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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제가 꾸리는 레스토랑 이름은 '라 포자(la pausa)'입니다. 혹자는 '라 파우자'라고 발음하지만 어떻게 읽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말인 'pausa'는 영어의 'pause' 'break'를 뜻합니다. 바쁜 일상 중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휴식하는 시간과 공간을 우리 가게가 마련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입니다.
광고 문안대로 깔끔한 음식과 세심하게 선별된 음악, 클래식하면서도 모던한 인테리어가 상호와 걸맞은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말마따나 제대로 된 'pausa'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에 '컨셉이 맞아 떨어졌다'는 자부심이 듭니다.
하지만 '홀과 키친'의 간극은 남과 북, 동과 서의 그것으로 비유한다 해도 모자랄 만큼 도무지 설명할 길도, 채울 길도 없습니다. 음식이 나올 동안 와인잔을 기울이며 담소하는 손님들 저편의 주방 쪽은 주문표에 명시된 다양한 선제공격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전쟁을 치릅니다.
대여섯 개의 프라이팬을 동시에 돌리면서 애피타이저나 샐러드가 제대로 나가고 있는지도 챙겨야 하는 헤드 셰프는 앞 뒤 불판을 넘나드느라 너울대는 불꽃에 손과 손목을 데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오븐에 넣어둔 빵이 깜빡하는 사이에 타버리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구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실수하기 무섭게 아니나 다를까 손님들의 채근을 전하는 웨이터들의 울상과 마주쳐야 하고 자칫 주문이 엉켜 도미노 현상이 생기면 그야말로 낭패입니다. 그 와중에 일을 배운다는 빌미로 주방의 한 귀퉁이를 맡고 있는 저로서는 매번 찾아드는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물 위의 우아한 백조와 그 백조의 처절하다 못해 경박하기조차 한 물밑 발길질을 연상케 하는 홀과 키친의 대조적 상황 속에서 아뿔싸, 저는 그만 '백조의 몸통'이 아닌 '백조의 물갈퀴'를 선택하고 만 것입니다.
이 지경이니 남들에게 '라 포자'를 주느라 저와 남편은 완전 '노(no) 포자' 상태입니다. 밥장사를 시작한 이후 밥을 굶는 것은 다반사이고 오밤중에 집에 돌아오면 신 벗는 자리가 곧 옷 벗는 자리요, 가방 놓는 자리라면 말 다한 것 아닌가요.
하지만 젊지도 않은 나이에 비유가 아닌, 실제로 돈을 주고 고생을 사서 하는 고달프기 짝이 없는 나날 중에 어느 결에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인생은 어차피 여정이자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경부선은 옳고 호남선은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어느 행로를 택하든 '가지 않은 길'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과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보따리는 풍성해질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부부는 이 행로를 택하지 않았더라면 이렇다 할 공감대를 갖지 못했을 한 부부를 여정의 출발 지점에서부터 만났습니다. 지금 이 두 사람은 아직은 낯선 길에 서 있는 저와 남편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행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예측 가능하고 만만했던 환경을 버리자 치열함과 긴장 속에서 새로운 만남이 찾아왔으니 여정의 묘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불과 두 달 남짓한 동안 이 길을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평생 만나지도, 만날 필요도, 만나서도 안 될 사람들과의 스침도 있었습니다. 이 또한 여정의 일부분이자 징검다리라고 자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문 한 자, 책 한 줄 대신 꿈에서조차 메뉴판만 들여다 보는 요즘, '이러고도 나 글쟁이 맞아?' 하고 스스로 좀 놀랄 때가 있지만 인생 60쯤에는 어차피 이력서를 새로 쓰게 될 것 같아 별로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글쟁이에서 요리사로 제대로 변신하는 때 쯤에는 제게도 '라포자'가 찾아오겠지요.
덧붙이는 글 | 자유칼럼그룹과 호주한국일보에도 실렸습니다.
2010.10.02 18:10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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