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접시에 담긴 요리, 줘도 안 먹습니다"

[인터뷰] 김용철의 첫 번째 음식 이야기 <맛객의 맛있는 인생>

등록 2010.10.21 15:47수정 2010.10.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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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맛객 김용철 <오마이뉴스>와 다음 블로그 ‘맛있는 인생’에 여러 가지 음식 이야기를 쓰고 있는 맛객 김용철이 첫 번째 음식 이야기 <맛객의 맛있는 인생>(청림출판)을 펴냈다.

맛객 김용철 <오마이뉴스>와 다음 블로그 ‘맛있는 인생’에 여러 가지 음식 이야기를 쓰고 있는 맛객 김용철이 첫 번째 음식 이야기 <맛객의 맛있는 인생>(청림출판)을 펴냈다. ⓒ 이종찬


"3일을 굶었다. 계단을 오를 기운조차 없었다. 아무 집에나 들어가 물동냥을 했다. 냉수 한 그릇으로 삭막했던 도시에 꽃피워지는 온정을 느꼈다. '그래,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야'라는 말로 내 처지를 위로했다…. 만화가의 꿈을 품고 서울에 올라왔지만 가진 게 없어 배고픔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영등포역 앞 식당에서 서빙을 시작하게 되었고, 만화를 배우는 시간 외에는 종일 식당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맛으로 세상을 말하고, 맛으로 삶을 말하는 맛객 김용철. 그는 '배고픔' 때문에 운명처럼 음식과 만난다. 그는 그때부터 일식집만 빼놓고 한식, 중식, 분식, 양식집을 돌아다니며 일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운다. 그렇다고 대충 배운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타고 난 음식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 한 번 배운 요리는 잊지 않고 그대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는 만화가로 일할 때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너는 식당하면 잘하겠다"는 말을 늘 들었다. 그 또한 "만화보다는 음식으로 대성할 운명"이라 여겼다. 하지만 한동안 만화에만 폭 빠져 살았다. 근데, 그 만화가로 살아가는 삶은 주머니는 두둑할 수 있었지만 삶에 여유가 없었다. '마감'이란 낱말에 얽매인 노예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맛객은 그때 또 한번 운명처럼 블로그를 만난다. 그가 만화창작을 버리고 '맛객'이란 이름으로 맛 전도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블로그에 맛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그것도 그냥 수많은 맛집 이야기와 사진만 덜렁 올려놓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맛 이야기에 음식에 대한 역사와 문화, 사회와 풍습, 그 지역 자연환경까지 품는다.

그는 "천재 꼬마 요리사는 나올 수 있어도 천재 꼬마 미식가는 나올 수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왜? "미각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경험을 통해서 발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미각경험은 낯선 음식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열린 마음에서 비롯된다"며 "폐쇄적인 미각은 폭넓은 (맛에 대한) 경험을 방해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대형음식점이나 큰 접시에 담긴 요리를 싫어한다"

a 맛객 김용철  책에는 맛객이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낸 으뜸 맛집들이 시골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맛객 김용철 책에는 맛객이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낸 으뜸 맛집들이 시골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 이종찬

"<맛객의 맛있는 인생>은 지난날 음식에 천착했던 나의 자화상이나 마찬가지이다. 내 삶과 사고와 철학이 녹아들어 있다. 그간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였지만 이 책에 소개된 음식은 대부분 현재보다 과거에 시계 침이 맞춰져 있다. 우리 선조부터 할아버지, 부모님이 먹고 살아왔음직한 소소한 음식들이다. 이는 나의 성향 탓이기도 하다."
- '들어가는 글' 몇 토막


<오마이뉴스>와 다음 블로그 '맛있는 인생'에 여러 가지 음식 이야기를 쓰고 있는 맛객 김용철이 첫 번째 음식 이야기 <맛객의 맛있는 인생>(청림출판)을 펴냈다. 이 책에는 맛객이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낸 으뜸 맛집들이 시골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마치 진짜 맛은 어머니 손맛이며, 시골 정서가 깃들어야 한다는 것처럼 그렇게.  

이 책은 모두 6장에 '그곳에 가면'이란 글을 단 34꼭지에 이르는 맛이 감추어져 있다. 1장 '그곳에 가면 사람 사는 맛이 있다', 2장 '그곳에 가면 우리네 맛이 있다', 3장 '그곳에 가면 그리움의 맛이 있다', 4장 '그곳에 가면 별미, 진미가 있다', 5장 '그곳에 가면 자연의 맛이 있다', 6장 '그곳에 가면 세계인의 맛이 있다'가 그것.


맛객 김용철은 며칠 앞 저녁 무렵 청진옥에서 글쓴이에게 "맛 한 가지는 행복 한 가지, 늘 맛있는 인생, 행복한 인생 누리십시오"라는 글을 적은 책을 건네주면서 "나는 대형음식점을 싫어 한다, 큰 접시에 담긴 요리도 싫어 한다, 많은 요리가 펼쳐진 상차림도 싫어한다"며 "진정한 맛이란 형식이나 과시, 탐식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소소하고 담백하지만 진실한 마음이 담긴 요리, 추억이나 정취, 사람 냄새가 담긴 맛을 추구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는 "왜 제목이 맛있는 세상이 아니고 맛있는 인생"이냐는 물음에 "이 책을 읽고 나면 해답이 보이리라 생각한다"며 잔잔하게 웃었다. 마치 맛은 세상이 아니라 곧 인생이라는 듯이. 

기억 언저리에 단단히 옹이로 박혀 있는 그 집 주모

"여수에 오면 서대회무침이나 생선회를 먹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말집에 들르지 않으면 어딘가 섭섭한 느낌이 들 것 같았다. 별다른 안주거리도 없는 주막이지만, 발길은 당연한 듯 그곳으로 향했다. 말집은 2년 전 이맘 때 딱 한번 들렀던 집이다. 그때 주모의 인정에 홀딱 반해 기억 언저리에 단단히 옹이가 박혀 있다." - "세상은 변해도 주모의 인정은 변하지 않더라-여수 '말집'" 몇 토막

맛객 김용철은 연탄불에서 두 번 지방을 쏙 밴 뒤 다시 연탄불에 구워먹는 돼지껍데기를  공짜로 구워주는 말집에 앉아 주모 인정에 포옥 빠진다. 이 집 주모는 막걸리만 많이 마셔주면 돼지껍데기는 무한정 내주기 때문이다. 그는 그 집에서 막걸리에 돼지껍데기를 안주 삼아 어릴 때 추억도 함께 떠올린다.

꽁지머리에 언뜻 보면 여자처럼 예쁘장하게 보이는 맛객은 고등학교 다닐 때 가출을 참 많이도 했다. 그는 그때 여수로 이사를 간 후배를 찾아 땡겨울에 여수를 찾는다. 후배가 여수에 있긴 했지만 후배 부모님의 눈을 피해야 했기 때문에 따뜻한 아랫목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그는 그때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이불 대신 가마니를 덮고 잤다.

돈도 한 푼 없었다. 배가 몹시 고팠던 그는 후배와 함께 식당에 들어가 우선 음식을 먹은 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밖으로 나와 살피는 척하다가 그대로 달아났다. 그때 그 생각을 하면 맛객은 지금도 미안하다. 맛객이 펴낸 책 이름이 왜 <맛있는 인생>인지 그 해답이 이 이야기 속에 있다. 그러니 맛객이 말집에 앉아 마시는 막걸리와 돼지껍데기에도 인생이 그대로 녹아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도 지난해 여수 말집에 가서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시며 돼지껍데기에 추억을 비벼 구웠다. 그때 나는 그 집에서 스무 살 때 봄, 여수 오동도에 여행을 왔다가 만났던 그 여자를 떠올렸다. 동백꽃잎처럼 빨간 입술로 조잘거리던 그 여자. '좋은 음식점 좀 소개해주세요'라고 내가 꼬리를 치며 졸졸 따라다녔던 그 여자는 나를 여수 게장집으로 데려다 주곤 훌쩍 떠나버렸었던가 그랬다.

a 맛객 김용철 이 책에는 맛객 김용철이 직접 찍은 맛깔스런 사진도 실려 있다

맛객 김용철 이 책에는 맛객 김용철이 직접 찍은 맛깔스런 사진도 실려 있다 ⓒ 이종찬


"육지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접할 수 없는 대게 맛!"

"울진은 대게의 고장이다. 죽변에만 약 80여 척에 달하는 대게잡이 배가 있고, 최고의 대게 위판량을 자랑한다. 지금도 죽변에서 나는 대게 40~50%가 영덕으로 내려간다. 그렇다면 왜 울진대게가 아니고 영덕대게가 명성을 얻게 되었을까? 과거 울진보다 영덕이 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 "어선 위에서 갓 잡아먹는 게의 맛이라니!-울진 '대게'" 몇 토막

맛객 김용철은 울진에 가서 배를 타고 대게 어장으로 간다. 맛객은 그곳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그 느낌에 압도되어 머리까지 멍해진다. 하지만 멋진 일출과 갓 잡아올린 대게를 쪄서 먹는 맛에 퐁당 빠진다. "약간 간간한 듯하면서 달근한 요 맛! 육지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접할 수 없는 맛"이다.

맛객은 어선 위에서 대게 속내를 샅샅이 훑는다. "갓 잡아서 신선한 게의 장은 연한 국방색"이지만 "오래된 게는 장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 까맣다"는 사실을 깨친다. 그는 영덕대게가 울진보다 맛있다는 것은 무지이고 편견이라고 매듭짓는다. 영덕대게는 "명성 때문에 울진이나 구룡포보다 더 비싸게 판매될 뿐"이기 때문이다.

맛객 글은 식욕 아니라 그리움 채워준다

MBC <찾아라 맛있는 TV> 백한석 PD는 이 책에 대해 "잠자는 시간 외에 모두 음식만 생각한다는 맛객"이라며 "식재료 본연의 식감에 대한 묘사와 맛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버무려져 있는 그의 글을 읽노라면 제철 재료로 한 상 가득 차린 최고의 밥상을 받는 것 같아 참으로 행복하다"고 평했다.

맛객 김용철이 펴낸 <맛객의 맛있는 인생>에는 그 옛날 어머니 손맛과 가슴 시린 추억을 찾아 떠나는 행복한 미식여행이 있다. 그 미식여행이 맛깔스런 음식처럼 사람들을 부른다. "당신의 배를 채우지는 못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둔 그리움은 채울 수 있다"는 맛객 이야기처럼 이 책은 바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소박하고 깔끔한 맛에 대한 향수와 잃어버린 감성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맛객 김용철은 먹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때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해 사색을 즐기다 자연스럽게 만화가가 되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가 펴낸 어린이 만화책으로는 <강아지를 부탁해> <아이러브햄스터> 등 45권이 넘으며, 단편 <배낭 속 우산>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다.

그는 지난 2004년부터는 '맛객'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문을 연 블로그 '맛있는 인생'은 수차례 우수 블로그로 뽑혔으며, 800만 누리꾼들이 다녀간 으뜸 인기 블로그다. 전문가적 식견과 섬세한 표현,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그가 쓴 글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각뿐 아니라 감성까지도 건드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북포스>에도 보냅니다

맛객의 맛있는 인생 - 소소한 맛을 따라 세상을 유랑하는

김용철 글 사진,
청림출판, 2010


#맛객 김용철 #맛있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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