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태프트(1857-1930)
Harris & Ewing
태프트의 몸집은 우람했다. 곰 중에서도 백곰 크기였다. 실제 그는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근수가 나갔다. 나이도 아버지뻘이어서 우선 주눅이 들었다.
"저... 태프트 장관님, 루즈벨트 대통령을 좀... 만나게...해 주십시오."
떠듬거리는 윤병구를 태프트는 이윽히 쳐다보았다. 인자한 인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쌀쌀한 표정도 아니었다. 1901년서부터 1903년까지 그는 필리핀 총독을 해서 그런지 동양인에 대해 나름의 이해심을 가진 듯 했다. 바람 앞의 등잔불 같은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면 가릴 것이 무엇 있겠는가. 윤병구는 모자란 침을 삼킨 다음 나머지 말을 이어갔다. 틀린 영어라도 개의치 않았다.
"대통령의 중재로 포츠머스에서 러일강화회담이 열린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대통령을 한 번 만나게 해주십시오. 한국의 독립청원서를 대통령께 전달할 수 있도록 소개장을 하나 써주십시오."
태프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알 수 없는 계산이 그의 두뇌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무엇 보다 자기는 일본에 가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한가한 여행객 차림이지만 국방장관으로서 천황도 예방하고 총리도 만나게 되는 것 아닌가. 러일강화회담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눌 것이 아닌가.
"그래요? 대통령이 워낙 바빠서 면담을 허락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면담을 할 수 없다면 그 먼 길을 가는 게 헛수고가 아닐까요? "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윤병구는 그 침묵을 깨뜨릴 기력마저 없었다.
"We can't...just sit back... and do nothing.(우리는... 주저앉아... 있을 수만... 없습니다)"
띄엄띄엄 윤병구는 같은 말을 두 번 계속했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7월 15일 한인들은 호놀룰루 인근의 에와 사탕수수 농장에 모였다. 윤병구가 태프트 장관의 소개장을 받았다는 소문을 듣고서였다. 회의에서 그를 하와이 동포 7천 명을 대표하는 총대로 뽑았다. 그리고 당장 주머니를 털어 5백 달러를 모았다.
그들에게 '독립'은 신앙이었다. 그 신앙을 위해서 주머니 속의 동전까지 아낌없이 털어낸 것이다. 그것은 담배 값마저 줄여야 하는 고통을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