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기업사냥꾼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너진 중소기업

등록 2010.09.21 15:16수정 2010.09.2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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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앙바이오텍 건물 입구에는 추석선물용 사과박스가 놓여있었지만 추석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중앙바이오텍 건물 입구에는 추석선물용 사과박스가 놓여있었지만 추석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 선대식

"추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16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 내 중앙바이오텍 공장에서 만난 직원 이해규(49)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본사 건물 앞에는 추석선물용 사과 박스 더미가 쌓여 있었지만, 이곳에서 추석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한창 일 할 오후 3시였지만, 공장은 조용했다.

이씨는 "추석 전에 6월 월급의 절반이 나온다, 나머지 체불된 월급을 언제 손에 쥘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면서 "추석 때 친지들과 마주 앉는 것 자체가 부담되고 부끄럽다"고 밝혔다. 최근 대·중소기업 상생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지만, 이씨와 그의 회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추석 때 보름달을 보면서 그가 빌 소원은 회사의 회생이다. 최근 이 회사는 기업회생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동물용 의약품 업계 1, 2위를 다투던 회사가 졸지에 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씨의 말이다.

"튼실한 회사를 한순간에 망가뜨린 기업사냥꾼들에 대한 단죄가 필요합니다."

'IMF' 때도 흔들림 없었던 부채 '0'의 튼실한 기업, 그러나...

지난 1975년 설립된 중앙바이오텍은 1980년대 잇따른 바타민 원료의 합성 성공으로 크게 성장했다. 1990년대 말에는 매출 280억 원대를 기록해, 한국바이엘(매출 320억 원대)에 이어 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했다. 또한 1995년에는 '500만불 수출의 탑'도 받았다.


이 회사는 1997년 'IMF 사태' 때도 큰 흔들림이 없을 정도로 튼실했다. 부채는 '0'이었고, 시장점유율은 업계 3위권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이 회사가 지난 2000년 코스닥에 상장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2003년 창업주가 쓰러지면서 회사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2년간 창업주의 친인척인 김아무개씨는 회사를 경영한 후 2005년 6월 지분 25.85% 모두를 미라셀이라는 곳에 106억 원에 팔고 떠났다. 줄기세포 관련 기업인 미라셀은 당시 설립된 지 불과 20일밖에 되지 않은 회사로, 자본금은 1억 원이었다. 마치 새우가 고래를 삼킨 꼴이었다.


이는 차입매수(LBO)라는 방식으로 가능했다. 미라셀은 중앙바이오텍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이복길 노조위원장은 "1989년 입사해 회사를 키워왔는데, 인수과정에서 직원들 모르게 회사 자산이 담보로 잡히거나 팔리는 것을 보면서 황당했다"고 밝혔다. 노조를 결성해 투쟁에 나섰지만, 인수 계약을 되돌릴 수 없었다.

회사를 인수한 미라셀의 박아무개씨는 중앙바이오텍의 사장이 돼 미라셀과 관련된 줄기세포 부문 등에 150억 원의 투자를 감행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래도 이때까지 직원들은 투자가 실패한 것일 뿐, 앞으로 회사가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a  이복길 중앙바이오텍 노조위원장이 지난 1995년에 받은 '500만불 수출의 탑'을 바라보고 있다.

이복길 중앙바이오텍 노조위원장이 지난 1995년에 받은 '500만불 수출의 탑'을 바라보고 있다. ⓒ 선대식


'기업사냥꾼'에 인수된 뒤, 몰락의 길로...

하지만 2008년 11월 황아무개씨가 중앙바이오텍을 인수하면서 회사는 직원들의 기대와는 달리,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때 280억 원에 이르렀던 매출은 2008년 120억 원, 2009년 51억 원으로 크게 줄었다. 2009년 9월 다시 대주주가 바뀐 뒤 전문경영인으로 선임된 이운석 사장은 "황씨가 다 해먹어, 회사는 시궁창과 같은 상황이었다"며 "그때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대표에 따르면, 인수 당시 황씨가 개인적인 용도로 쓴 법인카드는 1억5천만 원이 연체돼 있었다. 또한 황씨가 개인적인 일로 서울사옥과 안산공장을 담보로 빌린 돈 50억5천만 원을 갚지 못해, 모두 경매절차를 밟고 있었다. 안산 제2공장은 이미 매각된 상황이었다.

심지어 황씨가 2008년 당시 중앙바이오텍을 인수하면서 인수 잔금을 치루지 못해, 제품 원료가 모두 가압류된 상태였다. 2010년 중앙바이오텍의 매출이 공식적으로 '0'을 기록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황씨는 현재 회사에서 200억 원을 배임·횡령한 혐의로 수배중이다. 이복길 위원장은 "기업사냥꾼인 황씨가 회사를 망가뜨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기업사냥꾼'에 회사가 무너지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직원들에게 돌아왔다. 2008년부터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더니, 2010년이 되자 월급이 연체되기 시작했다.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이 많았다.

한때 120명에 달했던 직원은 현재 30여명에 불과하다. 지난 7월에만 40여명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한 직원은 "어려운 시기에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떠나가는 직원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중앙바이오텍 공장은 원료만 쌓여있고, 가동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중앙바이오텍 공장은 원료만 쌓여있고, 가동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 선대식


추석전야, 어두운 직원들의 얼굴... 재기할 수 있을까?

현재 회사는 경영진과 직원들의 노력으로 기업회생절차를 목전에 두고 있다. 법원에 관련 서류를 제출했고, 10월 중순이면 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절차 인가가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업회생절차를 통해 채권 조정이 이뤄지면, 가압류가 풀리고 투자를 받아 공장을 다시 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다.

하지만 직원들의 얼굴에선 밝은 표정을 찾기 어려웠다. 한 직원은 "이미 희망과 꿈이 희미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차입매수과 기업사냥꾼의 농간으로 회사가 한 순간에 무너졌다, 아직도 허탈하다"며 "언제 다시 그런 일이 반복될지 알 수 없지 않느냐"고 밝혔다.

특히, 체불임금으로 인한 고통이 크다. 직원들은 현 경영진을 임금 체불로 고발했다. 이운석 사장 역시 "마음이 빚이 크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현 경영진이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아직 공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취재 도중 회사가 보낸 추석선물이 도착했다는 택배기사의 전화를 받고는 "괜히 더 우울하다, 차라리 추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간절한 소망이다.

그는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이 '회사를 꼭 살려라'고 한다, 어려워도 다시 힘을 내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회사 로고를 가리켰다. 회사의 로고는 '번영의 꽃'. 그는 "저 로고와 함께 회사는 90년대까지 큰 발전을 했다"며 "회사가 다시 번영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중앙바이오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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