의 박주선. 이렇게 지역-세대 배합이 잘 된 지도부가 있었나. 지금의 전대 '룰'은 후보들이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고친 것이다. 그래서 야합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미리 점쳐본다면, 이번 전당대회에서 지난 지도부 같은 환상적인 '콤비네이션'이 될 것 같지 않다. 잘못하면 빅3도 스몰3로 전락할 수 있다."
- 정 전 대표의 '친위부대'로 평가받는 486 정치인들의 지도부 진출을 돕기 위해 분리 선거를 주장한다는 지적이 있다.
"486들도 지도부에 진출해야 한다. 486이 지난 지도부에 진출해서 인천시장도 나오고 충남지사도 나온 것 아닌가. 486이 우리 사회의 허리다.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경제·문화적으로 그들이 허리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정치에서는 빠져라? 말이 되는 소리인가. 당연히 그들이 허리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들을 위해 한 주장이 아니라, 균형적 감각을 갖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그들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본다. 또 그들이 나와 맹목적으로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 486 정치인과 정 전 대표를 일러, '운명공동체'라고까지 평하는 이들도 있는데, 지난 8일 486 정치인들이 이제 '홀로서기'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럴 때가 됐다. 예전에는 '40대 기수론'으로 그 세대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지금 수명이 길어지고, 일을 더 오래 하니 40대가 상대적으로 젊게 보이지만 40대가 충분히 그런 주장을 할 때가 됐다. 나무랄 일이 아니다."
- 486 의원들이 '정세균 대표도 경쟁자다'고 했는데.
"당연히 그런 이야기 할 수 있다."
- 지난 2년 간 민주당이 많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여전히 진보세력 내에선 '민주당이 진보개혁세력의 맏형'이란 평가를 수용 못하겠단 얘기가 나오는데.
"제가 당 대표 되기 전,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민주당에 대한 평가와 지금을 비교해보시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민주당과 다른 개혁정당과의 사이는 협력 관계이자 경쟁 관계다. 대부분 협력하지만 경우에 따라선 '경쟁심'이 발동되기도 한다. '맏형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좋을 것 같다. 또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야권 연대'를 통해 다른 군소정당들은 기초단체장, 광역의원을 당선시켰다.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과였다. 지금 다른 정당들이 민주당에 대해 박한 평가를 하는 것은 차기 총선·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의 '야권연대'를 겨냥한 것이다. 벌써부터 (야권연대를 위한)'룰' 미팅이 시작된 것으로 보면 된다."
- 최근 한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을 치르기 위해선 내년 상반기 혹은 초반까지는 대통합의 틀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대선이 아니라 총선이 급하다. 2012년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하려면 민주당이 전대를 치르고 난 뒤 바로 실무적인 접촉에 들어가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내년 초에 어느 정도 틀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처럼 빠르게 2012년 총선 야권연대를 추진하려면 6·2 지방선거 등을 통해 신뢰관계를 구축한 내가 민주당의 대표가 되는 게 좋다고 본다."
- 당 대표 시절, '통합이 최선이고 연대가 차선'이란 말을 많이 했다. 정 전 대표가 생각하는 통합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이다. 개혁진영이 하나로 되는 것이 최선이지만 매우 어려울 것이다. 집권을 하기 위해선 '중도'까지 아울러야 한다. 현재 중도까지 아우르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정당은 민주당뿐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개혁진영이 두 개의 정당으로 재편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진보정당도 두 당(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나. 그러나 그 정도의 재편도 쉽진 않으리라고 본다."
- '민주당은 호남당'이란 비판을 벗어나기 위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그런 비판에서 상당히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호남당'이란 이미지는 못 벗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전국정당이다.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 민주당은 13개 광역시·도에서 당선자를 낸 반면 한나라당은 10개 광역시·도에서만 당선자를 냈다. 또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인천, 강원, 충남·북, 그리고 연합공천을 한 경남까지 얻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지역정당인가."
- '호남 출신'인 정 전 대표가 다시 당 대표가 된다면 '호남당'이란 이미지를 벗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있다.
"호남 출신이라고 인센티브를 줘서도 안 되지만 배제해서도 안 된다. 공직 후보와 당 대표는 다르다. 공직 후보는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고 당 대표는 당원이 선택하는 것이다. 호남을 배제해선 안 된다."
"대선후보 꿈 접지 않았다, 지금부터 심사숙고 할 것"
- 출마 선언에서 "대권후보 꿈도 있다"고 했는데.
"원론적 얘기다. 국회의원도 4선을 했고 안 해본 당직이 없다. 장관도 했다. 그러니깐 정세균 개인으로선 그런 꿈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정세균 정부'란 꿈보단 '민주당 정부'란 꿈이 훨씬 큰 상위개념이다. 민주당 정부를 만들기 위해 정세균의 작은 꿈을 접으라고 한다면 언제든지 접을 수 있다. 당원들과 국민이 '네가 기수하지 말고 길잡이가 되라'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있단 얘기다. 당 대표가 된다면 진입 장벽을 절대 치지 않겠다. 지금 '판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나를 포함해 당내에서 거론되는 사람들로는 대선 승리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판을 키워서 내부에 있는 역량들도 모으고 외부에 있는 유력한 사람들도 함께 하도록 해야 한다."
- 당 대표가 된 뒤에도 자신의 꿈을 쉽게 접을 수 있나.
"(웃으며)아직 접은 것 아니다. 다만 그런 판단을 할 때가 안 됐다. 아직은 국민들의 뜻이 무엇인지, 당원들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왜 접겠나. 희생할 수 있다는 뜻은 내 욕심을 갖고 당의 문호를 닫거나,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당을 폐쇄적으로 운영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선언한 것이다."
- 지금까지 '선당후사'를 강조해왔다.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둔다면, 정 전 대표도 이제 '자신만의 정치'를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심사숙고할 때가 됐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그럴 겨를이 없었다. 강한 민주당이 안 되면 그런 당에서 후보가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후보가 될 때는 당선이 목적이지 후보 자체가 목적이 될 순 없다. 민주당이 수권정당이 안 된다면 후보 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 수권정당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선판후사'로 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 판에서 제가 함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
- 민주당의 고민은 또 다른 데 있다. 당내에서 거론되는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이 상당히 낮게 나오고 있다.
"그래서 판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전대 '룰'을 결정할 때 당권-대권 분리가 안 됐다면 아무도 이 판에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불공정 경쟁에 누가 들어오겠나. 공정한 경쟁이 담보되야 들어온다. 당 대표가 공천권도 다 행사하고 바로 그 뒤에 대선후보로 출마하면, 이 불공정한 판에 누가 들어오겠나. 판을 키워야 하는데 쪼그라드는 거다. 그래서 당권-대권 분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 판을 키우는 것 외에도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를 더 높이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물론이다. 강력한 민주당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6·2 지방선거 끝나고 나서 한 때는 우리가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역전한 적 있다. 지금도 한나라당과 우리와의 지지율 격차가 한 자리 수다.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25~30% 정도 된다. 이 정도면 제1야당 역할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물론 만족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당의 경우, 지지율 조사에서 10% 정도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보기 때문에 이미 추월했다고 보면 된다. 옛날에는 민주당 지지율이 20% 수준이었다."
-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책 사업인 4대강 사업의 경우, 민주당이 예산조정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오해를 많이 받고 있다. 큰 전략-전술이 필요하지 않나.
"이 정권이 하도 막무가내니깐 사실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다. 나 같은 사람이 단식도 하고 321일 동안 풍찬노숙을 했지만 듣지 않았다. '4대강 사업 반대 입장'이 국민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모든 정당과 시민사회, 종교계까지 확실하게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사안인 만큼 강력하게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하반기 국정기조인 '공정한 사회'가 대규모 사정과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책 등과 맞물릴 경우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대응할 수 있는 야당의 슬로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워낙 없다. 국민들이 하도 속았고, 이 대통령이 일이 있을 때마다 국면전환용 화두를 많이 던졌다. 지금 제기한 '공정한 사회'도 별로 국민적 반향을 일으키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2010.09.10 12:12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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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2007년 5월 입사. 사회부·현안이슈팀·기획취재팀·기동팀·정치부를 거쳤습니다. 지금은 서울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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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3? 밖에선 '스몰3'일 뿐, 486도 내 경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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